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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Oct 28. 2016

신해철 디스코그래피

그의 발자취를 더듬다

‘마왕’ 신해철이 팬들 곁을 떠나고 정확히 2년이 흘렀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시간 동안 우린 참 많은 일을 겪었고 또 견뎠다. 탁월한 뮤지션으로서, 인디 후배들에게는 힘을 주고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희망을 건넸던 그의 자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다.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그때도 지금도 없었다. 나는 오늘 그의 팬으로서 그의 음악을 간단하게나마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유일무이했던 한 인물의 부재에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한 장 두 장 그의 자취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다.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게 전부다.



1988년 MBC 대학가요제

1988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거머쥔 무한궤도. ‘그대에게’는 뮤지션 신해철의 시작이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이 곡의 가사와 멜로디는 철없는 초등학생의 뇌리에도 한 자 한 음 신기할 정도로 또렷이 각인됐었다. 듣는 순간 누구나가 대상을 직감했을 곡. 이불 속에서 멜로디언으로 작곡한 곡이 실제 아레나 록이 되었던 순간, ‘마왕’은 그렇게 내 청춘을 조금씩 지배해가기 시작했다.



신해철 1집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글쓴이도 그처럼 저음인 편이라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는 언젠가부터 노래방 가면 예약하는 ‘18번’이 자연스레 되었다. ‘안녕’으로 뉴웨이브를 선보이고 ‘연극 속에서’로 다음(N.EX.T)을 약속한 솔로 1집에서 나는 ‘떠나보내며’를 특히 좋아했다. 2년 전 저녁,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다 들은 부고여서 당장 울진 않았지만 내 방으로 온 나를 가장 많이 울린 건 역시 무한궤도 앨범과 이 앨범, 중에서도 ‘떠나보내며’였다. 정말로 그를 떠나보내며 ‘떠나보내며’를 들은 그날 밤을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댄 가장 큰 내 꿈인데 오 떠나가요 그대의 길로 힘이 들 땐 우리의 사랑을 기억해요” 

이 곡이 단순한 사랑 노래가 아니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신해철 2집 ‘Myself’

신해철은 나에게 고호와 니체를 알게 해 준 사람이다. 바로 ‘나에게 쓰는 편지’를 듣고 한 중학생이 처음으로 철학과 삶에 노출된 순간이다. 그는 나에게 가사 듣는 맛을 알게 해 준 첫, 그리고 거의 유일한 국내 뮤지션이었다. 음악이 배경이 되고 글이 주가 되거나 글이 배경이 되고 음악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닌, 신해철의 음악에선 글과 음악이 언제나 서로를 지탱하고 보듬었다. ‘길 위에서’가 실린 솔로 2집은 그 시작이자 절정이었던 걸로 나는 기억한다. 더불어 ‘재즈카페’의 파격적인 리듬, 무한궤도 이후 다시 실린 ‘그대에게’와 결국 보지 못하고 만 ‘50년 후의 내 모습’도 잊지 못할 클래식들로서 ‘Myself’ 앨범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N.EX.T ‘Home’

펑큰롤(Funk N’ Roll)이라는 변종 장르를 들고 온 넥스트가 신해철의 팀이라는 사실은 다시 한 번 내 가슴을 뛰게 했다. 첫사랑을 세련되게 반추한 ‘인형의 기사 part II’에 취했고 내가 사는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준 ‘도시인’과 ‘turn off the T.V’에 열광했다. 리듬은 펑키하지만 가사와 멜로디는 슬펐던 ‘외로움의 거리’는 마냥 멋있었고 긴 나레이션 곡 ‘아버지와 나 part I’은 또 마냥 슬펐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세상에 길들여짐임을, 남들과 닮아가는 것이 꿈을 잃는 일임을 알게 해준 ‘영원히’는 내 페이버릿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다. 넥스트 1집은, 그리고 넥스트의 주인인 신해철은 음악을 넘어 내가 세상에 눈 뜨게 해 준 앨범이었고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바로 2년 전에 떠난 것이다. 그날 나는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N.EX.T ‘The Return of N.EX.T PART I The Being’

