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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r 31. 2020

악기만 봐도 음악이 보인다?!

* 이 글은 14년 전 모 매체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얼마전 웹에서 우연히 발견,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간결하고 기분 좋은 사운드를 들려주는 록 밴드 더 프레지던츠 오브 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USA)의 프론트맨 크리스 밸류(보컬/베이스)는 기타 바디에 굵은 베이스 줄 두 가닥만 연결해 썼다. 이는 세 줄 짜리 기타를 연주한 팀 동료 데이브 데더러(기타)도 마찬가지로, 둘은 자신들의 악기를 각각 'Basitar'와 'Guitbass'로 불렀다. 크리스는 한때 자신과 듀오로 활동한 밴드 몰핀(Morphine)의 마크 샌드맨이 두 줄 슬라이드 베이스를 연주하는 걸 보고 힌트를 얻어 자신의 'Basitar'를 만들었다. 이처럼 기준에서 벗어난 인위적 악기 조작은 밴드의 단순한 사운드 특성은 물론 평소 햄버거 가게, 달리는 트럭 위, 볼링 클럽, 마을 선착장, 대도시 공원 같은 독특한 장소에서 공연한 PUSA의 기행에까지 부합했다.


채프맨 스틱을 연주하고 있는 존 명(왼쪽)과 토니 레빈.



베이시스트 존 명은 데뷔 때부터 드림 씨어터의 역작으로 통하는 [Images And Words]까지 줄곧 4현 베이스를 쓰다, 당시 세계 투어를 돌며 토비아스(Tobias) 6현 베이스로 바꿨다. 그리고 [Awake] 앨범부터 토비아스사 소속 현악기 디자이너 니콜라스 텅이 제작한 'Tung Basses'를 사용한 그는 97년작 [Falling Into Infinity] 때부터 야마하 'RBX' 시리즈를 썼다. 존 명은 바로 이 앨범 [Falling Into Infinity]의 오프닝 곡 'New Millenium'에서 '채프맨 스틱'이라는 색다른 악기를 연주한 바 있는데, 이것은 70년대 뉴에이지 연주자 에멧 채프맨이 태핑 연주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그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채프맨 스틱은 퓨전 베이시스트 토니 레빈도 즐겨 연주한 악기다.




키스(Kiss)의 베이시스트 진 시몬즈는 일명 '도끼 베이스'라 불리는 독특한 바디를 선보였다. 처음 이 악기는 단순히 프로모션 사진을 찍기 위해 쓴 것인데, 세월이 흘러 밴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도끼 베이스와 진 시몬즈의 이미지는 어느덧 하나가 돼 버렸다. 이 살벌한 베이스를 디자인한 사람은 존 레논, 앨리스 쿠퍼, 에디 밴 헤일런의 악기를 제작한 스티브 카의 작품으로 그의 악기 제작 철학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이었다고 한다. 진 시몬즈와 도끼 베이스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부담스러운 북과 심벌 수. 하지만 그 안에 앉아 한 치 오차 없이 스틱을 휘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돈 도켄, 리차드 막스, 허비 행콕 등과 작업한 퓨전 드러머 테리 바지오다. 그가 이런 전무후무 드럼 셋을 갖춘 것에는 프랭크 자파란 인물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는데, 함께 밴드 생활을 하면서 봐온 자파의 음악 열정이 테리 안에 있던 도전 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테리는 화려한 드럼 킷에 걸맞게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따로 정의한 바 있으니 바로 '오케스트라 드러밍'이다.




괴물 캐릭터 '에일리언'을 디자인한 H.R. 기거의 광팬이었던 조나단 데이비스는 자신의 마이크 스탠드 디자인을 아무 의심 없이 그에게 맡겼다. 언제부턴가 그림 그리기를 접고 조각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기거 역시 콘(Korn)이라는 밴드 이름을 듣고 프론트맨을 위해 마이크 스탠드를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미리 다양한 밑그림을 그려본 뒤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 본 조나단의 퍼포먼스를 통해 "이거다!" 영감을 얻은 기거는 결국 '생물 역학적이고 에로틱한 마이크 스탠드'를 원했던 조나단의 개인 취향도 존중해 콘이라는 밴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은빛 마이크 스탠드를 만들어 냈다.




90년대 초 헤비메탈 밴드 백두산의 드러머로 활약했던 최소리는 97년작 '두들림'을 계기로 단순 드럼에만 머물지 않는 전천후 타악 주자가 된다. 깍지마다 북채를 쥐고 발바닥까지 동원해 기인에 가까운 몸짓과 자연에 가까운 소리를 동시에 보여주고 들려준 그는, 동물 가죽으로 만든 북을 혐오해 직접 종이를 겹쳐 만든 북을 썼다. 최소리는 2004년 방영된 SBS 대하드라마 '장길산'의 음악 감독으로 맹활약하기도 했다.




베이시스트 부치 콜린스는 제임스 브라운, 조지 클린턴의 밴드 '팔리아멘트 훵카델릭(Parliament Funkadelic)' 세션맨을 하며 명성을 얻었다. 평소 이런 저런 콘셉트로 스스로를 캐릭터화 하는데 힘을 쏟기로 유명한 그는 1998년도부터 모양도 이름도 독특한 '스타 베이스'를 메인 악기로 쓰며 자신의 취향을 직접 표현 했다. 부치 콜린스는 드라이브감과 리듬감을 겸비한 연주에 훵크와 헤비메틀에까지 영향을 미친 인상적인 베이스 톤으로 199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는 '기타 리리시즘(Lyricism-서정주의)'이라는 독특한 연주 철학을 선보이며 재즈 기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다. 저기 그가 잡고 있는 기타는 팻에게 그래미상을 안겨준 앨범 [Offramp]에서 사용한 깁슨 '신시사이저' 기타로, 앨범 전체를 물들인 그 많던 소리와 음들이 꼼꼼히 숨어 있었던 곳이다.


이처럼 뮤지션이 사용하는 악기란 단순한 연주 수단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보는 이들 뇌리에 뮤지션의 모습을 아로새기는 퍼포먼스 측면에서도 큰 의미를 가지며, 때론 듣는 이들이 해당 뮤지션의 음악 특성을 짐작할 수 있게도 도와주는 것이다. 2대, 3대로도 모자라 기타 4대를 통째로 연주하는 안젤로 바티오 같은 사람을 보라. 우린 안젤로의 기타만 보고도 그 연주에서 얼마나 풍부한 음들이 얼만큼 빠른 속주를 타고 쏟아져 나올지 너무도 쉽게 알아채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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