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CCI Nov 29. 2022

노후 준비물에 대한 부부의 대화

Feat. 내 준비물 자랑

지난 목요일 땡스기빙 저녁 자리에서 시댁 외삼촌이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다.  


"나 이제 곧 여든이잖아. 늙는다는 게 그냥 고분고분 주름만 생기는 게 아니야. 어릴 때부터 내 몸이 겪었던 온갖 자잘한 사고 뒤에 숨어있던 통증이 밖으로 다 나오는데... 우와 진짜 장난 아니야(웃음). 그냥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하라고!(찡긋)"


나는 저런 말을 귀담아듣는 편이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서우면서도 뭔가 기대되는 문장이었다.   


문장 말미의 웃음이 의미심장해서였을까? 몸의 통증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재미가 있다는 듯한 겪은 자의 여유가 있었다.


시댁 외삼촌 일상으로 순간 빙의해 보았다.   


그의 삶은 여유롭다.

빈티지 포르셰를 수집하는 게 취미인 그는 친부가 생전 운영하시던 대형 세탁소를 차고로 개조하여 매일 차를 들여다 보고 정비하는 낙으로 산다.


일도 한다. 아들과 함께 자신의 건물 유지 관리를 부지런히 직접 한다.


차 모으는 것 외에 별다른 취미는 없고, 문화생활을 한다거나 RV로 로드트립을 한다거나 하는 건 일절 없다.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들은 마흔인데 부모와 함께 산다. 부부 사이는 평범하다. 딱히 좋거나 나쁘지 않다.   


여기까지 들으면 부러운 건 돈 말고는 없다. 돈은 다양한 측면에서 자유를 선사할 수 있고, 주변에 뭐라도 베풀 기회가 많아지니 부럽다. 그게 저 고통스런 문장 말미의 웃음의 의미인가 싶기도 하다.  


외삼촌보면 그냥 부자처럼 생겼고, 부자가 어울린다. 뭐가 됐든 자기에게 어울리는 뭔가를 지니게 된다는 건 좋은 일이다. 외삼촌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를 택한 사람이고, 그것을 성취하는 치열한 과정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삶의 가르침을 얻었을 것이다.   


나는 에리히 프롬의 관점도 좋지만 존재를 소유보다 우월한 위치에 두지는 않는다. 그 둘을 뭐하러 구분하나 싶고, 그냥 자신에 대한 앎을 바탕으로 자기 다운 삶에 집중하면 참으로 소유하고 참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자신에 대한 앎'의 영역을 최대한 넓혀 놓는 게 관심사다. 나에 대한 앎이 깊어져 스스로가 마음에 들수록 세상에 나만큼 재미진 게 없고, 그럴수록 외부적 자극으로부터 기쁨을 찾는 습관이 사그라든다. 나는 이것을 노년에 몸이 불편해진 내가 정신이 뛰 놀 수 있는 놀이터를 지금부터 미리 만들어 놓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름의 노후대책이다. 

참나 참소유 참존재 (아빠체_street) 1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2022

사물의 도에 능한 일본의 후손답게(시댁 식구들은 일본계 미국인이다.) 시 외삼촌은 자동차라는 사물의 역사와 작동 원리를 관찰함으로써 자신에 대해 매일 새롭게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알아가는 방식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재밌고 남한테 해 안 끼치면 그만이다. 일전에 통역차 박서보 화백을 만났을 때 비슷한 맥락의 말을 들었다. 그는 맨날 이렇게 똑같은 줄을 긋는 단색화 그리는 게 자신의 수행법이라고 했다.


근검절약 정신으로 무장한 시댁 식구들은 시댁 외삼촌이 타지도 않을 포르셰 여러 대를 관리하며 사는 것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지만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그가 자동차 관리하는 취미가 있어서 퍽이나 다행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훌륭한 노후 준비를 하신 거라 생각한다. 시댁 외삼촌도 나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렇게 딱히 맛있지도 않았던 내 모둠전을 모두 앞에서 연신 칭찬하셨던 것이다.  




우리 남편은 노후 준비로 뭔 생각을 하나 궁금해진 나는 침대에 누워 내 노후 준비물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햇볕 보면서 산책하는 게 몸에 익어서 그거 일단 준비해놨어. 잘했지?"


"어. 일조량은 건강에 중요하니까. 잘했네! 나도 맨날 달리기 하니까 일조량은 확보됐어."


"오오 좋다. 또 뭐 확보했어?  


"어 우리 노후를 위한 최소한의 자금. 그리고 간간이 장거리 여행할 계획!"


"오이예! 진짜? 그럼 나 마음 놓고 내 하고 싶은 것만 해도 되겠네!"


"어 근데 당신도 곧 돈 벌어야 돼. 당신 퇴직금 이제 바닥나거든."


"(급 시무룩)... 그렇게 뼈 안 때려도 나도 알아. 또 뭐 확보했어?"


"음... 매일 아침 명상 습관도 확보했네?"


"좋겠다! 나는 못해. 나는 산책이 명상이야. 대신 요즘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해보려고. 평생 좋아해서 하긴 했지만 각 잡고 한번 해보고 싶어. 늙어서 글 쓰면 얼마나 더 할 말이 많고 재밌을까!"


"어! 나도 그거 하고 있는데 신기하네!"


"그리고 나는 크리에이터 커뮤니티 만들어서 같이 작업하고 놀러 다니고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서 지금부터 준비 중이야."


"커뮤니티는 중요하지. 또 뭐 있어?"


"한국이랑 미국 시골에 작은 집 하나씩 지어놓고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거. 그거 하고 싶어. 시골에는 별로 안 비쌀 거 아니야. 그치?"


"어 근데 관리비랑 비행기 값이랑 감당하겠어?"


"어. 하겠어.

그때 되면 나 돈 많이 벌거거든."


"하핳. 알았어. 당신 믿어. 또 없어? 나도 좀 참고하게."


"응 많긴 한데...당신이 참고할까 봐 그만 말할래! 당신 꺼는 당신이 찾아! 잘 자!"




작가의 이전글 캘리그래피 퍼포먼스의 구상과 실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