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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Jan 31. 2023

비싸지만 예쁘니까 괜찮아

아스티에 드 빌라트

가만히 있어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다른 제품과 함께 있어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 만든 덕에 똑같은 모양이 없고 누군가 사용했던 것 같은 느낌도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바라보는 이에게 매력을 주기도 한다.

디자인만 봐선 최소 백 년도 넘은 브랜드 같지만 고작 26년밖에 되지 않은 브랜드라는 점. 어떻게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이렇게 짧은 기간에 명품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



오래되고 낡은 것을 사랑하는 창립자

이반 페리콜리(좌)와 베누아 아스티에 드 필라트(우) ⓒ노블레스

이반 페리콜리와 베누아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1990년대 초반, 프랑스의 예술 학교인 파리 에꼴 데 보자르 예술 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한참 설치 미술과 디지털 아트가 주목받던 당시 분위기에서 유독 두 사람만이 전통적인 구상 회화를 그리고 싶어 했다. 미학적 열망을 공유하던 두 사람이 설립한 브랜드가 아스티에 드 빌라트이다. 두 사람은 지금도 종종 파리의 생투앙 벼룩시장을 찾고 헤리티지가 강하게 느껴지는 과거의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


생투앙 시장 ⓒO'Bon Paris

브랜드 명 : 아스티에 트 빌라트

두 명의 창립자 중 베누아의 성을 그대로 땄다.

독특하게 아스티에 드 빌라트라는 성은 베누아의 '어머니 성'이다. 베누아가 다니는 예술학교 교수로 부임 중인 아버지는 베누아와의 부자 관계를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예술학교 시절부터 어머니의 성을 쓰게 된다.

그런데 왜 이반의 이름은 넣지 않았을까? 이반 페리콜리는 맨 처음 베누아의 형이 설립한 가구회사 '하랄드 앤 빌라트'에서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회사가 오래가지 못하고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나는데, 기존 회사 이름과 비슷하게 짓다 보니 '아스티에 드 빌라트'가 되었다. 베누아는 정작 나중에 합류한다.


가구로 시작한 브랜드

가구회사로 시작한 브랜드지만, 가구와 함께 만든 세라믹 제품이 주목받으며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제품은 점점 확장된다. 세라믹에 뿌리를 두었으나 그 범위는 향과 출판, 문구까지 확장되고 있다.


두드러진 특징

1) 티베트 출신의 장인

공방에서 일하는 상당수 장인은 티베트 승려 출신이다. 티베트어를 배우고 불교문화에 심취한 이반의 영향이 컸다. 완벽하게 가공된 것보다는 '자연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일일이 손으로 빚고 살아 숨 쉬는 흙의 재질을 살린 도자기야말로 이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모습에 가깝다.

선천적으로 손기술이 좋고 온화한 티베트 사람들이 보름에 걸쳐 제품 생산의 전 과정을 끝까지 완성하면 제품 하단에 장인의 이름이 새겨진다.


2) 검은흙을 사용한 18세기 공법

대부분 세라믹 브랜드는 롤링 기계를 이용해 만든 점토를 사용하지만, 아스티에 드 빌라트 장인들은 손수 진흙을 빚는다. 밀대로 밀어 만든 점토는 거친 매력과 더불어 살아 숨 쉬는 흙의 재질이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재료 또한 센강과 가까운 채석장에서 공급받는다. 테르누아라고 불리는 검은흙인데, 이를 지하에서 채수한 샘물과 반죽한다. 무성한 소문과 달리 화산재가 섞인 흙은 아니다.


3) 오직 아름다움

흙빛의 테르누아 위에 우윳빛 에마유를 입혀 살짝살짝 흙빛이 비치는 시그너처 스타일은 마치 18세기 프랑스 어느 시골집에서 사용했을 것 같은 빈티지함과 고급스러움, 섬세한 디테일의 매력을 모두 담았다.

두 창립자가 장인에게 주문한 점은 단 하나 "아름다운 오브제로 제품을 완성하라"는 것이다. 일정의 압박도 없고, 수량의 압박도 없으며, 반질반질한 세련된 디자인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오히려 흙의 거친 느낌을 활용해 투박하게 마무리하는- 자연에 가까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효율성을 우선시하는 시대에 7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소수 장인이 전 세계 물량을 책임지는 시스템.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단 하나,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비싼데 약하다는 비난에도 디자인을 바꾸지 않는다. 약하다는 게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그건 기능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이고,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얇게 빚었을 때 보이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브랜드이니 '미적 기능'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 이들의 지론이다.



Writer's Note

컵 한두 개만 사려고 해도 3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후들후들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없어서 못 사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는 어린 왕자 속 장미처럼 고고하다.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예뻐서 용서할 수 있는' 브랜드다. 오죽하면 설거지하다가 컵이 깨졌는데 '컵을 조신히 다루지 못한 내 탓'으로 단점을 커버할 정도다.


최수경의 유튜브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제품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걸 사도 될까?' 고민하며 샀지만, 힘든 순간 아름다운 컵과 커피 하나로 위안을 받았다는 모습을 보면 모든 소비가 꼭 기능적일 필요는 없단 생각도 든다. 이렇게 '가성비', '성능' '가격'만 따지다가는 삶의 낭만을 잃을 수밖에..

그래서 '삶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만큼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길을 응원하고만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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