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케이팝 팬들에게 ‘캣츠 아이(Cat’s Eye)’는 룰라 출신 김지현의 곡 제목으로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띄어쓰기를 뺀 ‘캣츠아이(KATSEYE)’는 지난해 데뷔한 6인조 글로벌 걸그룹의 이름이다. 캣츠아이는 빌리 아일리시,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이 소속된 유니버설 IGA(Interscope Geffen A&M Records)의 CEO 존 재닉(John Janick)과 하이브의 방시혁이 케이팝 아이돌 포맷을 미국 시장에 이식하기 위해 기획한 프로젝트다. 미국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의 알렉스 바라쉬는 하이브유니버설의 이 합작을 두고 “BTS를 만든 방 회장이 케이팝 아이돌의 공식을 미국에 도입하고 있다”라고 썼다.
하이브유니버설은 오디션 프로그램 ‘더 데뷔: 드림아카데미’를 통해 캣츠아이를 발굴했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댄스, 보컬, 팀워크, 콘셉트 소화력, 예술성 등을 놓고 총 세 차례 평가 미션을 치렀다. 이후 예선 오디션에서 무려 6천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스무 명 참가자들의 성장 과정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스타 아카데미: 캣츠아이’라는 제목으로 케이팝 팬들에게 전달됐다. 당시 최종 후보자 스무 명을 소개하며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래전부터 케이팝 방법론에 기반해 다양한 국가 출신 인재들을 육성하고, 이들과 함께 케이팝 스타일의 글로벌 그룹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게 2년의 여정이 지난 2023년 11월 말, 최종 확정된 4개국(미국, 한국, 스위스, 필리핀) 여섯 멤버가 대중 앞에 공개됐다.
스파이스 걸스는 캣츠아이의 데뷔곡 ‘DEBUT’를 들으며 내가 반사적으로 떠올린 팀이다. 30년 전 세계 대중음악계를 뜨겁게 달군 이 영국 걸그룹은 또한 방시혁이 미국에서 성공한 아이돌 밴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롤 모델로 확신한 단 하나의 존재이기도 했다. 거기엔 방 의장이 “완성도 높은 뮤직비디오”와 함께 토털 패키지로서 논한 케이팝의 요소, 즉 “놀라운 무대 퍼포먼스,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한 음악, 매력적인 외모”가 모두 담겨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한 가지, 팬(fan)이다. 개성이 조화된 원팀을 강조한 방시혁은 “케이팝은 팬이 완성한다”는 철학을 전제로 BTS 성공의 핵심 비결이었던 ‘스타와 팬 사이의 친밀감’을 캣츠아이의 행보에도 적용키로 했다.
캣츠아이의 출발은 방 의장의 판단에선 성공이었다. 미국 음악 시장에 보이/걸그룹 시장이 아직 있는지와 젊고 열정적인 팬층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불안은 캣츠아이의 데뷔 앨범 ‘SIS(Soft Is Strong)’가 2024년 미국에서만 11만 5천 장이 팔리며 누그러졌다. 특히 틱톡 챌린지 영상에 맞춤형인 안무가 입소문을 탄 더블 타이틀 곡 ‘Touch’는 빌보드 글로벌 송 차트에서 13주 연속 이름을 올리며 데뷔작을 빛냈다. 같은 곡이 영국 음악지 NME가 선정한 ‘2024년 최고 노래 50선’에서 43위를 차지한 일도 팀과 레이블에겐 힘이 됐을 일이다. 무엇보다 방시혁은 미국에서 아이돌 밴드 시장의 존재가 증명된 것이 캣츠아이 데뷔작이 거둔 가장 큰 성과라고 자평했다. 때문에 빌보드 200에서 119위에 그친 일은 케이팝 시스템으로 미국 시장을 두드린 신인 걸그룹으로선 썩 나쁘진 않은 결과이거니와, 방 의장을 고무시킨 소중한 성과에 비하면 잠시 제쳐두어도 될 성적이었다.
지난 4월 30일, 캣츠아이는 두 번째 미니앨범의 선공개 곡 ‘Gnarly’를 내놓았다. ‘Gnarly’는 혹자의 평가처럼 데뷔 초 경쾌한 팝 대신 두꺼운 베이스로 무장한 보다 “대결적인” 2분 20초짜리 하이퍼 팝 트랙이다. 이 곡은 스파이스 걸스의 나라인 영국 싱글차트에서 52위로 데뷔하며 캣츠아이의 명성이 좀 더 자랐음을 알렸다. 하지만 이 곡은 발매 당시 썩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누군가는 의미 없는 가사 내용과 반복되는 욕설에 “중학생이 멋있어지려고 애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다른 누군가는 공동 작곡가인 앨리스 롱위 가오가 이 곡의 인트로를 수년 전 틱톡에서 이미 사용한 점을 불편해했다.(한국 음악 프로그램에선 특정 브랜드 언급과 욕설을 삭제한 ‘클린 버전’을 선보였다.) 그럼에도 ‘Gnarly’에 대한 초기 부정적 반응들은 멤버들의 에너지와 춤 실력, 무대 위 존재감으로 이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곡이 지닌 “포스트모던 팝의 천재적인 완성도”를 칭찬했다. 장르 기어를 완전히 바꾼 이들 신곡의 파격성에 잡지 ‘더블유(W)’의 편집자 카일 문젠리더는 “이 소녀들은 단 며칠 만에 케이팝을 추종하는 신인에서 잠재적인 의제를 설정하는 팝스타로 성장했다”라고 평가했다. 처음엔 충격을 받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해를 하게 될 것이라던 캣츠아이 멤버들의 곡에 대한 예견은 그대로 현실이 되어갔다.
방시혁은 지난달 2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르세라핌 콘서트 대기실을 방문한 모습을 찍어 올렸다. 거기엔 르세라핌 멤버들 외 아일릿, 캣츠아이 멤버들도 함께 있었다. 방 의장은 이 사진에 “하나!(United!)”라는 말을 붙였다. 알려진 대로 하이브의 미래 청사진은 케이팝에서 ‘케이’를 뺀 글로벌 팝 시장 개척. 그래서 저 사진은 일견 방시혁, 하이브가 추구하는 케이팝과 그냥 팝의 조화 또는 동맹처럼도 느껴진다. 그 개척을 위한 포석이면서 그룹 이름(KATSEYE)에 ‘K’를 쓰고, 심지어 팬덤 공식 명칭(EYEKONS)에도 ‘K’를 쓴 캣츠아이는 동맹의 합리적 이율배반쯤 되리라. 방시혁은 이렇게 말했다. “우린 미국 기업처럼 확장하고 있어요. 카탈로그를 확장하고 레이블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걸 더 이상 케이팝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캣츠아이는 하이브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