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Holes and Revelations》 Muse
뮤즈Muse의 리더 매튜 벨라미Matthew Bellamy는 세 살 때 미국 드라마 『댈러스』의 주제곡을 서툴게나마 피아노로 쳤다. 아홉 살 땐 클라리넷 레슨을 받았고, 열 살 땐 아버지를 통해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블루스와 악보 없이 귀로만 듣고 익힌 레이 찰스Ray Charles의 알앤비/재즈 피아노를 만났다. 음악이 자신을 움직인 첫 계기였다. 엄마 마릴린 벨라미Marilyn Bellamy는 아들의 남다른 재능을 일찍 느꼈는지 자신이 미래를 보았다며, 매튜가 훗날 록 스타가 되리라 예언했다.물론 예언은 현실이 된다. 열한 살 때 엄마의 단호한 예언을 가슴에 새긴 매튜는 3년 뒤 배우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밀어내고 기타를 집어 들었다. 스스로 악보를 잘 읽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오케스트라와 재즈 밴드를 접은 것이다.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열다섯 살 때 시청한, 1967년 몬터레이 국제 팝 페스티벌The Monterey International Pop Festival에서 기타를 불태운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때문이었다. 매튜는 지미의 불타는 기타가 “음악은 혼돈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라고 말해준 그 순간 록이 자신의 길임을 깨달았다.
매튜는 어릴 때부터 우주와 초자연,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겉으로 드러난 사물의 표면 아래를 긁어내고자 하는 욕구로 충만했던 학창시절, 매튜가 가장 좋아했던 곡은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의 <죽음의 무도Grande Messe Des Morts>였다. 밝은 노래보다 어두운 노래를 부르는 게 더 쉽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베를리오즈 외에도 바흐Johann Sebastian Bach나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alestrina의 합창 음악을 “신神 같은 음악”이라며 남몰래 숭배했다. 이후 그의 클래식 취향은 쇼팽Fryderyk Chopin,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v-뮤즈 2집 수록곡 <Space Dementia>는 라흐마니노프에게 영향을 받은 곡이다. 스페인 기타 거장 안드레스 세고비아Andrés Segovia, 브라질 관현악 작곡가 빌라로부스Heitor Villa-Lobos 등으로 확장된다. 그런 매튜가 고전에서 모던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때는 80년대 후반, 불안감을 동반한 모리세이Morrissey와 데이비드 게지David Gedge의 멜로디 기타를 받아들이면서였다. 이후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RATM과 미국의 힙합, 소닉 유스Sonic Youth, 다이노소어 주니어Dinosaur Jr, 러시Rush도 가까이 한 그는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의 《Siamese Dream》과 너바나Nirvana의 《Nevermind》를 강박적으로 반복해 들으며 뮤즈의 미래를 스케치 했다. 특히 《Nevermind》는 매튜에게 음악이 폭력적이고 강렬하며 파괴적일 수 있는 동시에, 선율적tuneful이고 즉각적이면서 삶을 긍정하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중요한 앨범이었다.
드러머 도미닉Dominic Howard은 처음엔 장발의 재즈 로커였다. 장발과 로커 사이에 재즈가 들어가는 이유는 그가 열한 살 때 재즈 밴드 공연을 계기로 드러머가 됐기 때문이다. 사실 도미닉의 부모님은 아들의 드럼 연주를 취미로만 여겼다. 다섯 살 때까지만 해도 누나의 피아노를 만지작거리거나, 아무 데서나 맥락없이 북을 두드리는 것에서 아들의 실력은 더 나아가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며 도미닉의 실력도 여물어 갔다. 그렇게 10대 중반의 매튜와 도미닉은 밴드 카니지 메이헴Carnage Mayhem, 영블러드Youngblood를 지나 고딕 플래그Gothic Plague, 이 이름은 도미닉의 여동생이 지어 주었다고 한다까지 꾸준히 호흡을 맞추었다. 고딕 플래그는 곧 와해됐고 밴드엔 매튜와 도미닉 둘만 남게 된다. 둘에겐 배킹 보컬을 담당할 수 있는 새로운 베이시스트가 필요했는데, 뮤즈의 베이시스트가 될 크리스Chris Wolstenholme는 당시 드럼을 연주하고 있었다. 매튜는 평소 알고 지내던 크리스에게 정중히 베이스에 관심이 있는지 물었고, 크리스는 자신의 포지션 변경을 흔쾌히 받아들이며 트리오 라인업에 합류했다. 밴드 합류 이틀 전 베이스를 처음 잡아본 크리스까지 3인조가 된 밴드는 “겉모습은 큐어The Cure처럼 보였고, 음악은 ‘사이코패스’ 러시처럼 들린” 로켓 베이비 돌스Rocket Baby Dolls로 이름을 한 번 더 바꾼다. 하지만 포스터에 크고 굵은 글씨로 적을 수 있을 보다 간결한 이름을 원한 끝에 밴드는 '뮤즈'를 자신들의 마지막 이름으로 허락한다. 뮤즈는 앞선 이유를 떠나서도 매일 새로운 노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했고, 매튜가 이 밴드를 ‘소환’한 듯도 했기에 팀명으로선 제격이었다.
