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때 하는 생각
캔버스에 수성페인트를 얇게 발라놓으면 먹이 잘 먹는다. 언젠가 새 캔버스 비닐을 뜯자마자 쇼를 해야 했는데 내 눈에만 보이는 미세 기포가 붓이 가는 곳마다 수백 개씩 따라오는 바람에 얼굴이 벌게진 채 퍼포먼스를 끝내야 했다. 모든 감정을 연료화하는 버릇이 있는 나는 그 화기도 버리지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불쾌감을 휙휙 전환시키는 건 매번 어렵다.
토요일 쇼 준비로 내 키 만한 캔버스 두 개 밑칠 작업을 했다. 오후에 하나, 저녁 먹고 나머지 하나를 하는데 남편이 한참을 쳐다본다. 그의 손에 쥔 핸드폰이 힘 없이 무릎에 내려와 있다.
"당신도 해봐. 이거 슥슥 이렇게 아무렇게나 하면 돼. 재밌어."
"나는 그런 자유로운 거 싫어."
온통 관심 있는 눈으로 봐 놓고는 딴청이다. 대파는 그렇게 자유롭게 써는 사람이 이런 류의 자유로움은 싫구나. 아... 알았다. 이건 권유된 자유로움이라서? 설마 내가 말한 '아무렇게나'에 내공이 필요하단 걸 눈치챘나?
몰라. 매일이 새로운 이 관계. 내일이 궁금해서 절대 이혼은 못 할 것 같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흰 캔버스를 보면 흥분하고 남편은 번뇌가 시작되는 사람이니까.
이번주는 라크마(Lacma) 앞에서 쇼를 한다.
Tarfest라는 뮤직 페스티벌 식전 행사로 소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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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세 개의 원료로
11,172개의 자형字形을 만들어 낸 분과 함께 점도 찍고 줄도 긋고 해야지! 쇼 시작도 안 했는데 가슴은 벌써 지난주부터 붓을 쥐고 있다.
한글이 세상 모든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식의 내지름은 별로지만 그럼에도 한글에는 무언가가 있다. 한글은 무려 해례본 있는 문자다. 자연발생한 모든 문명권의 문자가 나름의 독창성이 있지만 한 개인이 의도적으로 철학, 과학, 예술을 아우른 문자 체계를 당대에 만들어 냈다는 것, 그리고 그 개인이 국왕이라는 점은 신선하다.
대부분의 내 외국인 친구들은 하루 만에 한글 읽는 법을 배웠다. 레고처럼 상하좌우로 조립되는 것, 자음과 모음이 생김새 만으로 구분되는 것에 감탄했다. 여섯 살 무렵, 아빠 차를 타고 대구 어딘가를 지나가고 있는데 나무가 많이 보이는 넓은 땅에 '나무 시장'이라는 팻말이 서 있었다.
"나무... 시장?"
"아이고! 우리 아찌 어떻게 알았어?"
"... 그냥 그렇게 생겨서."
여섯 살 아이 입에서 '그냥 그렇게 생겨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직관적인 문자.
이런 류의 보편적 직관은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몰입 단계에서 얻어지는 영감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세종대왕을 좋아한다. 마이크 들고 소리칠 것이다. 이것 좀 보라고. 예쁘지 않냐고. 여기 있는 점과 선이 뭔지 아냐고.
이 모든 생각 기차들이 지나가고 밑칠이 완성되었다.
"여보, 나 이번 쇼는 헬퍼가 없어. 당신 하루종일 내 옆에 딱 붙어 있어야 돼, 알았지?"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