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밖으로 나오지 않은
내 안의 글씨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밖으로 나온다.
내 붓은 길의 정령이 지배하고 있으니
나는 여행하며 길에서 글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웠는데
숨이 넘어갈 듯 더운 날에도 쓰고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픈 날에도 쓰고
어떤 날은 밤에 잘 곳이 없어
걱정을 하면서도 썼다.
그때마다 내가 참아낸 무언가를 닮은
글씨가 밖으로 나왔고,
나는 딱히 고생 할 팔자는 아니었으나
사서 고생을 할수록
새로운 글씨가 나오는 바람에
멈출 수가 없었다.
잘 곳이 없었던 날은 딱 두 번이었는데,
한 번은 자그레브.
다른 한 번은 로테르담.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돈 대신 글씨를 주고 잤다.
글씨를 주고 건네받은 방 침대에 누워
긴 숨을 내쉬었다.
하루 종일 걱정했던 마음과
침대의 안온함이 부딪히면서
살아있음의 감동이 밀려왔다.
수중에 돈이 없는데도
내일이 걱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