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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Mar 14. 2023

광활함이 주는 것

5번 국도의 일관성과 원만함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은 신성하다.
나는 모든 것을 믿는다.
신성한 것은 없다.



스물여섯 살 때 자그레브에서 만났던 스웨덴 청년이 자기 팔뚝에 적어달라고 했던 말이다. (I believe in nothing. Everything is sacred. I believe in everything. Nothing is sacred.)


20대 때 길에서 붓글씨를 쓰며 여행을 했는데 글씨를 종이에 말고 몸에 적어달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겉으론 '그건 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미디엄을 경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표면의 관점으로만 보면 사람 몸도 그냥 미디엄이다. 인간이라고 다 같지도 않고 인종이나 피부 상태에 따라 다른 미디엄. 표정의 이유는 실제 곤란했기 때문인데 평면에 익숙해져 있는 손의 관성을 입체면에 대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어떤 말들은 한번 들으면 안 들은 상태로 돌아갈 수가 없는데 이 스웨덴 청년이 아무렇지 않게 뱉은 문장이 내게 그랬다. 표면적으론 범신론 내지는 범재신론적 메시지를 담은 듯 하지만 내겐


프리 다이버(Free diver)들이 광활한 정신의 세계를 노닐다 바닥을 찍고 수면으로 떠오르며 내지르는 소리 같았다.




5번 국도를 타고 시댁에서 집으로 간다.


동글동글 초록 언덕이 시야 끝까지 뻗어있고 잊을만하면 까만 노란 점들이 나타난다.


풀 뜯어먹는 까만 소.

봄비 왔다고 신난 노랑꽃들.


이런 광활함을 다섯 시간 정도 멍하니 보다 보면 모든 것을 믿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절로 올라온다.


믿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 김에

오랜만에 My God is Awesome이라는 노래를 귀에 꽂은 채 생전 처음 보는 채도의 초록색을 계속 바라본다.


노래하는 흑인 아저씨가 손뼉을 치며

하나님이 산을 옮길 수 있단다.

당연하지. 하나님이 산이고

융기 침강 법칙인걸.

흑인 아저씨들이 치는 손뼉엔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하나님이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말은 뭉클하기도 웃기기도 하지만


아무것도 신성한 것이 없기에

모든 것이 신성하기에

내게 2 x 2 = 4 이상의 감흥은 아니다.

그런데 또 어떤 날은 2 x 2 = 4 만큼

은혜로운 명제도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흑인 뮤지션들을 따라 손뼉 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 모습과 조지 칼린이 십계명 까는 걸 보며 낄낄대는 내 모습에 아무런 반감이 없다.




남편이

태어나서 5번 국도 풍경이 이렇게

초록색인 것을 처음 본다고 한다.

나도 처음이다. 매번 우중충한 갈색이었다.


5번 국도는 일관성 없음으로

큰 틀에서의 일관성을 획득했다.


그래서 나는

일관성에 꽂힌 사람보다는

원만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한계를 지녔다.


남편이 좀 원만한 편이다.

처음 만났을 땐 그 원만함이 촌스러웠는데

지금은 좋고 부럽고 렇다.





수소회전처럼 원만한 나의 남편 (보이저호 골든 레코드 다이어그램  중 일부), 2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브런치북 <아스팔트 우주> 에서 발췌


옛날 윈도우 7 바탕화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실리콘밸리와 멀지 않은 곳. 마이크로소프트 바탕화면 이미지 담당자가 퇴근길에 찍은 사진들이 2000년 초반 우리 모두의 바탕화면을


장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 모든 영향력이 한 명의 담당자로 인해 결정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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