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데이 프로젝트(ALLDAY PROJECT)
케이팝계에서 혼성그룹은 안 된다는 말이 있다. 불문율을 넘어 거의 금기에 가까운 단언이다. 혼성그룹은 90년대 중반~200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 가요계를 주름잡은 존재였다. 그랬던 존재들이 2000년대 중반 이후 2010~20년대엔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그 이유로는 신(scene)의 시스템과 대외적 위상이 바뀐 데다, 동성그룹들의 성적이 통계 상 우위에 있기 때문이라는 게 대략의 분석이다. 멤버들의 다른 성별이 활동의 불편함으로 번지리란 얘기도 있는데, 여성과 남성 직원이 함께 일하는 회사여서 회사가 안 돌아간다는 건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므로 그냥 넘겨도 되겠다.
달리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흔히 국내에서 혼성그룹을 논할 때 비교 대상을 쿨, 코요태, 샵 등에서 찾는다. 이는 2010년대 전후로 케이팝계에서 혼성그룹은 아예 시도조차 되지 않은 영역이었음을 뜻한다. 달다 짜다, 차다 뜨겁다를 따져 논할 비교군이 아예 없다는 얘기다. 아마도 혼성그룹을 지금처럼 잘못된 무엇으로 여기게 된 건 흔히 1세대 아이돌이라 불린 팀들이 거의가 동성그룹이었던 것에서 굳어져 온 확신 때문인 듯하다. 뭐니 뭐니 해도 지금의 글로벌 케이팝 시장은 저들이 거느렸던 코어 팬덤 정서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하지만 동성그룹 우위론을 주장해 온 이들이 간과한 게 있다. 케이팝의 기치를 드높인 BTS의 경우, 그들의 가치란 동성그룹이기 전에 절대 기준처럼 여겨졌던 기존 3대 기획사(SM, YG, JYP)의 자장 바깥에서 자신들의 길을 개척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그 시절, 방시혁의 빅히트 레이블이 보여준 남달랐던 패기를 나는 지금 더블랙레이블(THEBLACKLABEL)에서 본다. 본디 개척자란 모두가 걸으려는 길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 더블랙레이블을 세운 테디는 SNS에 이렇게 썼다고 한다.
트렌드를 따르는 대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이들은 대담하고 뚜렷하며 타협하지 않는다.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예술 안에서 오래도록 지속될 힘이 되기를 지향한다
그의 총괄 프로듀서로서 개척 의지와 아티스트로서 지향하려는 지속적인 힘은 케이팝이 그렇게도 꺼려온 혼성그룹으로 가시화되었다. 댄스, 패션, 서브컬처 라이프스타일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독창적 크리에이티브 집단. 바로 올데이 프로젝트(ALLDAY PROJECT)다.
올데이 프로젝트는 지난 6월 23일 싱글 한 장을 낸 따끈따끈한 신인이다. 싱글은 더블 타이틀 트랙으로, 에스파가 불러도 될 법한 신스 베이스 넘버 ‘FAMOUS’와 켄드릭 라마가 비트를 타도 위화감이 없을 하이브리드 힙합 곡 ‘WICKED’를 앞세워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전자의 경우 멤버 애니의 랩이 “트랩 비트 위 수도승의 염불”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는데 그보단 90년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즐겼던 한국 힙합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즉 초기 빅뱅과 원타임의 에너지를 결합했다는 평가가 더 그럴듯하다. 또 “노래라기 보단 쇼케이스에 가까운 느낌”으로 여겨진 후자는 따로 코러스가 없는 리드미컬한 접근 방식이 마음에 든다는 호평과 촌스럽고 지루하다는 박한 평가를 고루 받았는데, 이 역시 호평 쪽에 더 설득력이 있다. 이렇다 저렇다 말들이 많은 상황에서도 어쨌거나 ‘FAMOUS’는 멜론 메인 차트 정상을 비롯해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 모두에서 차트 1위에 오르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트렌드에 역행할 것이라거나 시대착오적이리라는 혼성그룹에 대한 평단과 대중의 섣부른 예단을 테디의 우직한 기획력이 탁상공론으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무엇보다 힙합그룹 원타임 출신인 테디에게 힙합그룹 올데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그룹 이상의 의미를 가질지 모른다. 당장 결과물만 놓고 봐도 이 프로젝트는 90년대와 2000년대라는 자신의 뿌리에서 작곡자, 프로듀서로서 진화를 거듭한 2010년대를 지나 2020년대의 사업적, 예술적 청사진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가령 최첨단과 진부함 사이 미세한 경계를 넘나 든다는 평가를 받은 ‘FAMOUS’ 뮤직비디오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울러 엑스 세대부터 MZ 세대까지 모두를 품어보겠다는 의지가 영상 한 컷 한 컷에 녹아있다. 이쯤 되니 그룹 이름에 붙인 ‘프로젝트’라는 말도 달리 보인다. 보통 음악 세계에서 프로젝트란 한시적이거나 특별한 시도를 뜻하는데, 테디와 레이블이 공들여 쏘아 올린 그룹을 한시적으로 전시할 리는 없으니 올데이 프로젝트의 특별함은 거의 태생적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또 다른 국내 혼성그룹 카드(KARD)의 전지우는 혼성그룹의 장점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곡이 풍성해진다는 겁니다.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를 다 갖출 수 있죠
올데이 프로젝트는 이를 위해 영서라는 유일한 보컬 멤버에 나머지 멤버들은 모두 랩을 한다는 구성을 택했다. 아울러 멤버들의 면면도 흥미로워 ‘쇼미더머니’ 13세 최연소 본선 진출자(우찬), ‘재벌 이슈’가 되레 실력을 가린 듯한 래퍼(애니), 모델 출신 현대 무용가(타잔), 180만 구독자를 보유한 인플루언서이자 유명 케이팝 안무가(베일리, 타이틀곡들의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그의 실력을 보라!), 2023년 걸그룹 아일릿의 멤버를 뽑기 위해 치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알유넥스트’ 출신 싱어(영서)를 두루 영입해 시너지를 노렸다. 레이블 측에서 이들의 공식 자료에 써놓은 “모든 경계를 허무는 창조적 실험”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그동안 케이팝 신에서 혼성그룹은 그저 아무도 안 한 거지, 하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시큰둥한 대중의 반응은 곧장 차트 성적에 반영된다. 그리고 반영된 차트 성적은 해당 그룹을 서서히 대중의 기억 속에서 지워간다. 지난 세월 그렇게 사라져 간 아이돌 그룹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미 빌보드 차트에까지 얼굴을 내민 올데이 프로젝트는 다르다. 줄곧 잘못된 편성으로만 여겨졌던 혼성 라인업은 동성그룹들이 득세하는 케이팝 아이돌 시장에서 차라리 저들의 확고한 정체성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그들은 그 흔한 ‘칼군무’를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멜로디를 담당하는 보컬리스트 한 명을 둘러싼 채 성별을 지워내는 중용적인 톤으로 랩을 시전 할 뿐이다. 아울러 메인 댄서 두 명의 압도적인 동선은 거기에 남다른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길러진 연습생 시스템이 아닌, 각자 독자적인 영역을 거친 멤버들이 팀업 무비 마냥 하나가 되어 레이블 이름이 멋쩍지 않게 ‘블랙’ 뮤직을 제대로 구사하고 맛 보여준다. 이제 겨우 데뷔 10일 차. 인터넷을 둘러보니 혹자는 벌써부터 이런 댓글을 달았다. “신인상 미리 축하드립니다.” 내 마음도 거의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