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2024 해가 가기 전 들어봐야 할 명곡들
또 한 해가 멀어져 간다. 누군가에겐 길고 느렸을, 다른 누군가에겐 순식간에 흘러갔을 1년. 2024년에도 변함없이 많은 음악들이 저마다 자태를 뽐냈다. 로제의 ‘APT.’가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켰고, 황가람이 부른 ‘나는 반딧불’이 일상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더 기억할 만한 곡들은 없을까. 하여 건조한 연례행위처럼 느껴져도 막상 정리하지 않으면 찜찜한 연말결산을 글쓴이 나름으로 해보았다. 대상은 국내외 노래 다섯 곡씩이다. 개중엔 유명한 곡도 있고 대중에게 거의 다가서지 못한 곡도 있다. 부디 이 글을 통해 이 곡들이 더 많은 사람들의 귀에서 짐을 풀 수 있다면 좋겠다.
‘뛰는 심장’ 검은잎들
조동익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가요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모를 리 없는 큰 이름이다. 그 이름은 인디 록 밴드 검은잎들의 2024년 앨범 ‘비행실’에서 프로듀서, 편곡, 신스 프로그래밍, 앰비언스에 두루 걸쳐 있다. 음악의 스타일을 결정짓는 자리에 그가 있어서일까. 곡은 마치 조동익의 곡처럼 들린다. 이건 칭찬이다. 깨끗하고 뭉클하며 하염없는 음향의 벌판에서 저들이 스미스(The Smiths)를 성공적으로 내려놓은 것에 대한.
‘WILLOW WEEP FOR ME’ 김주환
13년 동안 해외 스탠더드들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재해석해온 재즈 보컬리스트 김주환이 불렀다. 20세기 초 작곡가 앤 로넬이 대학 교내에 있던 버드나무에 영감을 얻어 쓴 이 곡은 피아노와 보컬이라는 단출한 구성으로 노래의 핵심만 건드리며 재즈의 매력을 요약, 설파한다. 김주환은 이렇게 같은 편성으로 한 곡 두 곡 모아 올해 정규작 ‘AFTER MIDNIGHT’까지 발표했다. 사실 이 노래 소개는 저 앨범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Supernova’ 에스파
명곡과 명반은 스킵을 허락 않는다. 시작부터 압도해 끝까지 한눈팔지 않게 하는 것이다. 벨트를 매는 곧장 해방감으로 돌진하는 롤러코스터의 역설적 긴장이 이 곡에는 있다. 다시 들어도 혀를 내두르게 하는, 단연 올해의 케이팝 노래다.
‘Small girl feat. 도경수 (D.O.)’ 이영지
작은 여자에 대한 큰 여자의 판타지. 사회의 일방적인 기준과 시선에 콤플렉스를 겪어온 많은 이들에게 이 노래는 그대로 위안이 돼주었다. 창법과 작법 등 장르에선 전혀 공통점이 없지만 나에겐 이 노래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You belong with me’의 변주처럼 들렸다.
‘그대 내맘에 들어왔어’ KiO장기호
기본적으로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는 서양 팝을 좇은 역사였다. 신중현, 패티김은 말할 것도 없고 신해철과 이승환은 물론, 아프리카 밤바타의 소스를 응용한 ‘Supernova’의 에스파를 포함하는 케이팝에까지 그 전제는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 세련된 재즈 팝 역시 그 전제를 전제로 한다. 스스로가 국내 거장 반열에 오른 싱어송라이터 겸 베이시스트 장기호(KiO)가 세계 거장인 스티비 원더의 “비범한 음감과 반음계적 기법”에 바친 고백이요 찬사다.
'Dilemma' 그린 데이
현세대가 기성세대 남성을 부를 때 쓰는 ‘아재’라는 말에는 은근한 무시와 조롱이 담겨 있다. 이 말은 급기야 단어 스스로 비약해 아재들의 취향까지 촌스럽고 구태의연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곤 한다. ‘아재들의 록 밴드’ 그린 데이는 2024년에 1994년 같은 에너지를 지닌 이 곡을 내놓으며 그 왜곡된 세대적 편견에 반기를 들었다. 여기서 아재는 연륜의 다른 말이 된다.
'Birds of a Feather' 빌리 아일리시
빌리 아일리시처럼 데뷔 앨범으로 대박을 낸 뮤지션에게 세 번째 앨범은 중요하다. 두 번째 앨범은 첫 번째 앨범의 여파를 살려나가야 하는 부담과 씨름했던 순간이라면, 세 번째 작품은 자신이 앞으로도 롱런할 음악가임을 증명해야 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Birds of a Feather’는 그 롱런이 이뤄질 것임을 예견하는 곡으로, 3집 ‘Hit Me Hard and Soft’의 두 번째 후공개 싱글이다. 빌리가 싱글을 ‘후’공개 한 이유는 업계 관행 때문에 맥락 없이 싱글을 선공개하는 일이 싫어서였다고 한다.
'Tough' 라나 델 레이, 퀘이보
오후의 햇살을 닮은 라나 델 레이의 나른한 목소리가 래퍼 퀘이보의 일렁이는 오토튠과 만났다. 혹자의 평가대로 이 노래엔 “약간의 컨트리, 약간의 트랩과 얼터너티브 팝이 가미”돼 있다. 델 레이는 싱글 발매 당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내가 아는 가장 터프한 래퍼와 함께한 신곡이 나왔다”라고 썼다. ‘터프한 래퍼’ 퀘이보는 그 신곡을 “여름의 노래”라고 불렀다. ‘Tough’는 퀘이보의 말대로 2024년 여름을 마음껏 빛냈다.
'Pink Skies' 자크 브라이언
죽은 자의 ‘아름다운 장례식’과 산 자들의 ‘젊은 피’에 바치는 벅찬 스토리텔링의 승리. 빌보드는 엄연히 미국의 것이라, 한국에선 유독 인기가 없는 컨트리 노래임에도 컨트리라면 사족을 못 쓰는 그곳에선 빌보드 상위권에 우뚝 섰다. 국경과 장르를 떠나, 일단 노래 자체가 너무 좋지 않은가.
'Sexy to Someone' 클레어오
2024년에 가장 인상 깊게 들은 해외 앨범은 클레어오의 세 번째 작품 ‘Charm’이었다. 록과 재즈, 솔(soul)과 포크를 자유롭게 비벼내는 장르 스펙트럼은 앨범 제목을 왜 ‘매력’으로 붙였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이 노래 ‘Sexy to Someone’은 올해 스물여섯 살이 된 클레어오 자신의 소소한 또래 감성을 스타일리시하게 풀어낸 곡으로, 무릇 훌륭한 예술이란 힘을 빼고 기본에 충실한 것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들려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