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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Aug 03. 2023

느려도 좋아 국도 여행

남편은 무엇 하나 서두르는 법이 없다. 명절에 시댁에 있는 부산을 내려갈 때도, 구태여 국도 노선을 확인해 본다.


 "고속도로로 좀 가다가, 다 와가서 국도로 빠지는 게 어때? “ 하면, 남편은 중간쯤부터 국도로 빠질 타이밍을 찾는다. 그렇게 국도로 빠지면 남편은 그만의 여행을 시작한다.


그가 좋아하는 동네의 모습은 대개 관광객의 손이 많이 타지 않은 오래된 곳에 있다. 동네에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 주민들의 고유한 이야기를 품어, 주말에만 열리는 시장, 작은 슈퍼, 수십 년 만들어왔을 것 같은 노포 음식들이 즐비하다.



그럼 꼭 남편은 차에서 내려 손을 잡고 동네를 걸어본다. 중간 여행지가 하나 더 추가되는 셈이다. 안 사도 될 것 같은 계란도 한 번 사보고, 만두도 사 먹어 보고, 노포 음식점에 들러 얼마나 되셨는지 그분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아보려는 질문을 던진다.  다시 차에 올라 마지막으로 동네를 한 장면 한 장면 담으려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는 세상의 모든 색채를 눈에 담고 싶어 하는 화가의 모습 같기도 하다.  


달팽이만큼 느리다 싶은 속도에 뒤에 오는 차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으면 남편은 모든 걸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여유를 부린다.


 만약 급하면 뒤에서 클랙슨을 울릴 거야
그럼 우린 그때 속도를 내면 되는 거고


이 말을 듣고나니 한순간 느긋하지만 윤기로운 동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별 거 아닌 거에 감탄하는 남편과 살다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일상의 윤기, 여유를 선물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지, 하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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