“부모가 정해놓은 길을(선생이 가르치는대로)친구들과 경쟁하며 걷는다”

이 한 줄의 가사는 이때까지 살아온 내 인생을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했다. 꼭두각시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게 되었고 비뚤어진 세상을 향한 헤비메탈의 통렬한 사운드를 배웠다. 한국인 록커가 만든 것들 중 ‘껍질의 파괴’를 넘어서는 메탈 곡을 나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아시아(Asia)와 주다스 프리스트, 메탈리카와 드림 씨어터를 좋아했던 신해철이 타고난 비판 의식을 음악으로 표현해낸 순간 대한민국 하드록의 수준은 조금 더 올라갔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곡이 수록된, 분노와 어둠으로 가득했던 ‘The Return Of N.Ex.T Part 1 : The Being’은 지금도 내가 최고로 꼽는 신해철의 걸작이었다.




신해철 ‘정글스토리 OST’

세상에 대한 분노와 풍자, 그에 전제된 정치 사회적 정의감은 이제 신해철의 일상이요 입장이 된 듯 보였다. 이러한 성향은 숙명과도 같이 그의 팬과 적을 뚜렷이 가르게 되는데 이를테면 노무현과 박정희 중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가 신해철의 팬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식이었다. ‘정글스토리 OST’는 신해철의 그러한 반골 성향을 더 세밀히 조각해준 솔로 앨범이었다. ‘아주 가끔은’이 가장 유명하지만 나는 ‘절망에 관하여’와 ‘70년대에 바침’, 그리고 ‘백수가’에서 더 신해철다움을 느꼈던 것 같다. 부당한 것에 반항하는 행위의 참뜻, 가치를 알게 되었달까. 신해철은 요즘 말로 내 삶의 ‘멘토’였던 셈이다.



N.EX.T ‘The Return of N·EX·T Part II The World’

동성동본이라는 제도적 고통과 사랑이라는 영원의 낭만이 만난 곳에서‘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는 태어났다. 신해철이 얼마나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람인지 나는 이 곡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쓰레기야’와 ‘아가에게’가 공존하고 ‘Komerican blues’와 ‘money’로 대한민국 또는 자본주의를 조롱하는 넥스트 3집은 그렇게 2집과 더불어 록커 신해철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절을 장식하게 된다. 그날 밤, 그를 보낸 남은 멤버들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지, 괜히 궁금해진다.



노땐스 ‘Nodance’

1996년은 그에게 정말 바빴던 한 해였을 거다. 솔로와 듀오, 거기다 밴드 리더로까지 종횡무진 활약해야 했으니까. 장르에서도 마찬가지다. 윤상과 만나 결성한 단발성 프로젝트 노땐스(No Dance)에서 그는 국내에서 왜곡 전파된 ‘테크노’라는 장르를 감상용으로 끌어올리며 전자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걸 증명했다. 나는 그 중 ‘질주’를 가장 좋아했는데 서태지의 ‘수시아’가 그렇듯 세월이 지날수록 더 빛이 나는 트랙이라면 맞을 것 같다. 노땐스는 결국 신해철의 솔로 프로젝트인 (모노)크롬의 전조 비슷한 것이 된다.



N.EX.T ‘Here I Stand For You (Single)’

1997년. 대한민국에 첫 ‘싱글’이 등장한다. 지금이야 흔한 개념이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싱글이란 해외 음반계에서나 통용되는 것이었다. 한국 대중에겐 새로운 개념이었을 싱글 발매를 현실화 시킨 사람은 역시 신해철이었다. 레너드 코언만 장착돼 있는 줄 알았던 신해철의 성대에서 롭 핼포드가 불거져 나왔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에게 쓰는 편지’, ‘the dreamer’와 더불어 글쓴이가 가장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가 된 이 곡이 나온 해에 넥스트는 또 하나의 큰 프로젝트 앨범을 기획 중이었다. 바로 국산 애니메이션 ‘라젠카’ 사운드트랙이었다.



