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케이팝에 대한 애정의 결과물

<케이팝 데몬 헌터스> 매기 강, 크리스 아펠한스

by 김성대


제목에 이미 ‘케이팝’이 있다. 타이틀의 나머지(데몬 헌터스)에선 이 애니메이션이 악령을 쫓거나 잡는 내용일 거란 걸 짐작케 한다. 케이팝이 흐르는 귀신 잡는 이야기.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영화를 보지 않고도 무슨 영화일지 알 수 있게 하는 영화다.


감독은 두 사람이다. ‘위시 드래곤’의 크리스 아펠한스, 그리고 서울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한국계 감독 매기 강이다. 매기 강은 이 영화가 최대한 한국다웠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작업했다고 한다. “한국의 모든 것을 담고 싶었다”는 얘기다. 그의 말은 조선시대 평민들과 무당(강 감독은 굿을 ‘최초의 콘서트’라고 여겼다), 도깨비들이 출연하는 도입부 시퀀스만 봐도 수긍이 간다. 미국 회사가 제작한 온전한 한국 영화. 그래서일까. 나에게 이 영화는 한국계 캐나다 감독의 조국에 대한 사랑 고백으로 보였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매기 강의 감독 데뷔작이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인물, 장소, 문화는 온통 한국적이다. 김밥과 컵라면, 수저를 받치는 냅킨이 나온다. 언어는 제작사의 모국어이지만(간간이 한국말과 한글이 나오기도 한다) 그걸 둘러싼 정서와 배경은 영락없는 한국의 것들이다. 케이팝은 그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이는 필시 미국 투자를 받아 한국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 영화로 옮겨낼 수 있었던 결정적 명분이었을 터다. 무엇보다 매기 강 스스로가 에이치오티, 서태지와 아이들, 원타임 같은 1세대 케이팝 그룹들을 좋아한 엑스세대였다. 영화 초반부에서 듀스의 ‘나를 돌아봐’가 스치듯 흐른 것도 아마 강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리라. 원타임 출신 테디가 자신의 더블랙레이블(THEBLACKLABEL) 작곡가들과 함께 영화 OST에 참여한 것도 그래서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뉴욕타임스의 브랜든 유(Brandon Yu)가 “우스꽝스러운 줄거리임에도 매력적인데다 재미있으며 예술적이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언급했듯, 이 영화에서 플롯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무당 걸그룹과 저승사자 보이 밴드가 펼친 ‘케이팝 퇴마 액션’이라는 전대미문의 극 장르다. 그 안에는 글로벌 케이팝의 전형과 ‘K-드라마’식 스토리텔링이 켜켜이 녹아있다. 이 중 케이팝과 관련해 미국 게임 웹진 IGN의 필자 투세인트 이건(Toussaint Egan)은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케이팝’으로 알려진 폭넓고 대중적인 음악 스타일은 지난 10년간 가장 사랑받았고 영향력 있는 두 문화 세력”이라고 평가했다. 케이팝은 또한 감독 크리스 아펠한스의 팝에 대한 정의(“팝 음악은 흥겨워야 하고 중독성이 있어야 하며, 거부할 수 없는 음악이어야 한다”)에도 부합해 일부 ‘겨울왕국’ 같은 뮤지컬 형식을 취한 영화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지구와 인간을 지배하려는 악의 세력에 맞선 권선징악 구도에 ‘세일러 문’과 ‘파워레인저’를 떠올린 투세인트 이건은 이렇게도 썼다. “이 영화는 영감을 준 음악(케이팝)과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찬사이기도 하다.” 이는 실제 미술부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나온 캐릭터들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령 메인 보컬 루미, 메인 댄서 미라, 작사가 겸 래퍼인 조이로 구성된 걸트리오 헌트릭스(Huntrix)는 있지와 블랙핑크, 삽입곡 ‘Takedown’을 따로 녹음한 트와이스를 참고했다. 그리고 헌트릭스의 대항마인 보이 밴드 사자보이스엔 BTS와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스트레이 키즈와 에이티즈, 빅뱅과 몬스타엑스가 반영됐다. 특히 남자 주인공 진우는 고전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원한 매기 강의 바람대로 배우 차은우와 남주혁을 참고했으며, 모델 안소연(엘리스)은 패셔니스타 미라에게 영감을 주었다. 물론 헌트릭스가 부른 ‘How It’s Done’이 블랙핑크의 ‘How You Like That’과 닮았고 ‘Golden’이 아이브를 연상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영화가 ‘애니메이션에 대한 찬사’도 될 수 있는 건 웃는 호랑이와 갓 쓴 검은 새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고양이 버스(이웃집 토토로), 까마귀로 변한 유버드(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케이팝 아이돌 그룹들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 팬이다. 이 영화는 매기 강의 조국 사랑의 발현이기도 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헌신하는 케이팝 팬들을 향한 헌사이기도 하다. 당장 악령을 차단하기 위해 설정한 황금 혼문(Golden Honmoon) 자체가 팬들이 보내준 사랑으로 만든 것이다. 이에 관해선 잡지 버라이어티의 영화 비평가 피터 데브루지(Peter Debruge)의 의견을 보면 좋겠다. “팬들이 없었다면 보이 밴드 BTS가 소파이 스타디움을 네 차례나 가득 채울 수 없었을 것이고 블랙핑크가 코첼라의 헤드라이너로 초대받지 못했을 것이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 같은 영화가 제작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헌트릭스 멤버들이 길에서 마주친 팬들과 인사를 하며 영화가 끝나는 이유다.


매기 강은 다섯 살 때 캐나다로 이주했다. 그녀가 다닌 캐나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지도에서 한국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매기 강은 9년 이상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매달렸다. 선생님이 찾지 못했던 한국의 신화와 설화를 탐구하며,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이야기를 “매우 한국적인 입과 눈 모양”을 곁들인 걸크러시에 기반해 만들려 노력했다. 한국 드라마, 케이팝 뮤직비디오 등에서 얻은 영감을 팬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면서도, 그 평가를 전복하고 싶었다는 매기 강. 사실 이 애니메이션은 훨씬 거칠고 어두운 저예산 영화가 될 뻔했다. 물론 그랬어도 넷플릭스 41개국 1위라는 성적은 딱히 변하지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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