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오기까지 무기력한 하루를 얼마나 보냈는지 모른다. 나는 조금 둔한 편이라, 하루가 다 지나간 어둑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서야 후회가 밀려오곤 한다. 그때 미리 해둘 걸, 그냥 시도해 볼 걸 아니면 하지 말걸 하는 후회도 동시에 밀려오곤 했다.
여타 자기개발에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행동이라는 건 알지만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그나마 내 전공을 살려서 기초부터 배워볼까 했지만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모든 시도는 그 기회를 잃었다. 직업과 관계없는 일도 가리지 않고 해 보자는 생각에 다양한 아르바이트도 해봤지만 거기에 얻은 교훈은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뿐이었다.
이후에 더 전문적인 일을 배우기도 하고 대학생 신분으로 내가 살면서 느낀 걸 강연해보고 싶다는 열망도 드러냈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곳에서 거절을 당했다.
나에게는 홀로서기란 두려운 일이었다. 무엇을 배우든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그 분야에 대해서 기반을 다진 후, 차근차근 높은 위치로 올라서는 것 밖에 방법이 없어 보였다.
나에겐 시도 자체가 실패라고 생각했다. 내가 내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면 그것은 영원히 기록되는 것이고, 내 작품이 형편없었다면 그저 그런 사람으로 낙인찍혀, 성공하더라도 그 꼬리표가 계속해서 쫓아다닐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완성된 내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조심해야겠다는 것이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나라는 사람이 그저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타인에게 들키는 게 너무도 두려웠다.
그러다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느낀 특이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실패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 앞에서 선뜻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보통의 용기로는 어려울 일이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그래. 자신의 실패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지금의 위치가 아주 높은 곳에 있어서 편하게 얘기하는 거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의 말속에서 커다란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그들이 도전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실패를 통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하면서 배웠으며 그 점에서 야기된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지금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겐 그것은 도전이 아니라 자신의 현 위치를 확인하려는 일종의 시도의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시도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과 같아서 더 이상 실패라는 이름은 그에 알맞지 않다. 시도는 그저 계단 한 칸을 올라가는 것에 불과한 아주 작은 일이다. 그래서 시도가 없으면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 이제 나는 도전이 검사를 받으려는 시도에 불과하다는 걸 배움으로써 더 이상 내 작품을 세상에 내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과정이 시도였다. 무엇이든 도전하는 행위의 반복이 곧 나를 이끌 거라 믿었다.
중요한 일에 모든 것을 쏟을 때뿐만 아니라 내가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행동 속에서도 나라는 정체성이 있고 그것이 나의 하루를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게 지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배웠다.
나에게 있어서 행동이란, 곧 나의 삶이다.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이다. 습관은 곧 나에게 정체성이자 내가 살아가도 된다는 사실을 지지해 주는 보이지 않는 존재다. 습관이 무너지면 그 하루는 아무것도 없이 무력하게 보낸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수도 없이 보낸 무기력한 하루 덕에 얻은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