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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Nov 28. 2022

캘리그래피 퍼포먼스의 구상과 실행



보통 퍼포먼스 하나를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몇 달에서 몇 년 정도로 다양한데, 지금 쓰고자 하는 퍼포먼스는 공익성 퍼포먼스로 약 석 달이 소요되었다.


2019년, 캘리포니아는 주 공식 기념일로 한글날을 제정했는데, 당시 재외공관 근무 일 년차 였던 나는 적잖이 놀랬던 기억이 있다. 뉴스에 가끔 나오는 재외공관 이미지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참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주 한글날 제정도 담당자들이 끊임없이 정성 들이는 모습을 보아온지라 제정이 확정되었던 날 내 일처럼 기뻤고, 그래서 더욱 이 퍼포먼스에 영혼을 갈아 넣으리라 다짐했다.




나는 평소 세종대왕 덕후이기에 한글의 철학적 부분에 대한 내면화 작업은 스킵하고, 시각적 부분을 어떻게 다듬어야 미국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세종대왕에게 기도를 했다.

내 재능은 한계가 명명하고 관객은 미국 사람이니 어떻게 한글을 보여주는 게 좋을지 말씀 주시면 그대로 하겠다고.


세종대왕은 아무 말이 없었다.

나름 나 혼자 내적 친밀감 갖고 살던 분인데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내 맘대로 하기로 했는데 내 맘대로 하기로 한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마음속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마음속에 시원한 바람은 내 눈앞에 공사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인부들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그래! 세종대왕이 한글 짓는 모습을 공사장에서 인부들이 집을 짓는 모습으로 표현하자! 그리고 다 짓고 나서 한글을 왜 지었는지 반포문을 읽어보자!'


마음속에 신남이 올라와버린 나는 남편과 홈디포(각종 공사 장비를 살 수 있는 마트)로 달려가서 글씨를 쓸 수 있을 법한 공사장비를 한 아름 담아와서는 그날부터 재료들의 물성을 파악하고 큰 펄프지에 글씨를 써 보았다.


우리 선생님 말이 맞았다.

나에게 서예를 가르쳐 주신 김정수 선생님 말이다. 붓이 가야 할 길만 알고 있으면 그게 대붓이든 빗자루든 나무 작대기든 같은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공사현장 컨셉을 확실히 잡았으니 이제 음악이다. 세종대왕이 자음을 지을 때, 모음을 지을 때, 창제 정신, 이렇게 총 3 파트로 쇼가 구성되었기에 소리가 음양적 특성으로 부딪혔다가 재창조의 결말로 나아가도록 시퀜스를 잡았다.


그렇게 시각적, 청각적, 의미론적 구성을 다진 다음 나는 대략적 내 몸의 움직임을 미리 짰다.


이 부분은 우발적으로 놔두는 것도 좋지만 공익적 퍼포먼스는 정확한 메시지 전달이 중요하기 때문에 미리 좀 짜 놓는 편인데, 연습을 거듭할수록 그 짜여짐 안에 자유로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달이 지나고 드디어 행사 당일.

행사장에서는 항상 변수가 존재한다. 변수가 없는 행사는 없었다. 그래서 그날 아침 집을 떠나면서도 변수가 너무 많지는 않기를 기도하며 출발했다.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큰 변수.


퍼포먼스를 하기로 되어있었던 스팟에 무대가 설치되는 바람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통로 같은 구간에서 퍼포먼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부분이 걱정되어 재차 확인을 했음에도 이런 일이 기어코 일어나 화가 훅 올라왔지만 컨디션 조절을 위해 화를 눌러버리고 변경된 장소로 갔다.


변경된 장소에서 평소에 쇼를 도와주는 친구 크루들과 퍼포먼스 할 캔버스를 한참 깔고 있는데 갑자기 금발의 백인 여성이 다가와서는 그 통로로 행사 주빈 퍼레이드가 진행될 예정이니 캔버스를 철거하라고 했다.


꾹 눌러놓은 화가 다시 훅 올라왔지만 화 따위에 쓸 에너지는 없었다. 나는 그냥 캔버스를 밟고 지나가도 된다고 웃는 낯으로 말했다. 진심이었다. 철거 따위 할 시간도 없고 하고 싶지 않았다. 발자국이 남는다면 남는 대로 퍼포먼스 일부로 삼기로 했다.


그 여성은 5분 뒤 다시 우리에게 다가와 아까 자기가 실수했다며 담당자끼리 소통 착오로 벌어진 일이니 진심으로 사과한다고했다. 나는 아까 화내지 않고 대응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캔버스를 설치하고, 음향을 확인한 후, 리허설을 두어 차례 하고 있는데 갑자기 촬영 작가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행사장에 왔는데 우리가 있는 스팟을 찾지 못해 더운 날 장비를 들고 이리저리 헤매다 지쳐서 집에 다시 가고 있다는 문자였다.


이게 가장 크게 털린 부분이었는데, 촬영기록이 현장에서의 쇼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렇다 치고, 그 장문의 문자는 감히 어디서 시작해야 좋을지 모를 비상식으로 점철되어있었다.


나는 1분 정도만 잡쳐있는 기분 상태로 있도록 나를 허용한 다음 1분이 지나자 확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정신을 바짝 차려 개인용 고프로를 남편 손에 쥐어주고 내 친구 크루들에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최대한 여러 각도에서 촬영에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쇼가 시작되고 전주가 흘러나오자

내 마음은 천지연처럼 고요해졌다.


나는 세종대왕과 함께 공사장비로 모음과 자음을 짓고 반포문을 읽었다. 미국에서 아리랑을 틀어놓고 훈민정음 반포문을 영어로 읽는데, 형언하기 힘든 감정이 솟구쳐올랐다. 그러나 목소리가 너무 그 감정에 휘둘리지는 않도록 차분하게 읽어나갔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그리고 몇몇은 주차장까지 따라왔다.

나와 나의 크루들은 서로 얼싸 안은채 발을 동동구르며 서로의 노고에 열정적 감사를 표했고, 예상치 못한 변수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는 또 다른 내 손의 움직임, 그리고 몸의 움직임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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