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어느 정도 경력을 쌓은 그룹(밴드)에서 멤버 개인이 솔로 앨범을 낸다고 하면, 실력이 되고 장사도 되는 해당 멤버의 음악 인생 제2막을 연다는 의미 내지는 팀과 별도로 본인이 이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음악을 건드려보는 사이드 프로젝트 성격이 강했다. 아이돌 그룹으로 범위를 좁힐 경우, 이제 멤버들이 솔로 앨범을 낸다는 건 마치 어떤 모임의 첫 만남에서 자기소개 차례를 기다리는 것과 비슷해졌다. 아티스트로서 필요에 따른 선택이 아닌, 스타로서 요구에 따른 의무가 된 것이다. 그렇게 관례처럼 되어버린 이 관문의 의미 만큼은 그럼에도 과거와 별반 다르진 않다. 이들이 내놓는 결과물들은 여전히 그룹이 와해됐을 때 멤버 혼자서라도 계속 음악을 해나가기 위한 명분, 또는 그룹을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해볼 수 있는 기회로서의 솔로 앨범이다.
그런 면에서 성진의 솔로 데뷔작은 둘 다를 노린 느낌을 준다. 언제가 될지 모를 음악가로서의 제2막을 준비하는 듯도 한 동시에, 자기 취향을 드러내 보이는 음악 놀이터처럼도 보인다. 알려진 대로 그의 이번 작업이 데이식스 내 ‘솔로 앨범의 피날레’라곤 하지만, 사실 송희진과 함께 한 도운의 ‘문득’은 앨범이 아닌 싱글이었다. 정성과 노력, 물리적인 분량에서 싱글과 풀렝스 앨범을 비교하긴 힘들다. 자연스레 성진의 작품과 비교 대상은 Young K, 원필의 솔로 앨범들 쪽으로 향한다. 지난해 ‘Letters with notes’라는 솔로 1집을 낸 Young K는 모던록과 팝록의 활기로 작품을 가득 채웠었고, 원필은 알앤비와 팝의 온기로 그보다 한해 전 나온 솔로작 ‘Pilmography’를 섬세하게 꾸몄었다. 성진은 이 중 분위기는 원필의 것에 가깝게, 장르는 Young K와 공유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 보인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보편적인 상황과 감정을 다룬 앨범 ‘30’은 록 문법을 기반으로 한 온기 넘치는 팝 앨범이라는 얘기다.
또 하나 세 사람의 앨범들에서 눈에 띄는 건 모두 밴드에서 자신들이 다뤘던 악기를 잠시 미뤄놓고 작사, 작곡, 노래에만 집중하고 있는 점이다. 그나마 Young K는 악기를 잡았는데, 그마저도 베이스가 아닌 기타였다. 이는 데이식스가 연주하는 밴드이기 전에 노래하는 보컬 그룹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환기시켜주는 부분이다. 그들은 연주자이면서 가수, 그것도 자신들이 부를 시와 멜로디를 직접 써낼 줄 아는 싱어송라이터인 것이다.
‘나무는 결국 겨울을 견뎌낼 거야’ 같은 트랙이 들려주듯 성진은 멜로디와 가사의 감성이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언젠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것은 한 노래 안에서 감정이 흐트러지지 않길 바란다는 얘기였다. ‘걸작’을 만들고 싶은 성진의 아티스트로서 욕심으로 완성까지 두 달 가까이를 매달렸다는 ‘I Don’t Wanna Lose’도(그의 고음 탁성은 일면 김민종을 떠올리게 한다), 팬들(마이 데이)과의 시간을 돌아본 팬송 ‘Wednesday Night’도 모두 데이식스 리더의 그 창작 지론을 차분히 따르고 있다.
“모든 순간을 노래하는 밴드”는 데이식스를 대변하는 말이다. 성진은 이를 조금 비틀어 자신의 ‘모든 감정을 노래’하기 위해 이번 솔로 앨범을 발매한 듯 보인다. 근래 ‘예뻤어’와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가 동시에 역주행 했을 때 그가 말했던 ‘진심’이 새 앨범, 특히 ‘EASY’와 이어지는 ‘You Wake Me Up’ 같은 트랙에서도 유효한 듯 들리는 건 그래서다. 성적(차트)에 연연하지 않고 음악에 진심을 계속 담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는 알아주리라는 예감, 희망의 볕은 이처럼 데이식스를 넘어 성진의 음악에까지도 드리우고 있다.
“영원한 시간은 원형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우주와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된다.”
성진은 철학자 니체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영원회귀(永遠回歸)를 앨범 설명 머리맡에 첨부해두었다. 하지만 니체의 영원회귀에서 반복은 저 문장의 뉘앙스처럼 아름답고 좋은 것만의 반복을 뜻하지 않는다. 그 안에선 고통과 절망도 반복된다. 그런 행복과 불행의 교차가 한 치 오차도 없이 펼쳐지는 삶을 끊임없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영원회귀의 본질이다. 이는 한편으로 끔찍한 일일 수도 있다. 물론 모던한 록발라드 ‘Check Pattern’ 같은 노래가 말하려는 건 그런 게 아니다. 그가 인용한 영원회귀는 ‘영원’이라는 단어가 품은 낭만성에만 집중한다. 사랑했던 사람, 아련한 추억, 다시 만나리란 기대. 마지막 곡 ‘Memories’가 그 가슴 벅찬 철학의 낭만을 여백 깊은 사운드 위에 조용히 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