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by 각두건





고향에 왔다


고향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그립고 향수가 가득한 곳

부모님의 사랑이 가득 담긴 곳


그런 곳은 내 세상엔 없다


저 곳은 20살의 내가 뺨을 맞은 지하주차장

저 곳은 11살의 내가 파열음 속에서 덜덜 떨던 거실

저 곳은...


익숙한 풍경이 눈에 맺힐 때마다

기억의 가로등이 하나씩 켜진다

가로등 아래 시뻘건 빛으로 가득한 길을 걷는다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숨으려 애써도 붉은 빛은 나를 쏘아내린다

쏟아지는 발길질 속 그때처럼


어느새 어린아이가 된 나는

고동치는 심장을 감당하지 못해

불이 붙는다


장난감 활에 스친 흉터에서

옷걸이 자국대로 멍이 든 등에서

불어터지도록 맞은 종아리에서


울컥 솟아오르는 피를 연료 삼아

불은 더 활개를 친다






그때 쏟아지는 부드럽고 따뜻한 것

이제껏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다정한 향

타오르는 나를 품어주는 연한 살


그의 품에 안겨 나는 드디어 울 수 있었다

자신의 피부가 그을려도 그저 웃어주는

넓은 가슴에 나는 기대어 울었다


기억의 가로등이 다시 켜질 때마다

그는 곁에서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어깨에 볼을 비비며 푹 파묻으면

자연스레 내 눈을 가려주는 짧고 뭉뚝한 손


포근한 어둠 속에서 숨을 들이쉰다

아, 이제야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

헐떡이던 호흡이 점차 제자리로 돌아온다


나른해진 몸을 이고

그와 함께 사는 집으로 돌아오면


지옥도

천국도

중요하지 않아


지금 너와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이 남아

어느새 붉은 빛은 연기 속으로 사라진다












매거진의 이전글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