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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대 May 09. 2020

무의미라는 의미를 담은 소리의 탐색

조동익 [푸른 베개]


새벽 4시. 창 밖엔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서글프지만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는 더없이 맑다. 자연의 소리다. 이내 무의미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인의 소리 탐색에 저 빗소리는 침착하게 동조한다. 잘디 잔 음의 입자들, 지친 멜로디의 안개가 이 방 안을 온통 채우는 동안 바깥의 비는 그렇게 천천히 새벽 거리 위에 꾸역꾸역 몸을 던진다.


자유롭다. 단순하다. 가볍게 들뜨거나 느리게 가라앉는다. 그런 이 무중력의 음악엔 경계가 없다. 트랙을 나눈 것은 속세의 규칙에 잠시 내어준 빈틈일 뿐, 이 작품은 경계를 짓지 않아야만 비로소 숨을 쉴 수 있는 몸통의 음악, 덩이진 서사다. 우울한 디지털 소리바다, 그 위에 떨구는 피아노와 현악의 한적한 중첩이 이 어둡고 서늘한 세계를 겨우 지탱해낸다.


한국에서 가장 시린 음색을 가진 장필순(soony)의 프로듀서는 이번엔 자신의 음반에 장필순을 초대했다. 초대하고 초대받는 일이 같은 의미를 갖는 두 사람의 호흡은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음악의 피안(彼岸)을 만들어낸다. 그 사이 조동익은 먼저 간 작은형과 작은형수를 긴 산문으로 추억한 뒤 본인은 사운드의 구덩이를 파고 밑으로 끝으로 한없이 사라진다. 가늠할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의 저 아득한 감성은 마치 브라이언 이노와 시규어 로스라는 사공이 라디오헤드라는 노를 저어 핑크 플로이드라는 우주에 닿은 듯 처연하다.  



나의 희망과 나의 열정이 / 소금처럼 녹아 내리도록 / 나의 상처와 나의 분노가 / 소금처럼 녹아 내리도록 / 저기 푸르고 창백한 그곳 / 소금처럼 녹아 내리도록

‘날개 II’ 중에서


26년. “영원하리라 착각”한 젊음이란 결국 “사라지고 나서야 돌아보게 되는 것”이란 걸 깨닫는 데 무려 26년이 걸렸다. 아, 우린 과연 무엇을 찾아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쉬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 왔을까. 끊임없이 적대하고 연대하는 이 시대 어른들을 위한 자장가(Lullaby) 같은 1시간 18분의 음악이, 하지만 어차피 그 모든 건 신기루일 뿐이라고 말하는 조동익의 2집이 이 밤, 이 방을 집어삼킬 듯 흐르고 또 흐른다.


아직 창 밖엔 사연을 접지 못한 봄비가, 가는 새벽이 아쉬워 이미 젖은 대지를 더욱 적시며 울어댄다. 그리고 나는 다시 ‘바람의 노래’로 돌아가 지친 머리를 ‘푸른 베개’ 위에 뉘었다.


음악으로 꿈을 꾼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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