세기말과 밀레니엄 초에 걸쳐 선보인 뮤즈 1집과 2집은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었다. 데프톤스Deftones가 있던 마돈나Madonna의 레이블 매버릭Maverick과 계약한 밴드는 "21세기 록 음악의 랜드마크가 될 기념비적인 곡"이라는 평가를 받은 <Plug in Baby>를 앞세워 록 팬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매튜의 창법이나 밴드의 작법, 곡들의 무드 등이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또는 라디오헤드Radiohead와 종종 비교되며 아류 밴드라는 부당한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거장들은 대어를 금세 알아보았다. 가령 알이엠R.E.M.의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는 뮤즈를 지체 없이 “록의 미래”라 선언했다. 릭 루빈Rick Rubin은 같은 밴드를 “21세기 비틀스The Beatles”라고 추켜세웠다. 루빈의 경우, 1998년 아직 팀이 제대로 정비 되기도 전 저들 공연을 보고 내린 평가였다.
아울러 매튜를 지목한 "록 스타 유전자의 완전히 새로운 진화형"이라는 극찬까지 곁들인 이 호평들은 의사들이 매튜의 노래를 듣고 내린 진단과도 통했다. 특히 트레몰로로 휘몰아치는 매튜의 오페라틱 보컬 코드와 유리가 깨지는 듯한 분노의 팔세토에 저들은 “매튜와 같은 성대는 남성에게서 본 적이 없다. 여성의 것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유명 인사들과 의료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상찬을 등에 업고 발매한 3집으로 지구 정복을 시작한 뮤즈는 자신들의 전기 작가 마크 보몬트Mark Beaumont가 지적한 것처럼 라디오헤드에서 바그너Richard Wagner까지 어우르는 록 오페라 용광로를 지나 “클래식과 하드록, 일렉트로닉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고치를 찢은 다면적 퓨처 록Future Rock의 나비”가 되어 갔다. 나비처럼 화려했던 뮤즈의 날갯짓은 그렇게 라디오헤드의 《The Bends》에 영향 받은 맨선Mansun, 세계 명문인 UCL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태어난 콜드플레이Coldplay와 더불어 "브릿팝 이후 최초의 믿을 만한 물결을 형성"했다.
4집 《Black Holes and Revelations》를 준비한 때는 3집으로 세계를 접수한 뮤즈가 더 높이, 더 화려하게 날아올라야 할 타이밍이었다. 매튜와 멤버들은 이를 위해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Provence에 있는 17세기 성 샤토 미라발Chateau Miraval 소재 스튜디오Miraval Studios에 자릴 잡는다. 이 스튜디오는 재즈 피아니스트 자크 루시에Jacques Loussier가 지은 곳으로 70~80년대에 스팅Sting,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 샤데이Sade 등이 사용했다. 매튜는 이곳이 작곡과 녹음을 하기에 완벽한 장소라며 멤버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밴드는 그렇게 두 달 동안 미라발 스튜디오에서 인터넷도 TV도, 심지어 문자 메시지를 포함한 휴대폰도 끊으며 자발적 단절 모드를 유지했다. 그들이 즐긴 여흥이란 말벌을 셔틀콕으로 사용해 배드민턴을 치거나, 히트곡을 재즈 스타일로 변주하는 정도였다.