N.EX.T ‘Lazenca (A Space Rock Opera)’

넥스트의 네 번째 정규 앨범 ‘Lazenca : A Space Rock Opera’는 ‘The Being’에 버금가는 걸작이었다. 신해철의 음악 유전자에 뿌리 깊이 박힌 프로그레시브 및 아레나 록 성향과 헤비니스에 대한 애정, 그리고 드라마와 감성이 총집약된 전반적인 사운드는 ‘한국의 드림 씨어터’라는 넥스트의 위상에 걸맞는 것으로 손색이 없었다. ‘lazenca, save us’와 ‘power’에 맞서는 ‘먼 훗날 언젠가’와 ‘poem of stars’의 조용한 반격, 그 모든 걸 망라한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감동적 활기는 그대로 넥스트의 가장 거대하고 객관적인 음악적 결실로 남게 된다.



신해철 ‘Crom`s Techno Works’

박수칠 때 떠나라 했던가. 신해철은 ‘라젠카’라는 명반을 뒤로 하고 넥스트 해체를 선언, 돌연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그리고 다시 테크노 음악을 가지고 돌아왔는데 그의 이름은 혁명가 크롬웰 이름을 본딴 크롬(Crom)으로 바뀌었고 앨범 제목은 다름 아닌 ‘Crom’s Techno Works’였다. 솔로 신해철과 넥스트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신해철의 음악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돼주었던 이 멋진 앨범은 그가 입버릇처럼 말한 “10년 뒤나 20년 뒤에 봤을 때도 기술적으로 뒤떨어지지 않는 음악” 바로 그것이었다.



Monocrom ‘Monocrom’

영국과 미국을 누비던 유학생 ‘크롬’은 자신의 두 번째 앨범, 그러니까 신해철의 네 번째 솔로작을 내놓는다. 바로 ‘Monocrom’으로, 이번엔 윤상이 아닌 그리스인 프로듀서 크리스 샹그리디와 함께 했다. 극찬을 받은 전작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앨범으로 평가되며 이젠 그의 ‘중기 명반’으로 불려야 할 작품으로, 생각 있는 한국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했을 ‘우리 것과 서양 것의 조화’를 신해철은 ‘無所有(무소유) – I’ve got nothing’에서 시도했고 결국 해냈다. 살아온 뿌리(동양)와 들어온 뿌리(서양)가 만나 이뤄낸 이 기막힌 음악 풍경은 크래쉬가 커버한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보다 훨씬 값지고 아름다웠던 걸로 기억된다. 다만, 이제 다시는 이런 환상적인 음악을 그를 통해 들을 수 없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신해철 ‘Homemade Cookies & 99 Crom Live’

언젠가 신해철은 자신의 장례식장에 울려 퍼질 곡으로 ‘민물장어의 꿈’을 꼽았다. 이 곡이 수록된 ‘Homemade Cookies & 99 Crom Live’는 세기말 감행된 콘서트 음원과 10 여 년간 쌓인 미발표곡들을 모은 세 장짜리 컴필레이션이었다. 이는 뮤지션 신해철이 꾸준히 관심 가져온 음악 장르 즉, 록과 일렉트로닉(테크노)이 어떻게 효율적으로 얽힐 수 있고 또한 ‘소리’에 대한 그의 관심과 집착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이었다. 그렇게 새 천 년을 맞이하는 신해철은 또 하나의 개인 프로젝트를 가지고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철학도였던 그의 과거에 어쩔 수 없이 연관시킬 수밖에 없었던 이름. 바로 비트겐슈타인이다.



