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남자와 사는 한국여자
나의 결혼 생활은 일반적이지 않다.
'일반적'이라는 말만큼 실체 없는 말도 없지만 정말이다. 가끔은 남편과 살아가는 일상의 일부를 무작위로 뚝 잘라 현대미술관에 상영하면 그대로 전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대단한 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현대미술관에 틀어놓아도 '무방한' 무언가가 있다.
남편은 일본계 미국인으로 출생지는 아프리카. 나는 그냥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사람.
이 두 개인이 희박한 경우의 수를 뚫고 만난 것도 신기하지만 10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넘어 아직 함께라는 것 또한 - 내 성향을 아는 나로서는 - 기념비적이다.
나는 결혼이라는 인습이 왠지 내 삶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결혼 생각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뉴욕을 여행하다 마트에서 내 앞에 줄 서 있는 한 커플을 보았다. 여자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남자를 위해 자기 백팩에 물통을 들고 다녔는데 그 물통을 서로 주고받는 자연스런 모습을 보고 나는 결혼을 결심했다. 뭔가 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결심하자마자 나와 결혼하자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래서 했다. 세월이 조금 지나 보니 내 남편이라는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미국 시간으로 오늘은 삼일절이다.
삼일절은 남편이 나에게 사과하는 날.
대한독립만세도 한다.
실제로 외친다. 둘이 거실에서.
이 리추얼은 재작년부터 시작했는데 미스터션샤인이 발단이었다.
남편과 함께 미스터션샤인을 보통 저녁 먹으면서 봤는데 목구멍이 꽉 막혀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그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일본을 대표해서 빨리 사과하라고 당신은 일본계 미국인이니 두 배로 사과하라고 소리쳤다. 남편은 그때마다 정말 미안하다며 웃음을 꾹 참는 얼굴로 사과를 여러 번 했는데 나는 웃음기 뺀 사과를 재차 요구하였고 이미 받은 사과만 해도 수두룩하다.
남편이 이제 4시면 집에 온다.
오늘도 우리는 거실에서
거국적 삼일절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오늘처럼 한미일 삼국 간 역사를 가끔 생각해 보는 날이면 이 남자와 한 지붕아래 밥을 해 먹고사는 것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