매튜는 어린 시절 SAS영국군 특수부대 Special Air Service의 약자 대원으로 알려진 삼촌이 벨파스트Belfast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부터 사회와 조직을 불신하며 신문이 말하는 내용의 타당성에 끊임없이 의문을 품게 된다. 그가 4집을 준비하며 읽었던 마이클 C. 루퍼트Michael Craig Ruppert의 『루비콘을 건너서Crossing the Rubicon』도 그런 매튜의 성향이 반영된 독서였다. 이 책은 세계 석유 고갈로 전례 없는 경제 위기에 직면한 미국이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히 다루고 있다.
매튜의 현실 불신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3차 세계대전이 불과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고 믿은 그는 비틀스The Beatles가 미국 젊은이들을 세뇌하는 싱크탱크의 앞잡이라고까지 주장했다. 매튜에게 민주주의는 가짜이고 뉴스는 우리가 죄수처럼 사는 거짓 현실을 만들기 위해 조율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평범하다’는 건 학교 교육에서부터 작동하는 노예 시스템의 일부가 되는 걸 뜻하며, 서구 문명이 정의롭고 도덕적인데다 안정적이라고 생각하게 해 은행의 노예로 만드는 걸 의미한다고 매튜는 믿었다. 뮤즈의 리더는 인간 모두가 곧 마이크로칩을 이식받게 될 것인데, 신분증은 그 이후 진정한 빅 브라더Big Brother,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대표작 『1984』에 등장하는 가상 인물로,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Oceania를 통치하는 정체 모를 독재자의 세상으로 가는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매튜가 깊은 관심을 가졌던 조지 오웰 식 디스토피아는 5집 《The Resistance》에서 더 구체화 된다.
매튜의 독서 취향과 현대 시스템에 대한 불신 성향에 따라 매일 밤 미라발 스튜디오 저녁 식탁에 올라오던 주제는 이라크 전쟁과 9.11 테러 배후의 진실, 임박한 3차 세계대전의 불가피성, 계엄령의 발동, 영국 비밀정보국MI6 및 FBI가 조종하는 세계 정부, 세뇌 교육, 영화 『매드 맥스』 시리즈에서처럼 가장 조악한 자원을 두고 부족끼리 다투는 세상으로 전락한 미래 등 어둡고 폭력적인 것들 일색이었다. 뮤즈의 메인 작사가인 매튜의 노랫말은 때문에 점점 더 은둔적인 주제와 조직에 조종당하는 개인의 무기력함에 대한 분노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는 결국 각성한 인류가 어둠 속 꼭두각시 주인으로부터 자신들의 운명을 통제하는 것에 관한 앨범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상상의 블랙홀Black Holes에서 끌어낸 개인적, 정치적 계시Revelations에 관한 노래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만 갔다면 뮤즈 4집은 정말 어둡고 길고 지루한 프로그레시브 록 앨범이 됐을 거라고 매튜는 말했다.
우리가 앨범 작업 내내 프랑스에 머물렀다면 진짜 프로그레시브 음악으로 끝났을 거예요. <Knights of Cydonia>는 20분짜리 곡으로 남았겠죠. 뉴욕은 달랐어요. 거기엔 헨드릭스의 유령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하루 동안 보위David Bowie가 우리에게 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죠
매튜 벨라미
뮤즈는 풀 테이크Full Take 20곡 정도를 들고 미라발 스튜디오를 떠났지만, 그중 완성된 트랙은 <Take a Bow>와 <Invincible> 두 곡 뿐이었다. 매튜의 말처럼 솔루션은 뉴욕에 있었다. 늘어지는 작업으로 초점을 잃어가던 뮤즈는 “신체의 근접성과 문명의 번잡함”에 기댄 뉴욕의 활기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프로듀서는 뉴욕 현지인인 리치 코스티Rich Costey가 맡았고 녹음 장소는 데이비드 보위와 유투U2, 이기 팝Iggy Pop과 셀린 디온Céline Dion,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라스트 섀도우 퍼펫츠The Last Shadow Puppets 등이 거쳐 간 맨해튼 아바타Avatar 스튜디오와 1970년도에 지미 헨드릭스가 문을 연 그리니치 빌리지 소재 일렉트릭 레이디Electric Lady 스튜디오로 정했다. 밴드는 2005년 10월부터 12월 말 크리스마스 시즌 때까지 뉴욕에서 4집의 대부분을 완성했다.
