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웅 [IM HErO]
싱글과 정규 앨범은 개념을 넘어 느낌에서도 다르다. 한 곡으로 승부하는 싱글 시대에 10개 안팎 곡들로 채운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시대착오적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걸 내는 당사자에게 정규작은 각별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한 곡을 대하는 것과 한 앨범을 끝낸다는 건 물리적으로도 마음가짐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것이 데뷔작이라면 차이는 배가 될 확률이 높다. 같은 첫발이어도 좀 더 무게감 있는 첫발이랄까. 봉준호의 단편영화 '지리멸렬'과 장편영화 '기생충'이 던지는 무게감이 다르듯 말이다.
임영웅의 첫 앨범이다. 임영웅이 누군가. 가요계는 물론 연예계 일반, 나아가 광고계 전반에서도 블루칩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의 인기는 어디에서 비롯됐고 또 전성기는 언제까지 갈 것인지, 이제는 가늠조차 힘들어져 그의 이름 석자는 어느새 탄탄대로 위에 있고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지금은 무얼 해도 어떤 걸 내놓아도 임영웅의 것이라면 통하는 시기인 것이다. 타이밍이 목숨처럼 중요한 정규 데뷔작 발매를 위해 이만큼 완벽한 상황은 또 없을 터. 임영웅은 그렇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12곡을 양손에 들고 최근 가수로서 큰 걸음을 뗐다.
맞다. 임영웅은 가수다. 그는 자신의 곡을 직접 쓰지는 않는,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노래를 자기 식으로 해석해 부르는 가수일 뿐이다. 누군가에겐 심금을 울리는 트로트 가수로, 누군가에겐 가슴 저미는 발라디어로 임영웅은 각인돼 있다. 그런 임영웅의 앨범에서 프로듀싱과 편곡은 때문에 중요하다. 노래의 방향, 곡의 구성, 동원할 악기(연주자)와 장비에 관한 전문가들의 판단이 임영웅의 목소리를 판단해낸다. 그리고 마지막 빚어진 목소리, 음악에 대한 판단은 당연히 대중의 몫이다. 그 대중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앨범 'I'm Hero'에 초대된 작사/작곡/편곡가 및 엔지니어는 무려 30명 이상. 임영웅과 소속사는 이 앨범이 향후 가수로서 그의 미래에 얼만큼 중요한 것인지를 단순 수치로써도 확인케 한다.
1집의 타이틀 트랙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다. 23년 전 긱스(Gigs)라는 팀에서 함께 활약한 이적과 정재일이 참여한 곡이다. 이적은 이 노래의 가사와 멜로디를 썼고(멜로디와 창법이 실제 이적을 연상시킨다) 정재일은 자신의 장기인 스트링 편곡을 맡았다. 나머지 편곡은 5년 전 임헌일, 김준호와 아이엠낫(iamnot)이라는 팀 멤버로 활동한 양시온이 맡았다. 임영웅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피워낼 줄 아는 저들의 참여가 돋보이는 이 곡을 타이틀 트랙으로 한 데서 음악을 대하는 자신의 진지한 태도를 에둘러 주장한다. 팬덤에만 기대 쉽게 쉽게 가는 그런 가수가 아니라는 걸 그는 머릿곡의 크레디트에서부터 강조하는 것이다. 그는 또 한편에선 화제의 드라마와 연계한 발라드 '우리들의 블루스'를 비롯, 힙합 레이블 아메바컬처를 통해 이름을 알린 공(gong)과 엑소의 '으르렁' 프로듀서인 신혁이 설립한 153줌바스뮤직그룹 소속 작곡가 박지수(싱어송라이터 니브(NIve)의 본명)의 곡들을 배치해 지금 대중음악계를 관통하는 스타일도 등한히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고수들의 손맛과 매끈한 사운드 디자인에 따른 권위와 트렌드를 함께 노린 셈이다.
희망과 위로, 사랑과 이별의 정서로 자욱한 임영웅의 첫 앨범이 지닌 특징이라면 역시 '다양한 장르'다. 장르란 보통 시대와 세대를 구분 짓는 잣대로 거론되게 마련이라 여기서 다양한 장르란 결국 다양한 세대를 어우르겠다는 음반의 목적을 암시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가령 "뮤지션과 같은 목표를 갖고 함께 호흡하며 공감하는 엔지니어 및 프로듀서"를 추구하는 김시온의 '무지개'가 들려주는 어쿠스틱 팝 사운드와 레게 비트 위에서 보코더를 장착한 임영웅의 심상치 않은 랩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아비앙또(a bientot)'는 10대와 20대를 겨냥하고 있고, 편곡 뉘앙스에서 윤종신의 '환생'과 플래터스(The Platters)의 'Only You'가 함께 떠오르는 '손이 참 곱던 그대'는 30~40대 감성을 노리고 있다.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라는 임영웅의 중요한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사랑역'과 '보금자리', '사랑해요 그대를'은 물론 그 이상의 세대(어쩌면 지금의 임영웅을 있게 한 세대)에게 90도 허리로 전하는 감사 인사겠다. 그 감사의 마음은 완전한 장르 구분을 지양한 '아버지'와 '사랑해 진짜', '인생찬가' 같은 트랙들로도 번져 이후 가장 오래 유지될 법한 임영웅 노래 세계의 기준을 넌지시 보여준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건 임영웅 스스로에게 각별할 작품이다. 임영웅 1집은 임영웅이 밝힌 가수 임영웅의 음악적 방향이다. 일단 그는 앞으로 트로트와 발라드만 부를 생각이 없다는 걸 장르의 문을 열어 확인시켰다. 그러면서 동시에 앨범 단위 구성과 제작을 경험했으니 2집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잘 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됐을 일이다. 즉 데뷔 앨범을 "나는 영웅"이라는 자신감 어린 타이틀로 치렀으니 다음 앨범은 "영웅의 음악은 이런 것"이라는 예술적 자존감으로 치러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얘기다. 팬덤을 등에 업은 100만장 판매, 100만뷰 시청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래 가기 위해 임영웅은 더 먼 곳을 봐야 한다.
*이 글은 '마이데일리'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