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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Feb 17. 2023

한국어가 모국어라는 것

'안다'와 '모른다'


"내가 아는 언어 중에 '모른다'는 표현이 따로 있는 건 한국어가 유일해."


스무 살에 만나 지금까지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알바니아 친구가 한 말이다. 이 친구는 3개의 어군에 분포한 7개의 언어에 능통한 자로 태생이 비범한 사람이라는 수식이 잘 어울리는, 명석하고 위트 넘치는 사람. 물론 한국어도 원어민급이라 나와 주로 한국말을 쓴다.


"그게 무슨 말이야? 모른다는 표현이 없는 언어가 있어?"


"그게 아니라, 한국어를 제외하고 내가 아는 다른 언어들은 '모른다'고 하지 않고 '알지 못한다'라고 표현하거든. 물론 언어마다 '모른다'를 표현하는 수많은 의미적, 기능적 장치가 있겠지만 나는 그것의 일상성을 말하는 거야. 한국인들은 뭘 모를 때 '안다'의 부정형을 쓸 필요 없이 '모른다'고 할 수 있잖아. 그 표현이 존재하니까."


저 말을 듣자마자 나는 '모른다'를 가진 언어가 내 모국어라는 것이 사뭇 마음에 들었다.


안다와 모른다의 상태에 예민한 인간일수록 스스로에 대한 앎이 높을 가능성이 있다. 경험상 그랬다. 그 상태에 관심을 두고 스스로 알고 모르는 게 뭔지 잘 아는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다움을 표상했다.


"나는 대답을 빨리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는 재주가 있다. 그냥 나는 모른다고 말한다."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그가 공자와 시절 인연이 닿았다면 둘은 절친이 되었을 것이다. 공자도 저런 말을 하고 다녔으니까 (知之爲知之不知爲不知). 소크라테스도 모른다는 말을 잘하고 다녔으며 아고라에서 만나는 사람들 입에서 '모른다'는 소리를 받아낼 때까지 대화의 그물망을 이리저리 잘 몰아가기로 유명했다. 그러다 그는 자기가 아는 것을 진정한 앎으로 남겨놓기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던지며 실천지(實踐知)의 아이콘이 되었다.


실천지實踐知 (숯체_free), 3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브런치북 <부부와 도반사이>에서 발췌. ACCI CALLIGRAPHY




나는 모른다는 말을 원래 좋아했다.

모르는 마음은 딱딱하지 않고 생명력으로 넘친다.


그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이미 있는 말에 기대어 부정형으로 만드는 수고로움이 없도록 미리 '모른다'를 고안해 둔 조상님들이 너무 고맙다. 덕분에 한국인에겐 '알지 못한다' 뿐 아니라 '모른다'의 지평도 있는 것이다.


숭산스님의 '오직 모를 뿐'을 보통 영어로 "Only don't know"라고 번역한다.


나는 '오직 모를 뿐'을 'Don't know'를 사용하지 않고 원문의 어감을 살리면서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에 대해서 많이 고민해 보았다.


없었다.

저게 정말 최선이었다.

나는 우리말에

모른다가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트레이더조스(힙한 상품이 많은 미국 마트) 냉동코너 중앙에 당당히 자리 잡은 가래떡과 파전. 한국 문화 콘텐츠가 인기다. 김구 선생이 이걸 보셨다면...(맴찢)





#아는걸안다고하고모르는걸모른다고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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