뮤즈는 프랑스에서 작업하며 4집을 더블 또는 트리플 앨범으로 만들 생각을 하며 첫 번째 디스크에는 마스 볼타The Mars Volta 같은 프로그레시브 재즈 스타일을 담고, 세 번째 디스크에는 자신들이 만든 신시사이저 장식음들로 구성한 뒤 그 사이에 제대로 된 록 앨범을 끼워 넣는 것을 고려했다고 한다. 작업 장소가 뉴욕에 이르러 이들의 구상은 몸집을 줄여 최종 한 장짜리 ‘록 앨범’으로만 공개된다. 매튜가 밝힌 4집의 레퍼런스들엔 톰 모렐로Tom Morello 식 기타 리프에서 밀리어네어Millionaire, 데우스dEus의 벨기에 록과 소울왁스Soulwax의 벨기에 전자 음악, 아주 약간의 칸예 웨스트Kanye West 스타일,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과 솔로몬 버크Solomon Burke에서 프린스Prince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에까지 걸친 솔soul/펑크funk 그루브가 포함됐다. 《Black Holes and Revelations》에서 우린 저것들을 직간접으로 모두 들을 수 있었다.
Take a Bow
네 번째 앨범에서 매튜는 세계 지배 피라미드의 최하층 역할을 맡아 무력한 다수의 운명을 결정하는 이기적이고 비열한 소수를 올려다보며 분노하고 포효한다. 이를 위해 매튜가 선택한 오프닝 곡은 지난 3집의 정서를 잇는, 팔레스트리나의 합창 음악에서 영감을 얻었고 “버스verse와 코러스 없이 크레센도crescendo-점점 크게에 이르는” 테크노 메탈 클래식 트랙 <Take a Bow>였다. 영화 같은 강렬한 분위기 때문에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와 비교되기도 한 이 곡은 3집 세션의 마지막에 작곡해둔 것으로, “너희는 너희의 죄 때문에 지옥에서 불탈 것이다”라는 매튜의 외침이 묵시록적인 느낌을 자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튜는 『요한계시록』을 참고한 그 외침을 “부패한 정치인과 세계 지도자들을 겨냥한 정치적 저주”로 규정했다. 즉 우리의 삶을 실제로 지배하는 자들의 베일을 벗겨내고, 파시즘과 맞닿아 있는 저들의 숨겨진 악마성을 폭로하기 위함이었다. 이베이eBay에서 구입해 전원을 켜는 데만 일주일이 걸린 신시사이저Buchla 200e의 부글거리는 노이즈로 문을 여는 <Take a Bow>는 원래 앨범의 엔딩곡이 될 예정이었지만, 가사에서나 음악에서나 가장 과격한 곡으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끝에 당초 구상과 정반대 위치에 왔다.
Starlight
2004년 매튜는 단순하면서도 귀에 쏙 들어오는 음악을 들려준 스트록스The Strokes의 방식에 매료됐다. 저들처럼, 한 번 들으면 평생 뇌리에 남을 법한 노래를 써보고 싶다 생각한 매튜. 스트록스의 <12:51> 같은 멜로디에 크리스의 질긴 퍼즈 톤 베이스, 아바Abba 풍 스페이스 신스 사운드를 고루 곁들인 <Starlight>로 그는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룬다. 다음 곡을 위해 B 키key로 마무리한 <Take a Bow>를 곧바로 따라 들어오는 <Starlight>는 집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은 “SF 이미지로 가득한 러브 송”이다. SF 얘기가 나오는 건 노래의 줄거리가 블랙홀의 본질을 밝혀내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어쩌면 평생을 날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우주비행사의 관점뮤직비디오는 바다 위 거대한 배에서 찍었다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2집 구상 단계에서 매튜가 미국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의 『엘러건트 유니버스The Elegant Universe』와 미래학자 미치오 카쿠Michio Kaku의 『초공간Hyperspace』을 읽으며 다진 미래와 우주에의 관심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2004년 말 밴드 연습실에서 만든 이 곡은 미라발 스튜디오에서 느리고 부드러운 버전으로 처음 녹음되었으나, 뉴욕의 댄스 플로어 경험이 접목되며 펑키한 글램 록 그루브를 머금는다. 퀸Queen의 <Radio Ga Ga>처럼 공연장에서 관객들의 약속된 단체 박수를 유도하는 이 곡의 가사에는 앨범 제목Black Holes and Revelations도 포함돼 있다.
