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조동진을 보내며
큰별이 졌다. 거인이 쓰러졌다. 위대한 싱어송라이터 조동진이 지난 28일 방광암에 끝내 이기지 못하고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향년 70세. 조동진은 오는 9월16일 한전아트센터에서 동생 조동희가 대표로 있는 푸른곰팡이 레이블 공연 무대에도 서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럴 수 없게 됐다. 지난해 가을, 무려 20년 만에 발표한 6집 ‘나무가 되어’는 결국 그의 유작이 되고 말았다. 고인을 둘러싸고 흐르던, 흘러가던, 흘러야만 했던 모든 것들이 멈추었다. 조동진이 떠났다.
언더그라운드의 대부, 한국의 밥 딜런 또는 고든 라이트풋. 그를 부르는 말들은 많지만 조동진은 영화감독 조긍하의 아들, 어떤날 조동익의 형이기 전에 그저 조동진일 뿐이었다. 자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조차 부끄러워 할 정도로 남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던 그의 소심함이 그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내었다. 말이 말을 낳아 말이 수다가 될 때 그것은 조동진의 세상과 동떨어지지만, 말이 말의 임무를 다하고 할 수 있는 말로서만 소멸할 때 그 말들은 비로소 조동진의 뜻이 되었다. 조동진의 개성과 유산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조동진의 음악은 우울하다. 그러면서도 낭만적이다. 우울이 낭만을 동반할 때 인간은 열반을 경험한다. 세련된 고독, 침묵 같은 가사. 그의 시는 무의미한 의미였다. 때론 말을 걸고 때론 질문하며 때론 사색했다. 조동진의 음악은 듣는 이들의 영혼에 깃들어 듣는 이들을 영원에 사무치게 했다. 무덤덤한 노래는 담담한 읊조림과 완벽한 쌍곡선을 그렸고, 그 가사 마냥 “이른 아침 밀려드는 젖은 안개처럼”(‘너의 노래는’에서) 조동진의 노래는 아픈 시대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신기루이자 오아시스가 되어 세대의 마음을 달랬다.
소리 디자이너 조동진을 기억하는 일 또한 소중하다. 소리에는 답이 없고 소리란 그저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그의 깊은 성찰은 소리를 향한 탐구자로서 그의 노력, 끈기를 보여준다. 분명 ‘긴긴 다리 위에 저녁해 걸릴 때면’의 아르페지오 기타 인트로는 1979년 대한민국에선 기적같은 사운드였다. 맑고 고운 그 소리는 아늑했다. 혹자의 표현처럼 그것은 “편안한 성가 같은 팝송”의 소리였다. 그렇게 조동진이 해와 별, 눈과 비, 바람과 노래, 꽃과 나무, 물과 눈물, 어둠과 그림자 사이에 음악을 심어나갈 수 있었던 건 결국 하나의 소리를 그 소리가 머물러야 할 곳에 떨굴 줄 아는, 편곡할 수 있었던 그의 능력 덕분이다. 그것은 시를 쓸 줄 알았던 그의 문학적 재능만큼 귀하고 중요한 자질이었다. 방랑하는 관조 아래 시와 소리가 만나 조동진의 음악은 만개했다.
심의에 걸려 ‘다시 부르는 노래’로 바뀌었지만 1968년 그가 처음 쓴 곡 이름은 ‘마지막 노래’였다. 그리고 그를 처음 세상에 알린 건 양희은이 부른 ‘작은 배’였다. 과연 작고 허무한 세상, 헛된 바람과 욕망을 자연의 지혜로 품어낸 그의 음악에 어울리는 제목들이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나무가 되었다. 고인의 영면에 깊이 고개를 숙인다.
눈물 없는 슬픔과 사랑 없는 열기만 가슴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