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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Feb 28. 2023

로드트립의 이유

'통째로'의 경험



성인(聖人)은 말하는 자연이고
자연(自然)은 말 못 하는 성인이다.

좋아하는 말이다.

누가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듣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나는 브라이스 캐년 속을 처음 걸었을  자연이 주는 위력적 사랑에 속수무책으로 해버린 적이 있다. 눈에서 물이 나왔는데 우는  아니었그냥 눈의  조절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자연으로부터 그런 강렬한 사랑을 느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모든 자연과 함께한 순간엔 각기 다른 '좋음' 있었다.


오늘 아침 갑자기 그중 하나가 생각났다.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신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 세계에서의 시간은 원형이나 나선형 보다는 직선형이었다. 그 직선의 시간은 이해가 용이했으나 그것만으로 온전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 '온전치 못함'의 느낌은 언제고 내 존재 한 켠에 환풍기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면서도 처음 보는 땅을 여행하며 새벽길을 걸으면서도 낯선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함께 살면서도 환풍기는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죠슈아트리 국립공원 근처를 지나가다 기괴한 형상의 죠슈아트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중 직선과 곡선의 시간이 화해를 하며 통째로 내 속에 들어왔다.


작년 봄이었다.


통째로의 느낌은 나에게


아침에 일어나면 밤이 오고

또 아침이 온다 했다.


봄이 오면 겨울이 오고

또 봄이 온다 했다.


우리 태양은 50억 년 뒤에 소멸하지만

또 다른 태양이 이미 수도 없이 존재한다 했다.


빅뱅과 빅크런치 같은 우주적 사건도

개인의 호흡 행위와 별반 다를 게 없다 했다.


직선과 곡선의 시간관이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고 그저 관측의 문제라 했다.


얼마나 가까이 혹은 멀리서 보느냐의 문제라 했다.


그리고는

이제 그것에 대해 그만 생각해도 좋다 했다.




자연은 말 못 하는 성인이라서 자연과 함께하면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자연은 내가 어두운 상태로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도록 놔두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다. 그래서 틈만 나면 떠나게 된다. 생활에 여유가 넘쳐서 떠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걸 먼저 하려는 습성 탓이다.


가끔은 사람에게서도 자연이 주는 이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런 사람은 드물다.


그래도 있긴 있다.




눈 녹여 커피 내릴 물 만들기.


미 서부 쪽 흔한 오후 색


아침 색


동틀 무렵 색


재작년 파사데나에서 적은 글. 사이즈가 기억나지 않는다. 옥당지에 먹, ACCI CALLIGRAPH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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