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중권이라는 이름을 안 건 <미학 오디세이>부터였고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 건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때문이었다. 이 책 <미학 스캔들>은 바로 저 두 책, 그러니까 '미학'을 주제로 '침을 뱉'는 논객 진중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데서 일단 매력적이다.
진중권이 이 책을 쓴 건 2016년 일어난 조영남의 이른바 '화투 그림 대작 사건' 때문이다. 조수를 두고 대작을 해 구매자를 농락했다는 이유로 조영남은 2017년 10월 1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는 항소심에서 다시 무죄 판결을 받았고 2020년 3월 현재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조영남 사건 자체보다 그 사건이 던진 의제 즉, 미술의 현대성과 예술에서 저자성 또는 저자성의 현대적 기준을 다루고 있다.
오랜만에 칼을 간 진중권의 날선 펜대는 저 두 의제를 잘못된 방향으로 여론화 시킨 미술계 전문가들과 그 전문가들의 생각을 생각없이 받아쓰기 한 언론, 그리고 법 규칙으로 예술의 규칙을 규정하려 드는 사법부 모두를 뭉뚱그려 겨냥한다.
진중권은 조영남의 사기죄 성립을 위해 소환된 대전제, 그러니까 고흐로 대표되는 19세기 인상파 시대부터 상식처럼 받들어진 '친작에의 집착'을 논파하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같은 르네상스 거장부터 렘브란트, 루벤스 같은 바로크 거장들까지 되불러 온다. 알려진 바로 다 빈치는 스승의 그림을 돕는 과정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미켈란젤로는 조수들의 압도적 도움으로 시스티나 예배당의 그 유명한 천장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렘브란트, 루벤스 역시 작업 과정에서 공공연히 조수를 부렸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현대미술의 규칙과 대중, 언론, 권력의 세 가지 오류'를 증명하기 위해 저자는 20세기 현대미술 100년사, 이를테면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 데이미언 허스트와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등 해당 분야 슈퍼스타들의 언급과 사례들까지 조목조목 들며 작가의 예술혼과 섬세한 붓터치만이 회화의 생명이라 주장하는 친작 숭배자들의 시대착오적 궤변에 찬물을 끼얹는다.
표면적으론 조영남의 편을 든 것 같지만 사실 진중권은 조영남과 조금의 친분도 없는 사이. 그런 진중권은 조영남을 향해서도 "미학적 나태, 윤리적 허영, 경제적 인색"이라는 비판의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20세기 개념미술의 개념과 규칙을 통째로 지워버린 자들의 무지에 맞선 미학자 진중권의 논리적 일갈이다. 그는 예술과 상업, 공방과 공장, 작품과 제품의 경계가 무너진 지 이미 오래인 지금도 친작(만)을 옹호하는 저들의 케케묵은 주장을 '미학적 쇄국정책'이라는 단 한마디로 정리했다.
밑줄_P.11
"지식인은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얘기가 아니라, 들어야 할 얘기를 해야 한다."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말이다. 조영남 사건은 황우석 사태, 심형래 사태에 이어 대중이 뿜어내는 거대한 집단적 에너지와 맞닥뜨린 세 번째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