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성장인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뭘 얻은 건 맞다.
내 소중한 20대 중반 중 1년 7개월, 그러니까 약 2년을 심상정 의원실에서 콘텐츠를 만드는데 투자했다. 혼자 영상 콘텐츠를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낸다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국회의원 보좌관'의 역할과 '콘텐츠 기획/제작'이 합쳐진 신기한 조합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2년은 인턴으로만 지내기엔 정말 긴 시간이었다. (사실 국회 인턴은 2년, 3년 넘게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도 내 기준엔 길다.) 같은 시기에 내 친구들은 졸업준비, 토익 준비, 취업준비에 몰두했었고, 난 학교조차 마치지 못한 채 불안한 걸음을 내디뎌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2년 동안 정말 빽빽하게 사건 사고가 터졌기 때문에(?)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가도, 한편으론 다른 걸 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많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었지만, 가끔은 무언가 정해진 체계 없이 야매로 뚝딱뚝딱 만드는 과정이 답답했다.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오직 내 감각에만 의존해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늘 한계가 있었다. 또 가끔은 그렇게 만든 콘텐츠를 발행하고 난 후 좋아요와 도달 수를 보며 안도하는 내 모습이 영락없는 따봉충 같았다.ㅠ(찌질)
어찌어찌 대충 쌓여가던 커리어가 대선이 끝난 후 국회를 퇴사하며 산산조각이 나버린 느낌이었다. 나는 커피 머신에서 2년 동안 갈려져 나온 찌꺼기였다. 그러던 와중, 작년에 하고 싶었던 구글 뉴스 랩 펠로우십을 이번 겨울에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번엔 좀 배워서 뭐라도 남기고 싶었다(의원실에서의 경험이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는 건 아니지만, 국회는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가 아니기에). 심상정이 가진 개인기, 이미지 없이도 내가 전하고픈 메시지가 잘 전달될 수 있을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사실 이 시험은 아직 통과를 못한 것 같다...주륵..) 아무튼 심 의원실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글 뉴스 랩 펠로우십에 지원했다. 합격했다. 그리고 뭔가를 얻었다!
1. 감으로 때려 맞추는 야매 기획은 이제 그마안.
"대충 나랑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2030 세대가 타깃이지."라고 마음속에 저장한 오디언스는 있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들이 가진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 없이 대강 감으로 때려 맞췄었다. (그래도 그 당시 나는 인터넷 커뮤니티 눈팅을 굉장히 열심히 했었다..ㅠ..) 이젠 타깃 독자가 갖고 있는 문제와 니즈가 무엇인지부터 전략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게 됐다.
이러한 전략적인 접근을 하는 데에 구글 뉴스 랩 펠로우십 워크숍 때 배운 '스프린트'의 도움이 컸다. (스프린트는 구글에서 투자한 스타트업들이 빠른 시간 내에 핵심 과제를 해결하는 기획 방법이다.) 전공이 정치외교학이고 여태껏 정치판에서만 있었던 (오늘의 TMI. 조금은 방송 쪽이기도 했다) 나는 처음 보는 방식이라 굉장히 신선했고, 여기저기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진작에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2. 플랫폼 이해도가 훨씬 높아졌다.
사실 페이스북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국회 담당인 페북 직원을 통해 대강 어떤 플랫폼인지에 대한 분석은 마친 상태였다. 그리고 2년 동안 온갖 좌충우돌을 거쳤으니, 잘 안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마침 페이스북이 알고리듬을 수정하겠다고 선언한 뒤라 새로운 변화를 깊게 알 수 있었다. 페이스북 뿐만 아니라 다른 플랫폼의 장/단점, 그리고 페이스북을 주력 플랫폼으로 사용했을 때의 부작용 등등에 대해 넓고 깊은 정보를 접했다.
해외 뉴미디어는 쳐다볼 시간도 없었기에 내 뉴스피드는 우리나라 언론사 페이지들로 도배됐었는데, 이젠 해외 콘텐츠들로 가득 차게 됐다. 이것도... '진작 좀 찾아볼걸'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랬다면 이전 콘텐츠들이 더 잘 만들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또 오디오 콘텐츠와 메일링 서비스에 대한 편견이 있었는데, 해외 사례를 접하면서 다양한 플랫폼에 대한 생각을 품을 수 있게 됐다. 무조건 영상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 더 넓고 길게 봐야 한다.
3. 결정권자로서 생각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원래 펠로우는 언론사와 매칭이 되는데, 난 펠로우십 최초로 비영리 단체와 작업하게 됐다. 언론사는 기사로든 영상으로든 무에서 유를 만드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곳이다. 그러나 비영리단체, 그것도 '다음세대재단'은 성격이 좀 다르다. 지금까지 온라인 콘텐츠를 단체의 성과나 사업을 홍보하는 데에 사용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우리 팀의 콘텐츠 기획에 대해 파트너사의 브랜드 이미지와 맞는지 안 맞는지 고나리질 당할 염려가 1도 없었다. (물론 다세대 분들이 우리를 믿고 기다려주신 것도 있었다ㅠㅠ)
그동안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내 기획이 너덜너덜해졌던 날들이 많았다. 하지만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을 통해 나와 내 팀원들이 최종 결정까지 내릴 수 있는 상황이 됐다. 비영리단체가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 타깃 오디언스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데 결정권자로서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우리만의 결정을 밀고 나가는 경험은 만족스러웠다. (우리의 역량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와는 별개로)
4.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법을 배웠다. (클린한 조직문화?!)
솔직히 구글 뉴스 랩 펠로우십은 팀 협업 실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자 다른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사람들이 가진 능력치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런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 그리고 대화. 커뮤니케이션이다. 내가 잘 해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팀원들 모두를 존중(aka 리스펙)하려 노력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팀 모두 서로의 경험을, 능력을 인정했다. 어떻게 보면 되게 당연한 거다. 하지만... 내가 겪은 조직문화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오래간만에 클-린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구글 뉴스 랩 펠로우십이 끝난 후,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리의 콘텐츠가 더 깊이 있는 메시지, 기존의 해왔던 얘기와 색다른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반은 그렇게 했고 반은 못했는데, 못했던 부분만 계속 생각난다. 거의 끝날 때쯤 팀워크가 제대로 맞기 시작해서 해보고 싶은 게 여러 개 생겼다. 돌아와요, 하은, 윤수, 민제 님!
브랜드 인지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대중과 친하지 않은 비영리단체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에 두 달은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리고 난 의원실에 있을 때와 같은 문제를 겪었다. 영상제작에 특출 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영상 담당으로서 최대한의 능력치를 끌어내야 했다는 것. 테크닉은 늘 부족하다. 다신 영상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고 또 한 번 다짐하게 되었..(?) 아무래도 난 영상 전문가는 아니다. 늘 머릿속에 있는 것과 내가 만든 것의 괴리감이 크다.
무튼, 며칠 전 우리 콘텐츠를 잘 봤다고 얘기해준 사람을 만났다. 처음 뵌 분인데, 구글 뉴스 랩 펠로우십에서 무엇을 얻었냐길래 앞서 언급한 네 가지를 얻었다고 이야기했다. 돌아온 답변은 '두 달 동안 성장하셨네요.'였다. 정말 성장했을까? 확실한 건 대선이 끝난 후엔 공허함이 남았는데, 지금은 뭔가가 쌓인 기분이라는 거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게 성장이라면 성장인가 보다. 성장인 지 아닌 지 나중에 돌아보면 알 수 있겠지. 그저 지금은 이 기분을 꽤 오래 간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