Theatre Wittgenstein : Part1 - A Man's Life

2000년. 영화 ‘세기말’ OST를 쓰고 스타크래프트 옴니버스 앨범에 참여한 신해철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의미심장한 팀을 결성해 다시 팬들에게 돌아온다. 여기선 이후 넥스트 멤버로서도 활약하는 데빈 리(기타)와 빙크(Vink, 키보드)가 그를 보좌했다. 세월과 함께 뿔뿔이 흩어진 친구들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는 내용의 ‘Friends’가 수록된 이 앨범은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의 삶’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다시 한 번 신해철의 거침없는 가사가 불을 뿜었는데, 보사노바 트랙 ‘수컷의 몰락’과 헤비한 ‘pressure’는 그 중 압권이라 하겠다. ‘사이버 메탈’ 정도로 정의내릴 수 있을 후기 넥스트 사운드가 ‘오버액션 맨’에서 펼쳐지곤 있지만 수록곡 대부분은 사실 2000년대 뉴메탈 그루브에 빚을 지고 있었다.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고 눈치 보지 말고 살라는 평소 그의 소신은 ‘백수의 아침’과 ‘소년아 기타를 잡아라’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때와 비교해보면 같은 뮤지션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 앨범은 신해철 음악의 또 다른 진수를 담은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이처럼 음악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았던 것이다.



N.EX.T ‘The Return Of N.EX.T Part III : 개한민국’

신해철은 비트겐슈타인 이후 4년을 들국화 트리뷰트 앨범을 비롯 2002년 월드컵 공식 응원가 앨범 및 김수철의 12년 만 독집 앨범 참여 등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온 앨범이 바로 ‘The Return Of N.EX.T Part III’, 통칭 ‘개한민국 앨범’으로 불리는 작품이었다. 넥스트 최악의 디스크로 꼽히는 이 어정쩡한 더블 앨범은 그러나 신해철이 마음먹고 써내려간 정치적 일갈, 사회 비판 메시지만으로도 다시 들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음악도 마냥 비난만 하기엔 뭔가 석연찮은 것이 머신 헤드와 프린스가 힘껏 뒤섞이고 있는 그 곳엔 신해철이 하고 싶었던 음악적 본질이 그대로 녹아있었기 때문이다. 고인도 생전에 그리 좋아하진 않았던 앨범이지만 그래도 ‘쓰레기’라고까지 깎아내릴 졸작은 아니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N.EX.T 5.5집 ‘Regame?’

‘개한민국’으로 온갖 혹평을 받은 뒤 신해철은 퀸 2집 재킷을 패러디한 5.5집 ‘Re-Game?’을 들고 2006년 돌아온다.

“5.5집은 기획이 굉장히 오래 전서부터 됐던 앨범이에요. 앨범을 한 장 한 장 낼 때마다 저의 원한은 하늘을 찔렀죠. ‘이 노랜 왜 이렇게 된 거야’ 그런 노래가 해가 갈수록 죽어서 없어져야 되는데 방송을 타고 계속 나오면 괴로운 거죠. “아버지와 나” 같은 경우에는 만들 땐 작살나게 사운드가 후지게 나왔는데 어버이날만 되면 또 나오는 거야 해마다…… 기어 나오는데 미치겠는거죠! 그러니까 이런 원한…… 그래서 만일 언젠가 여건이 되면 ‘요건 꼭 다시 녹음한다’라고 이렇게 핀을 꽂아놨던 레퍼토리들이에요.”

그 해 신해철은 글쓴이와 인터뷰에서 “종합 섞어찌개 해물탕”이라 밝힌 이 앨범의 제작 배경을 위와 같이 설명해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리 나쁘지 않게 들리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 앨범에도 실망과 탄식을 터뜨렸던 기억이다. 아마도 팬들은 오리지널 정규 앨범이 아닌 ‘우려먹기’ 앨범을 내놓은 데 실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편견을 버리고 한 번씩 꺼내 들으면 원곡과 비교하는 맛도 있고 듣는 재미가 꽤 쏠쏠한 작품이라 나는 말해주고 싶다. 뮤지션이 자신의 곡들을 재녹음 할 때는 다 그만한 사연과 이유가 있게 마련이니까.



신해철 ‘The Songs For The One’

그러나 신해철과 넥스트 앨범에 대한 혹평은 멈출 줄 몰랐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를 즐겨 듣는다는 신해철이 턱시도로 한껏 멋을 내고 발매한 이 28인조 빅밴드 스윙 재즈 앨범 역시 팬들과 평단이 마련한 서슬퍼런 도마 위를 피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my way’,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moon river’ 등 해외 스탠다드와 ‘하숙생’, ‘장미’,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같은 우리 고전들이 사이좋게 편곡되어 앨범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그래도 자신의 아내와 딸에게 바치는 앨범이었던 만큼 객관적 음악성 너머에 있는 개인적 의미까지 매도하는 건 좀 과하다는 생각을 나는 그때 했었던 것 같다. 분명 이 앨범을 선물 받은 두 사람에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이고 노래였을 텐데 말이다.