Supermassive Black Hole
매튜는 일주일에 이틀 밤 뉴욕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의 바bar에서 일하는 DJ를 알고 있었다. 뮤즈 멤버들을 데리고 숙소 근처 다운타운 클럽에 가서 춤을 추곤 했던 그녀는 매튜에게 디제잉의 기초를 가르쳤다. 처음엔 크로스페이딩이나 스크래칭 같은 개념이 생소하기만 했던 매튜는 이내 디제잉에 빠져 디페시 모드와 벡Beck, 유리스믹스Eurythmics를 틀고 무심하게 담배를 피울 정도가 된다. 그렇게 뮤즈는 맨해튼에서 ‘춤추는 삶’을 발견했고, 그 긍정성에 물들어 갔다. 댄스 플로어에서 캐낸 그루브는 그들이 작업하고 있던 음악 분위기를 순식간에 밝게 만들었다. 매튜는 랩처The Rapture나 칙칙칙!!!, Chk Chk Chk 같은 댄서블한 미국 밴드들이 구사하는 일렉트로닉과 기타 음악의 결합에 흠뻑 빠졌다. 매튜가 미국 댄스 플로어에서 받은 저러한 영감은 <Supermassive Black Hole>이라는 곡에 즉각적인 활력을 불어넣었다.
<Supermassive Black Hole>은 빅뱅이 남긴 우주 중앙의 거대한 블랙홀이 언젠가 다시 우주 전체를 빨아들일 것이라는 은유를 통해 '벗어날 수 없는 파괴적인 관계'를 표현한 곡이다. 매튜는 앞서 말한 레퍼런스들 중 프린스 같은 가성을 쏟아내고, 곡 전체는 마이클 잭슨 풍 댄스 그루브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그루브의 핵심인 펑키 베이스 라인은 뮤즈를 헤비메탈과 인디 음악, 팝, 클래식 팬들에게까지 어필할 수 있는 밴드로 만들어준 3집의 대표곡 <Time Is Running Out>이 청사진을 제공했다는 게 정설이다.
Map of the Problematique
<Map of the Problematique>는 리드미컬한 키보드 패치와 신시사이저로 장난을 치다 태어난 일렉트로닉 록 트랙이다. 매튜는 곡에 아련한 맛을 더하는 피아노 파트를 순수한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의 요소로서 1980~90년대 레이브Rave 신에 대한 찬사로 여겼지만, 평단에선 80년대 후반 디페시 모드 풍 일렉트로닉 고스electronic goth나 뉴 오더New Order의 선구적인 인디 테크노 작품과 더 닮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로 “디페시 모드가 『007 제임스 본드』 사운드트랙을 위해 퀸을 커버한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매튜는 이 곡의 주제를 1972년 로마클럽The Club of Rome-세계적인 학자와 기업가, 유력 정치인들이 참여해 인류와 지구의 미래에 관해 연구하는 비영리 연구기관이 발표한 보고서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에서 가져왔다. 『성장의 한계』는 세계 인구의 급증 및 천연자원의 감소로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글로벌 문제와 그 결과를 바꿀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문제의 지도’에 정리한 보고서로, 해당 보고서에선 천연자원이 2070년까지 모두 고갈될 것으로 예측했다.
