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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Dec 01. 2022

미국 이민 왜 갔냐고 물으신다면

고프로적(GoPro的) 삶의 추구

미국에 살면 좋은 점이 딱히 없다.


다른 이민오신 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다. 그럼에도 엄마 아부지 보고 싶은 거 참아가며 여기 사는 이유는 남편 때문이다.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자기 직장 가족 친구 다 놔두고 나랑 살겠다고 말도 안 통하는 한국에 와서 5년을 살았다. 내가 미국을 별로 안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 5년의 언저리를 살던 어느 날,

캘리그래피 스튜디오를 운영하던 나는 한바탕 강습을 끝내고 널따란 테이블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는 게 만족스러웠다.


순간 창 밖에 불현듯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남편이 한국에 살면서 나만큼 만족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안정적 직장과 친구들도 많이 생겼지만 얼굴이 나랑 결혼했을 때랑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보름달처럼 크게 미소 짓는 사람이었는데

큰 미소는 여전했으나 속이 텅 비어있었다.


나는 나만 행복한 결혼생활은 원치 않아 남편에게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 남편 얼굴이 미국으로 가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았다.


미국 온지 5년.

요즘 남편은 보름달처럼 크게

다시 잘 웃는다.




이번 땡스기빙 때 나를 고장 낸 장본인인 큰 시누 둘째 딸과애착 수건. 강렬한 햇살이 타월 색을 하얀색으로 바꿔놨지만 실물은 먼지 색이다. 저걸 코에 달고사니 면역력 걱정은 없다


지극히 내 입장에서 봤을 때 미국에 살아서 좋은 점은


햇볕.

광활한 대자연과 로드트립.

옷을 안 사도 되는 점.


이 세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햇볕

나는 한국에 있을 때 달고 살았던 신경통(왼쪽 팔이 20대 후반부터 매일 저렸음), 아침에 흔하게 겪던 복통, 그리고 기분 널뛰기가 미국에 와서 없어졌다. 서서히 도 아니고 그냥 싹 없어졌다. 장담하건대 이건 일조량 덕이다. 태양신 숭배가 문명권마다 괜히 일어났겠는가. 받은게 많아서 절로 숭배하고싶어지는 요즘이다.


날이 좋다 보니 지난주 땡스기빙 때 큰 시누가 자기 집으로 가기 싫다고 징징댔다. 같은 캘리포니아라도 샌프란시스코는 남부에 비해 겨울에 꽤 춥기 때문이다.


옷을 안 사도 된다는 것에는 많은 사회문화적 담론이 숨어있으나 한 가지만 꼽자면 나는 내 멋대로 입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되도록 가볍게 입는 걸 좋아한다.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일종의 권력행사인데, 나는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삶의 조건들을 수정해왔고, 이 곳에서는 그게 자연스레 가능하다.


그래서 옷을 좋아하는 나에겐 매일이 행복이다. 옷을 좋아한다고 해서 사지는 않는다. 이미 다 있다. 그래서 내게 어울리는 가벼운 차림을 매일 하고 다닐 뿐이다.


광활한 대자연과 로드트립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은 고프로적(GoPro) 삶을 지향하는 우리에게 좋은 놀이터가 되어준다. 이 부분이 아무래도 미국 생활의 최대 이점이 아닌가 싶다. 미국에 살면서 이것을 하지 않는다면 큰 부분을 놓치고 사는 거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물건을 잘 안 사고, 광고를 싫어하지만 고프로 광고는 다 좋아한다. 삶이 지치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유튜브 검색창에다 "gopro ad"라고 쳐 보면 '맞아! 내가 이런 기막힌 곳에 살고 있었지!'하며 어김없는 탄성이 흐른다. 이런 느낌이 들게 하는 광고라면 얼마든지 낚여줄 수 있다.


문제는, 광고를 너무 기깔나게 만든 바람에 고프로를 너나 나나 사놨는데 구매자들은 그런 라이프스타일도 당연히 패키지에 딸려오는 줄로 깜빡 속는다는 것.


그냥... 주변에 고프로 사놓고 맨날 집에 있는 친구들에게 가하는 일침이다. 그들이 다 뛰쳐나가 놀았으면 좋겠다. 지구는 예쁘고 삶은 짧으니까!


4일 이상의 연휴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멀리 길을 나서는데 이번 크리스마스는 요세미티(Yosemite)다. 남편 취미 중에 하나가 여행 계획 세우기인데 요세미티 계획도 지난달부터 틈틈이 세우는 걸 목격했다. 감사할 따름이다. 겨울 요세미티는 황홀하고 신성하니까.


나는 미국이 자랑할 게 있다면 정말 대자연 말고 딱히 뭐가 있나 싶다. 군사력 경제력, 이런 게 자랑인가? 밀덕 남편이 들으면 경을 치겠지만 남들보다 힘 세고 돈 많은 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게, 아직도 그런 세상이라는 게 나는 서글프기만 하거든.


그런 생각 하자면 끝도 없고 해서 나는

이왕 내 삶이 나를 이 땅으로 이끈 김에

고프로 광고 뺨치는 기깔나는 삶을 살아 봐야지 별수 있나 한다.

고프로를 산다고 해서 라이프스타일까지 따라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피티체_dirty) 1000 X 1000 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2022


https://brunch.co.kr/brunchbook/asphalt-cosmos


#미국이민 #로드트립 #캘리포니아 #여행 #부부 #캘리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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