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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Nov 01. 2024

웃으면서 화내는 지드래곤의 귀환 'POWER'


어떤 음악가든 환경과 경험의 지배를 받는다. 현실과 관련이 없어 보이는 상상조차 사실은 자신이 겪었거나 만난 상황, 사람의 연장이라는 걸 우린 잘 알고 있다. 최백호가 1994년 11월에 발표한 자신의 16집 커버 그림으로 끊어진 성수대교를 실은 것도, 뮤즈와 콜드플레이가 9.11 테러에 영향받은 작품들을 비슷한 시기에 낸 것도 다 그런 ‘환경과 경험’의 산물이었다.     


7년 4개월 만에 돌아온 지드래곤(이하 ‘지디’) 역시 예외는 아니다. 권지용으로 살았던 지난 7년 여 동안 그는 어두운 일들을 차례로 겪었다. 자신의 뿌리인 빅뱅은 여러 사건 사고 끝에 사실상 공중분해 되었고, 예기치 않은 마약 투약 혐의는 그를 궁지로 몰았다. 신곡 ‘POWER’는 이 중 후자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론 온갖 억측으로 말하고 써 내려간 기사들로 자신을 몰아세운 미디어의 ‘힘’이다.     


노래의 주제는 커버 사진에서부터 밝혀진다. 사진에서 지디는 ‘POWER’라는 단어가 색색별로 박힌 야구모자로 입을 가리고 있다. 여기서 모자는 마치 마스크 같은데, 반론의 기회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당해야만 했던 자신의 처지를 은유한 듯 보인다. 글자 중엔 ‘W’를 원화 특수 기호인 ‘₩’으로 표시한 것도 눈에 띈다. 아마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명분으로 한 사람을 나락까지, 심지어는 죽음에까지도 이르게 할 수 있는 그네들의 섬뜩한 ‘장삿속’을 비꼰 것일 게다.     


마약 혐의로 자진 경찰 출석 후 했던 인터뷰를 통해 그가 말한 바로, 언론은 언젠가부터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디는 저들이 언급한 내용에 관한 진위 여부를 본인도 알고 싶었을 정도라고 했다. 특히 ‘온몸 전신 제모’라는 헤드라인을 쓴 기사는 사건의 맥락과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어 그를 당혹스럽게 했다. 심지어 오랜 기간 춤을 춰서 유연해졌을 뿐인 몸놀림과 유명인으로서 말조심을 위해 느려진 말투가 호사가들의 뇌피셜을 거쳐 ‘마약을 한 증거’로 둔갑해 버리는 세상에서 지디는 거듭 절망했다.     

 

스물일곱 살에 삶을 마감한 스타 음악가들이 사후(死後)에 들었다는 ‘27 클럽’의 커트 코베인,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생의 마지막까지 시달렸던 집단도 바로 언론이었다. 언론과 스타는 좋을 땐 서로의 힘이 되지만 틀어지면 적이 되기 십상이다. 그 둘이 틀어진 상황에서 대중은 취재, 증거가 아닌 추측, 인용에 기댄 언론의 자극적인 기사에 점점 휘둘리기 시작하고, 그런 언론에 지배된 여론의 뭇매를 감당해야 하는 당사자들은 망연자실하게 된다. 지디는 새 곡 ‘POWER’에서 “댓글 리플 관종 걔들 입틀막고”라는 가사로 그러한 정황을 요약했다.     



'POWER'의 뮤직비디오는 독일 철학자 니체가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한 위버멘쉬(Übermensch) 문양으로 문을 연다. 국내에선 흔히 '초인'으로 번역하는 위버멘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을 긍정할 줄 알아 고통마저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외부 힘이나 절대자에게 의존하기보다 자신의 삶에 집중해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 내는 자'를 뜻하는 말로, 언뜻 지디 자신이 추구하려는 인간상인 듯도 하다. 과거 ‘One Of A Kind’ 뒤지지 않는 감각과 재치를 담뿍 머금은  원테이크 영상에서 지디는 미디어에 대고 ( 죄를) 증명해 보라며, (너희들은)  틀렸다며, (그러니까) 시간 낭비 말라며 그동안 쟁여온 감정을 모두 쏟아낸다. 아울러 미디어에 빗댄 표현일 ‘지뢰밭에서 그렇게 ‘일당백으로 싸운 지디는 ‘권력의 오남용   불붙은 확증 편향의 소용돌이(지디는 이를 “억까  퍼다 샬라샬라 표현했다)라는  손쓸 도리가 없는 불가항력이라고도 말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쭈뼛거리는 브라스 비트와 단호한 림샷(Rimshot) 비트, 그 사이를 간간이 기습하는 예리한 턴테이블리즘 안에서 그는 마냥 신나고 자유로워 보인다. 닥터 드레의 클래식 제목(‘Nuthin’ but a G’thang’)을 인용할 때도, 자신이 역대 최고(GOAT)라고 말하며 같은 단어를 쓰는 염소(goat)의 면전에 가 쭈그려 앉을 때도, 저승사자 같은 옷을 입고 비트를 타고 있는 뉴스 앵커의 마이크에 “누가 세상을 움직여? 세상은 너희들의 것이지”라고 조소할 때도, “2세대 한정품이 세기의 완성품”이라는 자신의 데뷔 시기를 지나 “88 날아”라는 자신의 출생 시기를 언급하며 곡을 닫을 때도 지디는 “나는 나다워서 아름다워”라며 한없이 개운해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지디가 겨냥한 미디어의 권력은 지디의 ‘힘’으로 말끔히 치환된다.     


지디는 7년 만의 컴백 이전 소속사 이적, KAIST 초빙, 재단 설립 등 앞선 우울한 경험들 외 발전적인 환경 변화도 겪었다. 여기서 자신이 명예이사장을 맡은 재단 설립 과정에서 그는 “아티스트는 단순히 예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행복도 주고 평화도 주는 삶을 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아티스트의 선한 영향력을 언급한 것이다. 이는 ‘POWER’의 “웃다 끝 ‘돈’ 기부 ‘억’ 씨-익”이라는 가사와도 일면 상통한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 길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지디가 삶의 태도로서 견지하는 글귀다. 그는 최근 그 글귀의 현실성을 온몸으로 통과했다. 그리고 유쾌통쾌한 싱글 ‘POWER’를 만들었다. 그가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디는 분명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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