Soldier’s Poem & Invincible
매튜에 따르면 접속곡 같은 <Soldier’s Poem>과 <Invincible>은 희망을 잃는 일과 자신 안에서 희망을 찾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4집의 핵심 트랙들이다. 특히 전쟁의 이유도 모르고, 맞서 싸우는 사람과 지켜야 할 나라 자체에 초연한 군인의 입장에서 쓴 <Soldier’s Poem>은 미라발 스튜디오에서 밴드가 겪은 고립감과 편집증에 가장 어울리는 곡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Can't Help Falling in Love>에서 영감을 받아 당초 가사와 편곡을 완전히 새로 썼다는 이 곡은 아바타 스튜디오에서 단 4개 마이크로 녹음했는데, 이때 매튜는 오래된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했고 크리스는 업라이트 베이스를 뜯었다. 도미닉도 동료들과 같이 낡은 드럼 키트를 두드렸다고 한다. 혹자는 3집 《Absolution》에 먼저 실릴 뻔한 이 곡에서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 느낌의 간결한 듯 풍성한 하모니를 듣기도 했다.
한 곡은 내리막길로 가고 다른 한 곡은 위로 올라가는 식으로 두 곡이 연결됩니다. 그중 <Invincible>엔 마치 꿈 속인 듯 이상한 낙관주의가 있어요. <Soldier’s Poem>의 군사 테마를 엄청난 위안과 신념의 노래로 바꾼 토치 송torch song이죠.” - 매튜 벨라미
뮤즈는 2005년 캠퍼스 인베이전Campus Invasion 투어 중 미국 오대호Great Lakes 지역의 눈 덮인 작은 마을에서 TV도 없는 끔찍한 모텔에 머문 적이 있다. 하루는 호수에서 낚시를 하려 배를 빌렸는데 낚시를 하는 동안 밴드 앞에 “천국이 열렸다”고 한다.뮤직비디오의 도입부는 이때 느낌을 시각화 한 듯도 보인다. 비록 밴드 리더는 뱃멀미 등으로 고생했지만, 매튜는 이후 모텔에서 무료함을 달래며 <Invincible>의 ‘낙관적인’ 인트로를 건질 수 있었다. <Invincible>은 <Take a Bow> 녹음이 뜻대로 되질 않아 좌절감에 빠진 밴드가 어느 날 미라발 스튜디오에서 홧김에 녹음한 곡이기도 하다.
Assassin
라흐마니노프Rachmaninov의 <Prelude in G Minor>에서 싹을 틔워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의 다론 말라키안Daron Malakian 식 아르메니아 메탈 기타 인근에서 만개하는 <Assassin>은 뮤즈의 가장 신랄한 정치 노래다. 처음엔 의회를 불태우자는 전면적인 폭동 선동가로서 그 정치 성향이 훨씬 노골적이었지만, 해당 내용은 행여 시끄러울 것을 고려한 듯 자연 폐기됐다. 매튜에 따르면 ‘암살자’라는 곡 제목은 벼랑 끝에 몰린 테러리스트가 대통령을 쏠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플로리다 보카러톤Boca Raton에 있는 오디토리엄 필드Auditorium Field에서 처음 선보인 <Assassin>의 원래 제목은 ‘Demonocracy’. ‘Demonocracy’는 이후 ‘Assassin’에 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은 노랫말 속으로 물러난다. 만든 이의 메시지를 지지하는 헤비 기타, 베이스 리프와 듣는 이의 감성을 보듬는 서정적인 보컬 멜로디가 그림처럼 어울린다.
Exo-Politics
뮤즈 4집에서 내가 따로 좋아했던 곡이다. 앨범에서 두 번째 선공개 곡이었고, 스웨이드Suede 풍의 스웨그 넘치는 드럼과 매혹적인 보컬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이 곡에선 매튜의 맨슨 기타에 장착된 카오스 패드Kaoss Pad 연주를 들을 수 있는데, 앞서 <Invincible>에서도 등장했던 장비다. 맨슨 기타의 대표인 휴 맨슨Hugh Manson이 매튜의 기타에 직접 이식한 카오스 패드는 이 노래에서 테레민Theremin 연주 효과를 낸다. 세 차례 분위기를 바꿔 가며 서정성과 박진감이라는 뮤즈 음악의 장점을 구축하는 <Exo-Politics>는 신세계 질서에서 비롯된 외계인의 조직적 침공 가능성을 다루었다. 외계인이 침공하면 무기를 만들어야 하므로, 곡은 정부의 군비 예산 증가 구실로서 해당 시나리오의 탐욕성을 꼬집는다.
