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전애인과의 연애를 유튜브로 기록했다. 기획, 촬영 및 편집 모두 내가 맡았기 때문에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도 이제는 나오지 않는 영상들이 나에겐 있다. 지난주에는 오랜만에 그 영상들을 들여다보았다. 워낙 급하게 지우고 정리하느라 완성본이 없는 영상들도 있었다. 그중 몇 개를 들여다봤을 때, 나는 지나간 사람을 크게 그리워하며 통곡할 줄만 알았다. 의외로 나는 웃고 있었고, 영상은 재밌었다.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에 황정음님과 김용준님의 공개 연애 영상이 자주 뜨는데, 해당 영상의 댓글들대로 당사자들이 이 영상을 본다면 마치 나와 같은 기분일까 싶었다.
영상 속 우리는 최선을 다해 상대를 사랑하고 있었고, 서로이고 그때라서 빛나는 순간을 춤추며 건너고 있었다. 그래서 왠지 안심이 되고 괜찮아졌다. 그래. 이거면 됐지. 이만큼 행복했었으니까 힘내서 잘 살아야지. 아무나 말고 진짜 좋은 사람 만나야지.
예전에 자주 듣던 가수의 노래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아티스트의 팬이 되었을 때의 열정, 행복하고 가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몇 년이 지나도 그 자리에서 치열하게, 열심히 살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고 모든 것이 바뀌어도 어떤 것들은 고스란히 거기 남아 제각각의 생을 산다. 바쁘게 고되던 우리는 지나가다 잠시 멈춰 추억을 담은 그것을 바라볼 때 비로소 데워진 한숨을 뱉는 듯하다. 그리고 다시 박차는 걸음. 어쨌든 앞으로 가야 하니까. 언제까지나 멈춰 쉴 순 없으니까. 너희도, 그러니까.
요즘 유독 '갓생'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아침부터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자격증 공부를 하고 센터에서 봉사를 하고 나와 글까지 쓴다. 그에 자극받아 나도 잊고 있던 내 공부들을 떠올렸다. 마음 챙김에 기반한 긍정확언을 필사하는 일도 다시금 해야지, 마음먹었다. 책을 펼쳐보니 두 달만이었다. 나는 사랑 속에 둘러싸여 있으며, 나에게서 출발한 사랑이 몇 겹이 되어 내게 돌아오는 것을 느끼자는 내용이었다.
병원에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퇴원하는 분이 계셔서(사실 아는 언니다.) 병원 안에서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고 바깥에 나가 다시 생활할 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많은 전문가 분들이 말씀하시는, 자신부터 홀로 서고 이후에 다른 사람이 와도 괜찮고 안 와도 괜찮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나를 포함하여, 자신부터 서는 게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를 토로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타인에게 의존한다는 것은 내 가치감과 존재 의미의 통제권을 그에게 넘기는 것과 같다. 영혼과 같이 사랑하던 애인이 나를 버리고 모질게 군다면, 나는 나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를 우선해 사랑하고 나를 버팀목 삼으면 내 존재의 의미가 타인에 의해 변하지 않는다. 내 가치와 존재의 통제권을 내가 갖는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통제감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인간이 자신의 삶에 나타나는 것들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싶어 한다. 예측되지 않는 것은 무서우니까. 두렵고 겁나니까. 알 수 없는 것은 모호함을 부르고 모호함은 안개 낀 숲처럼 어둑함을 선사한다. 물론 그 숲 속에서마저 뛰어노는 이들이 있지만 차치하고, 통제감이라는 개념에서 자신부터 먼저 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일까?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역시 자신을 미워하던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고 연민하여 스스로에 대한 감정을 올곧게 느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를 정의하는 일에 대한 통제감을 가지려면, 이전에 또다시 타인의 지지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리며 생각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각자의 인간관계 바운더리를 이야기하며 이 내용을 안정형 애착을 가진 친구에게 말했더니, 나를 반만 주라고 한다. "반틈만 어떻게 쪼개는데?" "다 주지 말라는 거지." 언제나 1순위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많이 들은 만큼 나에게선 멀리 있는 듯한 말. 남들은 다 어떻게 그러고 사는 걸까? 신기하다. 독자 분들 중 나 자신이 1순위인 분들은 비법을 댓글에 공유해 주시면 고맙겠다.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멋진 실내 수영장을 뛰어다니고 있었고, 생각했다. '지금 좋아하는 가수가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을 보자. 나는 지금 이렇게 매일을 하릴없이 보내고 있는데,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가수가 무명기를 지나 빛나기까지 12년이라고 치면, 나는 일반인이니까 딱 두 배. 24년만 열심히 살아보자. 그럼 뭐가 됐더라도 되어 있겠지.'
꿈에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또 처음이었다. 천 시간, 만 시간의 법칙이 떠올랐다. 내가 잘하냐, 못하냐가 아니라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뭐든 되겠지.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본 적이 없어 새로웠다. 별 것 아닌 이런 일기도 주기적으로 쓰면 글쓰기가 늘려나. 언젠간 작가의 꿈에 가까워지려나. 괜히 벚꽃색으로 볼을 물들이고 두 손을 모아 기대해 보게 되는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