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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리 Jul 24. 2023

우리 부부에게 술이란

우리 부부에게 술은 ‘계기’다. 남편과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와인 모임이었고, 작가와 에디터의 관계를 넘어 ‘첫 데이트’를 하게 된 계기도 근교 닭볶음탕 집에서 남편이 준비해온 포도주를 마시면서부터였다. (포도주를 왈칵 마신 바람에 대리 기사님을 앞에 두고 뒷자리에 당시 ‘썸남’인 남편과 함께 앉아가며 부쩍 가까워졌다) 그렇게 우리가 만나고, 연인으로 발전하는 데에 ‘술’이라는 녀석이 역할을 톡톡히 해냈으니 우린 이 녀석을 좀 더 깊게 알고자 했다.


와인 학원에 등록해 다양한 와인을 맛보며, 원산지별 맛 구별, 맛을 표현하는 연습 등을 한 달 넘게 했고 그 덕에 ‘WEST 와인 자격증’이란 훈장도 얻었다. 수업을 들으며 이런저런 와인을 마시고, <신의 물방울> 대사처럼 와인의 맛을 오글거리고 멋진 기억으로 포장하는 연습을 해본 덕에 우리가 좋아하는 와인의 특징이 무엇이고, 무엇 덕분에 좋아하는지를 명확히 알게 되었다. 이제는 와인을 보러 가면, 라벨링만 보고도 대충 음식과 페어링 할 수 있는 수준은 된 것 같다.


여덟 살 차이 나는 우리가 어떤 계기로 만났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야기할 수 없어 우리는 청첩장에도 ‘와인’의 역할에 대해 적었다.


신혼여행지도 와인이 기준이었다. 도우루 강변을 풍경으로 두고 앉아 끈적끈적 깊은 맛의 포트와인을 즐기면 얼마나 로맨틱할까 대화를 나눈 것이, 고민의 여지가 조금도 없는 신혼여행지 선택의 기준이 된 것이었다.

그만큼 ‘와인’에 큰 의미를 둔 우리 부부에게 가장 많이 들어오는 선물은 다름 아닌 와인이다. 그리고 신기하게 우리 부부는 비슷한 시기에 퇴사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드디어 둘이 와인바를 하는구나!” 하는 추측해냈다.


각자 다른 회사로의 이직이었지만, 영 틀린 말은 아닌 게 우린 매일 밤 거실을 와인바로 만들어버린다. 조명을 모두 끄고 스탠드 불빛 하나에 어울리는 음악을 셋팅하고, 음식에 와인을 페어링한다. 156cm 겨우 되는 키로 5kg이나 찐 건 원인의 9할이 ‘술’이다. 이렇게 우리를 ‘부부’로 끈끈히 엮어둔 술은 결혼 후에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우리가 함께 하는 내내 술의 계기로 인해 벌어질 다양한 해프닝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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