City of Delusion & Hoodoo & Knights of Cydonia
앨범의 마지막 세 곡은 “스파게티 웨스턴 스토리텔링의 장대한 3부작”이다. 그중 첫 번째인 <City of Delusion>은 <Assassin>의 폭력적 혁명 테마를 이으면서도 플라멩코 기타와 아라비아 현악기, 마리아치Mariachi-멕시코 전통 복장을 입은 소규모 밴드 또는 길거리 연주가들이 들려주는 멕시코 전통 음악을 가리키는 말 트럼펫을 배치해 그 분노를 살짝 누그러뜨린다. 3집 시절 일본 공연에서 사운드 체크를 하며 쓰기 시작한 곡으로, 때문에 《Black Holes and Revelations》에서 가장 오래된 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외로 <City of Delusion>은 앨범에 수록되지 못할 뻔 했는데, 곡을 살린 건 아라비아 음악 애호가인 한 이탈리아 현악 편곡가앨범 크레디트 상 마우로 파가니Mauro Pagani라는 인물인 것 같다였다. 매튜가 그에게 편곡을 부탁, 의뢰를 받은 편곡가가 노래에 튀르키예 스타일을 곁들이며 곡의 구세주 역할을 한 것이다. 가사는 다문화주의의 좋은 면과 나쁜 면에 관한 이야기다.
이어지는 <Hoodoo>는 혹자의 표현대로 스페인 기타와 무더운 현악기의 물결로 시작해 바이올린, 피아노, 오페라 편성으로 소용돌이 치다, 다시 재즈 라운지 속으로 스러져가는 구조를 띤다. 매튜는 곡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과거의 연애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죠.(‘Hoodoo’는 불운을 뜻하는 말이다.) 잊고 지냈던 첫 연애를 돌아볼 수 있게 된 거랄까요. 그런 것들을 잊기 시작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내 인생에 들어와 큰 영향을 미치곤 사라졌는데. 이 곡은 그런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놓친 기회에 관한 노래라고 할 수 있죠
2004년 12월, 미국에서 36회 공연을 끝낸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도미닉은 투어 버스 뒷좌석 라운지에서 매튜가 새로운 기타 리프를 연주하는 걸 들었다. 그건 마치 “야생의 사막 속 말馬 떼가 매튜의 기타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들렸다. 그렇게 들렸을 법도 한 것이, 매튜가 그 리프를 연주할 때 투어 버스는 실제 애리조나 사막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미닉이 그날 아침 들은 기타 리프는 <Knights of Cydonia>의 일부였다. 뮤직비디오에서 확인할 수 있듯 <Knights of Cydonia>는 우주 시대 서부극 콘셉트를 반영하고 있지만, “바보가 리더가 된다”라는 가사는 앞 트랙들에서 보여준 반정부적 입장에 가깝다.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풍 서부영화의 황량한 분위기와 플라멩코, 『킬 빌Kill Bill』과 텍스 멕스Tex Mex-텍사스와 멕시코를 뜻한다, 톰 웨이츠Tom Waits가 뒤섞인 이 곡은 당시 뮤즈에게 ‘미국적인 것의 거대함’이 드리운 그림자였다. 크리스의 말처럼 그 안엔 “40년 록 역사가 압축” 돼 있었고, 문명의 흥망성쇠가 녹아 있었다. 아울러 시칠리아와 나폴리 식 남유럽 민속 음악의 갤로핑galloping 아르페지오에 영향을 받기도 한 <Knights of Cydonia>는 60년대 영국 록 밴드 토네이도스The Tornados의 히트곡 <Telstar>에서 프로듀서 조 믹Joe Meek이 들려준 서핑 기타 사운드도 노렸다. 토네이도스는 매튜의 부친인 조지 벨라미George Bellamy가 리듬 기타리스트로서 몸담았던 팀으로, 아들 매튜는 아버지의 위대한 음악 업적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오프닝 기타 연주로 같은 곡의 클라비올린Clavioline-1947년 프랑스의 콘스탄트 마르탱Constant Martin이 발명한 전자 아날로그 신시사이저 사운드와 멜로디를 흉내 냈다. 여기에 일말의 스산함을 더해준 트럼펫 연주는 매튜가 바에서 우연히 만난 프랑코라는 트럼페터의 솜씨다.
