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in of thoughts
작가의 서랍이 덜컹댄다.
본격 본업 시즌에도 불구, 오고 가는 휘발성 영감을 놓치고 싶지 않아 서랍에 붙잡아 둔 것들이 밤마다 소리를 내는 것. 할 수 없이 당분간 작가의 서랍전展을 열기로 했다. 무슨 대단한 작가의 서랍 구경하는 느낌은 아니고 그냥 내 브런치 계정의 '작가의 서랍'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이다.
작가의 서랍전이라는 말을 생각해 놓고 흡족한 마음에 스스로 등을 뚜드리고 있는데 혹시나 검색해 보니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 브런치 ‘작가의 서랍전'이 뜬다.
역시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군!' 하며 방금 작가의 서랍병病으로 전시명을 바꾸었다. 안 그래도 신나게 시작해서 마무리 안하는 병이 있으니 잘 됐다.
본 전시엔 문장이 채 끝나지 않은 것들도 있다. 결말을 맺어드리고 싶지만 당시 타고 있던 생각 기차를 놓쳐서 할 수 없기도 하고 안 끝내면 어떻게 되나 궁금하기도 하여 그냥 두기로.
배수구로 돌돌 굴러간 복숭아
"헤헤이! 제일 이뿐기 쏙 빠졌네. 우야꼬!"
"내가 주워오께! 기다리 바바!"
다섯 살 내 손은 엄마 손 보다 작고 유연했다.
시골 이모집 수돗가는 시멘트로 네모나게 빚어져 있었고 약 5도 경사로 물이 자연스레 배수구로 흐르는 구조였다. 신난 표정으로 복숭아를 씻던 엄마 손에서 복숭아 하나가 탈락하며 배수구로 쏙 들어가 버렸고 그 사이엔 내 손가락 굵기만큼의 공간이 있었다. 연희의 생활력만 남은 손가락이 들어갈 틈은 없었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손을 조심스레 배수구에 넣어 복숭아를 세게 쥐지 않고 쏙 빼냈다.
물 묻은 애기 손은 신기했다. 인형 뽑기 기계 같은 무력한 그립에도 복숭아에 착 달라붙어 기대 이상의 장력을 발휘했다.
우리 아찌는 이런 것도 잘한다며 엄마가 호들갑을 떨었다. 이런 것 '도'가 마음에 들었다. 이 ‘도’는 내 자아상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다음에 자식 낳으면
오늘의 촉감 수집
1. 유칼립투스
버드나무처럼 축 처진 유칼립투스 잎이 좁은 샛길에서 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거칠지만 퍽 다정한 손길이었다.
2. 벌새와 박치기
산책하다 벌새랑 박치기했다. 정면으로 박은 건 아니고 뒤에서 쌩- 하고 오더니 내 옆 이마를 치고 날아올라 전선에 앉았다. 배냇저고리 입던 시절, 힘 조절이 안 돼서 팔을 허공에 휘젓다가 내 이마도 긁고 하던 그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설마 배냇저고리 입던 시절을 기억하는 건 아니고
그렇겠거니 해서 적어봤다.
퇴사 전리품
세상에 시시한 게 하나도 없다.
깎여져 나간 풀밭 초록 내음, 돗자리, 바람, 이유식 먹는 아기.
어제 전 직장 동료와 공원에서 놀면서 든 생각이다.
그녀는 내 퇴사 전리품이다.
둘 다 어른인데 만나면 다섯 살 어린이처럼 놀 수 있다. 하이쿠 배틀도 하고 네잎클로버도 찾고 아무말하며 깔깔대다 보면 하루가 훌쩍 간다.
전 직장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대학원에 들어가 교육학 학위를 따고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그녀. 이미 좋은 선생님인데 더 잘 가르치고 싶어서 다섯 살 아들 키워가며 젊은 애들 틈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하는 모습이 예쁘다.
돗자리에서 일어서며 서로의 엉덩이를 툴툴 털어준다.
"야, 우리 무슨 목욕탕 갔다 온 것 같다.“
"엌ㅋㅋ 하핳ㅎㅎ"
온통 자연스럽게 머리 말리기
일단 머리를 매매 감아.
(매매: '꼼꼼히'의 경상도 말. [매애-매애-]로 발음)
수건으로 두피를 꾹꾹 눌러가며 물기를 제거한 다음 그 상태로 마당에 나가.
나는 드라이기보다 햇볕이 좋아서 밖에 나왔지만 사람들은 내 사정을 알 도리가 없으니 머리를 설설설 만지면서 핸드폰 한번 보고 도로도 한 번 봐.
그럼 사람들이 내가 우버를 기다리는 줄 알 거야. 사람들은 상식적인 사람을 선호하거든. 오로지 햇볕에 머리를 말리기 위해 대낮에 집 앞마당에 나오는 행위는 상식적이지 않아. 그리고 어른들은 대낮에 집에 잘 없어. 다 일하러 갔거든.
이렇게 한 오분간 머리를 만지면서 우버를 기다리다 보면 두피까지 바싹 마르는데
가끔은 햇볕을 이렇게까지 끌어다 쓰는 내 모습에 혀를 차게 돼.
그치만 너무 좋아. 따뜻하고 유익해.
나한테 잘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