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 토카르추크 덕분에
내 동생은
세상 귀찮은 표정을 하고 태어났다.
어릴 적 사진을 봐도
그 나이대의 새록함 보다는
'만다꼬 또 태어났노...'
를 사진마다 시전중.
그런 내 동생이
유일하게 낙으로 삼은 것은 책 읽기.
유치원생 일 때는 유치원 도서관
초중고 때는 학교 도서관 책을 다 읽더니
지금은 다 자라서 선생님이 되었다.
동생과의 대화를 좋아한다. 인스타 디엠으로 보통 하는데 'ㅋㅋㅋ'가 80%이고 나머지 소통은 단어 몇 개면 충분하다. 하루는 동생이 디엠으로
"언니야!
올가 토카르추크 완전 언니야 긋다!
'방랑자들' 읽어 봤나?"
"아니, 봐야 되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
그래서 읽기 시작했는데
앞대가리만 봐도 그녀가 내 족속(kindred spirits) 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그녀의 결을 따라
갈 곳 잃은 내 생각들이 잘 방치되어 있는
작가의 서랍 대청소를 시작한다.
페르시아 오이 5개,
마늘 반 숟갈, 소금 조금, 식초랑 까나리 액젓 한 숟가락, 고춧가루, 꿀 조금
맛있어 죽는 줄.
어떤 날 아침은 몇 겹을 열어젖히고
어떤 날 아침은 한 겹만 열어젖힌다.
어떤 날은 정말 많은 겹을 열어젖히고 일어나는데 이런 날은 오후에도 밤에도 겹이 계속 열린다.
살아 돌아다닌다는 게 세상 신기하다.
이것저것 다 해도 결국 돌아가는 곳: 쓰기의 휘발적 기쁨
하루는 라구나비치에 스노클링을 갔다.
내가 가자 해서 갔지만 날씨가 우리 동네와는 딴판이었고 바다에 잡아먹힐 것 같았다.
"우리 설마 이 풍랑에 들어갈 건 아니지? 그냥 구경만 해도 시원하고 좋다! 그치?"
"아니? 나는 들어갈 건데?"
고집이 센 남편과 20분 정도 아웅다웅하다 기어이 오리발을 신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 물에 들어가는 남편 뒤태를 본다.
죽으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죽어도 되지
어차피 자고 일어나면 또 볼 텐데
너무나 자명한
아무렇지 않은 사실로 훅 들어온다.
내 존재에 인지능력이 있음을 인지한 순간부터 나의 부모는 둘이 잘 놀았다. 그들은 내게 인류였는데 인류가 잘 노는 모습을 보고 자란 나는 세상이 재밌는 곳이라는 편견이 생겨 최악의 순간에도 일단 웃고 보는 인간으로 커버렸다. 이 편견은 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인간의 길을 가면 호연지기가 흐르고
꿈을 좇으면 갈급하다.
인간의 길은 많은 생이 요구되고
꿈은 몇 년으로도 이룬다.
한 생에 이루어지는 무언가를
원하지 않기로 했다.
16살 때 그리 마음먹었다.
예뻐서.
내게 예쁨은
눈에 거슬리는 게 없는 상태인데
지속가능성의 대전제다.
꿈에 탐 웨이츠가 뭐라 뭐라 정말 신선한 말을 읊조렸다. 깨자마자 세수하고 책상에 앉아 적으려고 했는데 세수하다 사라졌다. 원통하다. 탐 웨이츠 웬만하면 안 나오는데.
나는 내가 이 짧은 파편들로 어떤 전개를 하려고 했는지 다 까먹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젤 재밌다. 제정신으로 생각해 보면 누구나 자기가 젤 재밌을 것이다.
하늘아래 새로운 건 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