밴드 주위 사람들은 <Knights of Cydonia>로 앨범을 시작하는 것이 팬들에게 완전히 새롭고 거대한 뮤즈 사운드를 소개하는 가장 놀라운 방법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곡은 거꾸로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여러모로 현명한 선택이었다.
《Black Holes and Revelations》의 녹음은 2006년 초 밀라노 오피치네 메카니체 스튜디오Officine Meccaniche Studios에서 5주 정도 작업 후 정리됐다. 보유한 곡만 20곡이었던 탓에 마지막까지 더블 앨범을 고민했지만 실행까진 가지 않았다. 믹싱은 아바타 스튜디오를 거친 <Hoodoo>와 뉴욕 소니 뮤직 스튜디오Sony Music Studios에 맡긴 <Starlight>를 제외하고 런던의 타운하우스 스튜디오에서 모두 소화했다. 소니 뮤직 스튜디오는 같은 지역의 마스터디스크Masterdisk와 함께 작품의 마스터링까지 처리한다.
밴드는 아쉬운 마음으로 스튜디오를 나왔던 이전과 달리, 4집 땐 가장 힘들었던 녹음과 음악적 영혼을 탐구한 끝에 정말 제대로 해낸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앨범 발매 일정은 한동안 비밀에 부쳐야 했는데, 당시만 해도 발매 전 음원이 인터넷에 유출되는 사고가 빈번했고 음반사들은 이것이 앨범 판매고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앨범 슬리브 디자인은 3집에 이어 다시 스톰 소거슨Storm Thorgerson이 맡았다. 채석장에서 한 남자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중성의 휴머노이드 편대 그림자를 연출했던 스톰. 그가 구상한 이번 콘셉트는 황량한 붉은 화성 위 테이블에 둘러앉은 종말의 네 기수Four Horsemen of the Apocalypse였다. 스톰은 의뢰인의 주문을 해결하기 위해 스페인 바르데나스 레알레스Bardenas Reales에 있는 공군 폭격 훈련 지역에서 0.5마일 떨어진 곳을 촬영장으로 잡았다. 애초 스톰은 창백한 말을 죽음으로, 붉은 말은 전쟁, 검은 말은 기근, 흰 말은 적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설정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네 사내는 각각 그 말들의 은유였다. 그런데 스톰에게 성경은 너무 멀게 느껴졌다. 뮤즈는 ‘현대’의 밴드이므로 스톰은 금색 수트를 입은 남자를 탐욕Mr. Greed으로, 눈eyes들로 둘러싸인 수트 사내는 편집증Mr. Paranoia으로, 종교 무늬가 그려진 수트를 걸친 남자는 종교적 편협함Mr. Intolerance으로, 마지막 거울로 뒤덮인 수트남은 나르시시즘Mr. Narcissism으로 새로이 역할을 부여했다. 화성과 더 비슷해 보이도록 사진에 붉은 빛을 넣어달라는 추가 주문을 제외하고 밴드는 스톰의 저러한 제안과 결과물을 모두 승인했다. 알래스카에 있는 고주파 활성 오로라 연구 프로그램HAARP의 사진을 속지에 첨부‘HAARP’는 2008년에 발매한 뮤즈의 라이브 앨범 제목이 된다한 스톰은 이 모든 작업에 영감을 준 음악으로 <Invincible>과 <Knights of Cydonia>를 꼽았다.
속지를 꼼꼼히 본 사람은 알겠지만 뮤즈 4집은 헬렌 커크Helen Kirk라는 사람에게 헌정됐다. 헬렌은 뮤즈의 미디어 매니저로 활약한 톰 커크Tom Kirk의 동생이자 멤버들 모두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는 2005년 12월 26일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향년 2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