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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Dec 05. 2022

하늘에 떠 있는 불 덩어리


신기한 일이다.

하늘에 저렇게 광명한 무언가가

떠 있다는 것 말이다.


일요일 오후,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남편과 동네 산책을 하던 나는 또 이 느낌을 남편과 공유해야겠다는 몹쓸 욕망에 사로잡혔다.



"여보, 저거 안 신기해?

하늘에 저렇게 빛나는 거 하나가

덩그러니 떠 있는 거 말이야."


남편은 또 무슨 희한한 소리를 하려고 시동을 거냐는 표정이다. 다행히 나는 지난 십 년간 남편을 상대로 '옳은 대답'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해 놓았다.


"어. 신기하네."


표정은 물론 하나도 안 신기하다.

이렇게 학습된 대답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한바탕 깔깔댄다.


남편은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당연시' 할 사람이지 신기해할 사람이 아님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다행히 나는 나보다 남편 생각이 정상 범주에 가깝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굳이 마음의 소리로 그쳐도 좋을 저런 소리를 입으로 뱉어보는 이유는 정말 신기해서!

안 하면 답답하니까!




나는 2016년에 자연적 고양감(Natural High)이라는 작업을 완성했는데, 그 안에는 내가 내추럴 하이를 경험했던 순간들이 모여있다.


상단 중앙 버튼핀은 스트릿아트 씬에서 자주 쓰이는데 길에서 작업을 해 온 내 정체성이다. 작품 앞에 서면 내 두 눈 사이에 그 버튼핀이 위치하게 된다. 태양이다.


자연적 고양감은 사실 영어로 많이 쓰는데, 약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일종의 견성(見性) 상태에 도달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서브컬처 씬에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내가 의도한 의미는 견성 내지는 각성 상태이다).


내게 일어난 이런 자연적 상승의 순간에는 거의 매번 '해'가 있었다.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해를 볼 때면 내 속에도 해를 닮은 광명한 무언가가 있음을 알았고, 그건 내게 있어 세상 무엇과도 거래하고 싶지 않은, 가장 큰 내 존재의 자산이자 동력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안의 해를 만나고 싶어 그렇게 바깥의 해를 보러 산책을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름 낀 날도 나간다.

안 보여도 거기 있으니까.





저수지 가는 길에 석 달 째 피어있는 선인장 꽃. 일주일이면 질 줄 알았는데 석달이나 피어있길래 한번 찍어봄.


이 동네의 가로수랄까. 문 밖만 나서면 길에 널려있는 다육이(?). 꽤 큰 편인데 폭은 내가 양팔 벌린 길이와 비슷하다. 간밤에 비가 와서 물방울 맺힌게 예뻐서 찍었다.


이름 모를 꽃 뒷태. 물방울 못 참으니까 찍었다. 나는 물의 속성과 그것을 둘러싼 모든 상징과 기호를 사랑한다.




#실버레이크 #accicalli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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