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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Feb 20. 2023

고갈되지 않는 법

Plotinus over Augustius

유타(Utah)를 여행 중이다.  


여행 시 늦잠을 허용하지 않는 남편의 채근으로 - 천천히 하라고 말은 하지만 얼굴은 그렇지 않음 - 아침 일곱 시부터 반 수면상태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호텔 로비로 내려간다. 커피와 스크램블드에그를 마주한다. 목구멍은 아직 개장 전이라 멍하니 음식을 바라보다 옆 테이블에서 나는 웃음소리에 머리카락 커튼과 미세한 시선처리를 이용하여 슬쩍 바라보니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저 함께 밥을 먹으며 웃는데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눈이 창조와 생명의 기운으로 충만하다. 그런 표정을 지어 보임으로 옆 테이블 사람에게까지 도달하는 맑은 기운을 창조해 내 버렸다. 그 이름 모를 어머니가 그렇게 웃음지은 덕에 내 목구멍은 개방되었고 스크램블드에그가 술술 넘어간다.


나는 현상의 세계에서 부모사랑만큼 멋진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플로티투스의 유출설을 처음 들었을 때 이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세상엔 이상한 부모도 많겠지만 극단치 표본 집단은 어디나 있으므로 논외로 하고.



6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간다는 말을 어렵사리 꺼냈을 때 엄마는 한참을 우셨다. 그리고 뱉은 말이


"니한테 해준 기 아무것도 없다."


였다.  


더 받을 게 없을 만큼 받았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던 나는 엄마의 생각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나를 낳고 먹이고 키웠는데 해준 게 없다니. 인간이 하는 모든 창작 행위는 어미가 자식을 낳아 기르는 행위의 - 그 보다 저급한 - 변주가 아닌가. 그런 위대한 창작 행위를 해 놓고 한 게 없다니. 마치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려놓고 '내가 작품이라고는 딱히 한 게 없다' 정도의 문장이었다.


사랑과 창조와 생명의 요소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이들의 작용이 원만할수록 그것에서 유출되는 창조력에 기대 살 수가 있다. 나는 그 힘에 기대어 부부싸움도 방지하고 퍼포먼스도 하고 소원해진 친구가 그저 건강하기만을 기도도 한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행위의 원리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겠으나 생물학적으로 그들의 확장된 자아라는 사실이 근간을 이룬다고 본다.


나 같아서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사회문화적, 영적, 정신적 존재이기도 하기에 피가 섞이지 않는 타인도 '나 같을' 때가 있다.  


나는 20대 많은 세월을 여행하며 길바닥에서 보냈는데 타인이 나 같고 타인도 나를 본인시 하는 경험을 무수히 거치면서 나의 확장된 자아를 경험했고 그때마다 창조력은 폭증했다. 그 상태의 나는 내 저장 클라우드뿐 아니라 무수히 다른 많은 사람들의 저장 클라우드에 접근 권한이 생긴 상태와 같았다.


그 상태에 관심을 두고 오래 머물러보려 하는 것 (止於至善 지어지선, 우물에 빠지려는 누군가의 아기를 구하기 위해 마음과 몸이 발동한 상태와 같이 지극한 선에 머무는 것)


이것이 내가 고갈되지 않는 법이다. 극한 상황에서 잘 발현되는 특징이 있어 사서 고생을 좋아한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이 길에 들어섰다는 것 만으로 매일 감사하다.


찰나라 할지라도 타인이 나 같아서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부모마음)은 귀하다. 그 마음이 올라올 때 마다 의식적으로 바라보며 강화시켜본다. 세상 모든 어른은 누군가가 낳아놓은 자녀이고, 제 정신으로 보면 다 애틋하다.




식습관이 건강한 편이나 라면은 끊지 못함. 설산에서 먹는 라면은 그 어떤 설교보다 나를 거듭나게 한다.


유타에 왔으니 몰몬교 회당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는데 한 여인이 미소 띤 얼굴로 우리에게 티켓을 투척하고 감.  가만 보니 무려 '티에리 피셔!' 뜻밖의 행복.


애틋해서 (아빠체_thin), 3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2022 브런치북 <아스팔트 우주>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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