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대 Mar 12. 2020

[음반리뷰] 두억시니, 오방신과 외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권요안, 두억시니, 신도시, 페이퍼 리버, 오방신과.


권요안 [The Breath Of Frederic Chopin]

세상엔 이미 너무 많은 쇼팽 앨범들이 있지만 피아니스트 권요안이 여기에 한 장을 더했다.

권요안은 미국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와 메네스 음대 및 대학원을 졸업, 피아니스트 앤 퀘펠렉(Anne Queffelec)을 사사하고 뉴욕 필하모닉,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시카고 심포니,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주요 멤버들과 독주, 앙상블 연주를 해왔다. 음악평론가 해리스 골드슈미스는 그를 가리켜 "섬세함과 깊은 음악성으로 청중들을 시종 집중하게 만드는 주목해야 할 피아니스트"라고 평했다.

기교 대신 악보 그대로를 지향한 "쇼팽의 의도와 소리를 담기 위한" 앨범이라고 권요안은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그래서 앨범 제목도 '프레데릭 쇼팽의 숨결'이다.

프로듀싱은 음악학자 장정윤이 했다. 장정윤은 이 작품을 만지며 "마치 옆에서 연주하고 있는 것 같은 실제적인 느낌을 있는 그대로 살"리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 느낌을 위해 권요안은 쇼팽의 살롱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오디오가이(Audioguy) 스튜디오에서 뵈젠도르퍼 피아노에 앉아 소나타 3번과 녹턴, 마주르카, 왈츠, 바르카롤 등을 연주했다.

앙드레 지드의 말처럼 넌지시 말을 건네고 유혹하고 설득하는, 그래서 "마치 이해심 많은 속 깊은 친구와도 같은" 쇼팽의 음악을 감상할 또 한 번의 기회다.


OBSG(오방신과) [오방神과]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12잡가 이수자' 이희문의 경기민요와 노선택(베이스) 밴드가 자아내는 레게가 만났다. 오방신과는 퀸의 'Under Pressure' 베이스 리프를 응용한 '사시랭이소리'를 남긴 씽씽(Ssing Ssing) 등 여러 프로젝트와 공연을 쉼없이 이어온 이희문이 KBS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출연하며 결성한 팀이다. 그 팀이 내놓은 앨범 [오방神과]는 '퓨전 국악'이라는 막연한 장르 개념과 '우리 것'이라는 선명한 정서 환기를 근저에 깔고 트로트 내지 뽕짝으로 흔히 수렴되는 이 땅의 '성인가요' 느낌을 듬뿍 머금었다. 그것은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이나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레게 퓨전이면서, 한편으론 '어랑브루지' 같은 곡이 들려주듯 자메이카와 한국산 음악이 이토록 끈끈히 엮일 수 있음도 증명하는 장르의 틈바구니다. 특히나 '타령'의 훵크 그루브, '긴 난봉'의 색소폰 솔로, '개소리말아라'의 마지막 기타 솔로는 흘려 들을 수 없다. "고통과 번뇌의 사바세계로부터 탈출" 시켜줄 음악의 "오방신(五方神)".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이희문이 출연할 수 있었던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신기하고 독특하고 흥미롭기 이전에, 일단 음악이 좋았기 때문이다.


페이퍼 리버 [why why]

송라이터 신가람(기타)이 이끌고 22살 정한슬이 기타 치며 노래 부른다. 'River Or Wind' 같은 곡에서 두드러지듯 맑은 건반음을 무심코 떨구는 키보디스트 김은영, 그리고 25살 트럼페터 유희원이 있다. 페이퍼 리버의 음악은 편곡의 승리다. 그 중심엔 트럼펫과 건반이 있다. 신가람의 표현대로라면 유희원은 "작은 새 같은" 인물인데, 여린 감수성을 피워내는 그 성품이 연주에서 그대로 느껴진다. 인위보단 자연, 상처 아닌 치유에 방점을 찍은 그 음악은 엄마의 마음에 가까운, "삶의 가장 조용하고 평화로운 부분"과 같다. 굳이 어떤 느낌을 강요하지 않는 청취의 민주성, 음표들은 그저 흘러 흘러 듣는 이의 두 귀에 닿는 자체에 목적을 둔다. 투명한 포크의 여백, 미니멀리즘의 여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챙겨야 할 팀, 음반이다.


신도시 [독실한 사람]

헨리 밀러의 소설 제목('북회귀선')부터 눈에 띄어서일까. "공허가 석양에 뉘엿뉘엿, 기억은 목구멍에 울컥 쏟아져" 또는 "내게서 내일을 지불하라고 하네"라는 가사가 이채롭다. 2010년대 중반에 정규작 두 장을 선보인 마치킹스(The March Kings)의 송재돈(베이스)과 드러머 정성훈, 여기에 2015년부터 싱글만 발매해온 기타리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흐림(백준우)이 '신도시'라는 이름 아래 뭉쳤다. 분노와 좌절, 외로움이 주제인 앨범이 달려가는 곳이 (포스트)펑크인 것은 어떤 필연일 터. 동경의 설렘이 담긴 '신도시'와 그 설렘이 좌절로 추락하는 '나성(羅城) 모텔'의 강렬함도 물론 좋지만, 나는 백준우의 기타 솔로가 번뜩이는 '독실한 사람'과 긁어내리는 기타 리프 위에 송재돈의 베이스 라인이 야물게 맞물리는 '마닐라'의 순간에 좀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마치킹스와 흐림의 시너지는 그야말로 음악의 '신도시'를 일구어 냈다.


두억시니 [Sins Of Society]

밴드 이름이 '모질고 사나운 귀신(두억시니)'이다. 이들은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꽃 피웠던 올드스쿨 스래쉬 메탈을 들려주는 팀으로, 사회 악과 부조리를 혐오하던 개인이 결국 다를 바 없이 타락하게 된다는 내용을 담은 'Sin Of Society' 후반부에서 메가데스 냄새를 살짝 풍기기도 하지만 두억시니가 지향하는 쪽은 빅포(Big4)의 진지함보단 크리에이터나 소돔의 잔인함 쪽에 더 가깝다. 첫 번째 미니앨범으로 '사회의 악'을 파헤치겠다고 나선 이들 연주는 예사롭지 않다. '사람의 머리를 터뜨려 죽이는 귀신'이라는 뜻도 가진 팀 이름에 걸맞게 멤버들의 합주는 파괴감과 속도감이라는 해당 장르의 미덕을 뼛속까지 발라낸다. 특히 32초짜리 끝곡 'Oro Y Oro'에서 헬씨(드럼)의 블래스트 비트는 나일(Nile)의 조지 콜리아스 못지 않은 극단의 그루브를 뿜어낸다. 베이스를 잡고 피를 토하는 리슌, 박진감 넘치는 리프와 릭(Lick)으로 기타 전쟁을 벌이는 재구와 성원 더 디스트로이어의 호흡도 주목하라. 이 거칠고 섬세한 "아날로그 질감"은 분명 올해 중순 밴드가 진출한다는 남미에서도 "모질고 사납게" 재현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채화 같은 음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