N.EX.T ‘666 Trilogy Part 1’

“타이틀은 ‘666’이 될 거구요, 오는(2006년) 6월 6일 6시부터 녹음에 들어갈 예정입니다.(웃음)” -신해철

자신의 시도에 대한 사람들의 연이은 혹평에 자존심이 상한 것일까. 신해철은 비록 약속한 날짜와 시간에 새 앨범을 녹음하진 못했지만 2년 뒤 넥스트 7기를 이끌고 보란 듯이 컴백한다. 타이틀은 약속대로 ‘666’. 그 중 ‘증오의 제국’은 ‘껍질의 파괴’ 이후 가장 혹독한 가사와 기타 리프를 자랑하며 앨범의 얼굴이 되었다. 잠시 감상해보자.

신은 내게 전혀 관심이 없고
정부는 내게 단지 세금을 원해
얼굴 한번조차 마주 친 적 없는
이웃은 내가 살아 있는 줄도 몰라
(……)
빈곤과 절망이 결혼을 함에
그들 사이에 증오를 낳으사
그가 뿜어대는 독한 연기 속에
편견이 분열의 춤을 추도다


공감과 거부를 동시에 부르는 신해철의 ‘독설’이 되살아난 순간이다. 그것은 ‘개판 5분전 만취 공중 해적단 [totally screwed up drunken aero-pirates]’과 ‘dance united’가 증명하고 있듯 사운드는 타이트하게 다잡았고 예전 못지않은 송라이팅 감각도 되찾은 호쾌한 복귀였다. 신해철은 역시 넥스트에 있을 때 가장 멋있고 잘 하는 뮤지션인가 보다 당시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신해철 ‘Reboot Myself Part 1’


그리고 신해철은 다시 6년이나 팬들을 기다리게 만든 뒤 ‘Reboot Myself 6th Part 1’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솔로로서 팬들 앞에 다시 선다. 눈에 띄게 체중이 불은 모습에서 모종의 불안을 느낀 건 비단 나뿐이었을까. 당시 그는 1,000개 이상 녹음 트랙에 자신의 목소리를 중복 녹음한 엽기적 아카펠라 원맨쇼 ‘A.D.D.A’를 비롯 짜릿한 펑키 그루브에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얹은 ‘catch me if u can (바퀴벌레)’, 뮤즈와 퀸의 요소를 통해 특정인의 무능함을 은유적으로 비꼰 ‘princess maker’, 그리고 ‘here, I stand for you’에서 그가 꼽은 가치들(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이 다시 등장하는 휴머니즘 발라드 ‘단 하나의 약속’을 들려주며 뮤지션으로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정말 멋진 컴백이었고 ‘다음은 넥스트’라는 말에 나 역시 팬으로서 가슴 설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바보처럼, 이 앨범이 그의 마지막 솔로 앨범이 될 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에겐 시간이 얼마 없었다.



N.EX.T 'I want it all'

6년 만의 넥스트 신곡 ‘I want it all’ 데모 음원이 풀렸을 때만 해도 나는 그의 건강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헤비메탈과 심포니록이라는 신해철 음악의 궁극이 모두 담긴 이 싱글은 그러나 그의 생전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렸다. ‘미발표곡’이 얼마나 있을 진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의 입으로 직접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곡은 이 곡이 마지막이다. 마왕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

음악을 마법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지난 시간을 소환하고 떠난 사람을 되살리는 그 힘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신해철은 이제 마왕이 아닌 ‘마법사’로서 한국 대중의 기억에,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깊이 살아 숨 쉴 것임을 안다. 조용필과 전인권처럼, 우리와 함께 멋있게 나이 먹어갈 줄 알았던 90년대의 상징 같은 뮤지션. 그의 독설과 음악이 유난히 더 그리운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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