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연애에서 나는 ‘싸운 적이 없음’을 자랑으로 여겨왔다. 3개월 넘게 만난 남자친구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보니 그렇게 치고받고 싸울 일이 없었고(잘 헤어지는 사람은 아니고, 전체 연애 횟수가 적다), 애초에 화내는 게 익숙지도 않았다. 서운함이 마음 속에 쌓이다가 그 서운함이 커지면 이별을 통보하는 식이었다.
남편과도 그랬다. “좀 참다가 아니면, 이별”이란 마음으로 연애한 거 같다. 그런데 남편은 세심한 탓에 소소한 내 감정변화도 잘 알아챘다. 뭔가 토라진 걸 느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바로바로 이야기하게끔 했고 서운함은 바로 풀도록 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속마음을 잘 이야기하는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 그런데 나는 속마음을 좀처럼 이야기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내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행위가 너무 어려웠다. 때론 이유가 너무 소소해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난 언제나 감정의 폭풍이 지나간 상태에서 내 마음을 정리한 후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라 남편이 이렇게 바로바로 ‘서운함의 이유’를 분석하고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나와 너무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 시간을 가졌다가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인데, 남편은 문제를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어쨌듯 화해 의지가 더 큰 남편의 방식대로, 즉각 다툴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보니 나도 꽤 언성을 높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싸움 방식은 수동형이었다. 서운함을 표현하지 않고 내 마음속 실망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그 실망이라는 풍선이 펑 터지면 나는 그 사람을 정리해버리는 식으로 마음을 정리하고는 했다. 그래서 상대는 이유도 모른 채 ‘쟤는 왜 마음이 갑자기 언 거야?’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나 역시 피하지 않고 링 위에서 최선을 다해 펀치를 날린다. 서운한 점을 돌리지 않고 이야기하며, 내가 잘못한 건 내 입으로 정확히 이야기하고 사과한다. 이렇게 우리 싸움의 기술은 날로 발전 중이다.
“우리가 언제 마지막으로 싸웠더라?” 할 정도로 싸움의 빈도가 줄었으니, 이제는 ‘싸움의 기술’에 대해 한두 마디쯤은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한 부부에게 한 가지 꿀팁. 난 열을 내서 싸우다 말고 잠깐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과 싸워서 뭐 해. 이젠 이별도 못하고 이혼인데.’ 그러면 열 내는 이 에너지가 아까워 웃음이 새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