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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Myself'

by 김성대


간밤에 배우 이순재 님이 별세했다. 향년 91세.

나에게 이순재라는 이름은 언제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와 엮였다.

방영을 시작한 1991년 11월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고,

나는 숨 막히는 가부장주의 집안에서 자란 남자이대발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장려하는 집안에서 자란 여자박지은가 티격태격하며 사랑을 키우던 그 모습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데까지만 이해하며 열심히 보았다.

고인이 맡았던 이병호 사장이 아들을 부르던 "야 대발아!"가 장안의 유행어로 퍼지던 한편에선,

그의 아내 여순자배우 김혜자 님이 맡았던의 심리를 대변한 김국환의 <타타타>가 당대 유행가로 인기를 누렸다.

배우 이순재는 최고 시청률이 65퍼센트까지 치솟았던 이 국민 드라마와 함께 내 기억에 남았고, 앞으로도 남을 것이다.


아침부터 1991년과 죽음을 대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신해철의 두 번째 솔로 앨범을 턴테이블에 걸었다.

어릴 때부터 마르고 닳도록 들어온 앨범 《Myself》는 『사랑이 뭐길래』가 방영되기 7개월 전 대중에게 공개됐다.

<재즈카페>, <나에게 쓰는 편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다시 녹음한 데뷔곡 <그대에게> 같은 히트곡들을 쏟아낸 이 작품은 발라드 가수라는 세간의 오해를 지워내기 위해 몸부림친 뮤지션 신해철의 분수령이었다.난 <길 위에서>를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오늘은 꺼낸 이유가 이유여서인지 유독 <50년 후의 내 모습>이라는 노래에 귀가 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게 될 늙음과 죽음에 관한 성찰을 신해철 본인이 좋아했던 프로그레시브 록과 신스/일렉트로닉 팝 사운드에 실어 토해낸 곡으로, 살아갈 시간이 살아온 시간보다 훨씬 적어질 거라는 가사 내용은 그때만 해도 나와는 먼 이야기였다.

그런데 오늘 노래를 들으며, 신해철이 상정한 '50년 후'가 이제 고작 15년 남짓2041년 남은 걸 깨닫고 나는 소름이 돋았다. 노후연금과 사회보장을 따져야 하는 나이를 15년 뒤에 나도 맞는 거다.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그래서 더 무자비한 세월.


연예인의 죽음에 무감했던 나를 처음 오열하게 한 신해철이

철없을 때 드라마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작품 속 고인의 별세와 함께 떠오른 건

역시 1991년이라는 연도 때문일 터다.

10대 땐 <나에게 쓰는 편지>에 그렇게 공감되더니,

이젠 <50년 후의 내 모습>이 남일 같지 않다.

신났던 <재즈카페>의 정글 같은 비트도 오늘은 곡이 지닌 어두운 기운에 맥을 못 춘다.


이순재 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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