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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Apr 23. 2024

안나는 잘 있다

그녀의 친구들도




남부 캘리포니아에서는 선인장 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애석한 점은 다음날 가 보면 벌써 져 있거나 (한나절 만에 갈변하는 꽃도 봤음!) 길어야 이틀 간다는 사실. 몸집은 굵고 거친 반면에 꽃은 여리여리 화려한 데다, 성급하게 가버린다는 걸 알고 나서는 마주할 때마다 한참을 본다.


찍어둔 선인장 꽃을 찾느라 남편과 함께 쓰는 클라우드를 스크롤하는 와중에 내가 찍은 선인장 사진과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 사진을 여러 장 발견하였다. 이게 뭔 귀신 곡할 노릇인가 싶어 보니, 남편이 같은 날 퇴근하고 산책길에 찍은 거라며, 당신도 찍었냐고 신기한 듯 웃었다.


남편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미묘하게 좀 더 노란 느낌이 났는데, 나는 점심 무렵에 산책을 했고, 남편은 해지기 전에 해서 그런 모양이다.


왼쪽은 점심때 내가, 오른쪽은 해질 무렵 남편이 찍음. 이름은 Echinopsis Oxygona. 왼쪽 사진의 수술과 꽃잎들이 아주 미세하게 더 피어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꽃이 설마 아직 피어있으려나 싶어 방금 다시 다녀오는 길에 웃긴 일이 있었다. 근방에 정원관리를 세 명의 히스패닉 남성들이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픽업트럭으로 보이는 차량 문 앞에 100달러 지폐가 떨어져 있었던 것.


"어! 여기 백 불 떨어졌는데 혹시 세 분 중에 오늘 백 불 잃어버린 분 있어요?"


(다들 주머니 주섬주섬)

"아니요, 우리 거 아닌 거 같은데요?"


"확실해요?(위치 정황상 너무나도 그들의 돈이었음)"


이윽고 셋 중 한 명이 다가와 돈을 이리저리 살핀다.


"이거 가짜 돈 같아요. 뭔가 색이 옅고... 뒤에 봐봐 'copy' 써 있네!"


보드게임용 종이지폐였다. 우린 잠시 함께 웃다 나는 내 갈길, 그들은 하던 일로 복귀했다.


사실 나는 스몰토크를 싫어하지만 정원 관리 하는 히스패닉 분들에게 가끔 말을 거는데, 그들이 풍기는 낙천적 분위기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하루는 그 귀여운 분들이 가로수 가지치기를 하고 있었다. 또 세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의 등에 왕대빵만한 사마귀가 있었다. 말 걸 거리가 생긴 나는 신난 표정을 숨긴 채 말했다.


"내 말 듣고 놀라지 마요! 알았죠?"


"(벌써 놀램) 왜요? 웟? 와이?"


"등에 커다란 사마귀 있어요."


'놀라지 말라'는 빌드업 덕에 남자는 방방 뛰며 옆 사람에게 빨리 털어달라고 중학생 소녀처럼 난리를 쳤다. 마추픽추 짓게 생긴 사람이 사마귀 가지고 방방 뛰길래 웃음 참느라 애를 먹고 있는데, 그의 친구들도 사마귀 털어내는 척하면서 주변부만 툭툭 치며 웃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아직 있었다. 사실 정말 오래 피어있는 선인장 꽃도 본 적이 있는데, 그건 꽃이 작고 잎이 통통했다.


그래서 안나가 얼마나 컸냐면 벌써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다. 고등학생 같기도 하다. 오른쪽 사진에 노란색이 살짝 감도는 안나는 처음 구글 검색으로 만났던 안나와 흡사할 지경.



안나가 이렇게 잘 크는 걸 보니 나도 뭔가 몸에 좋은 걸 먹고 잘 커야겠다는 생각에 멕시칸 마켓에 갔다. 그곳엔 제철 농작물이 많기 때문이다. 이날의 수확은 그린 아몬드. 그린 아몬드는 딱딱한 아몬드 되기 전의 상태로 껍질 째 먹는다. 맛은 - 내 미각이 미친 게 아니라면 - 매실과 비슷하다. 매실이 우메보시나 매실장아찌로 변신하기 전 본연의 매실 맛. 보통의 미국 사람들은 잘 안 먹는 재료고, 지중해 쪽 친구들이 소금 찍어 먹는 거 봤다.


우리가 아는 아몬드 상태와는 전혀 다른 영양성분을 지닌다. 이 점이 재밌다. 같은 열맨데 성장 단계에 따라 성분 자체가 다르다는 거. 씹다 보면 몸에 좋겠다는 확신이 드는 맛이다. 딱히 맛있어 죽겠지는 않는, 평생 안 먹어봐도 후회 없을 그런 맛.


제철음식의 활기로 어젯밤 먹은 라면의 탁기를 희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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