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1)
ㅎ일보 1면 전체를 할애하여 연재되던 '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를 통해 알게 된 류승연 작가의 핵심 주장은 분리하려 들지 말고,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에 장애인들도 섞여 있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영국 우리집엔 의류 브랜드 'Boden' 브로슈어가 종종 postbox에 꽂혀 있곤 했는데, 아동복 모델 중에 다운증후군 아이가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 그렇지. 왜 아동복 모델은 늘 귀엽고 예쁘고 늘씬한 아이들만 하는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던가. 옷, 그것도 예쁜 옷을 입고 싶은 건, 모든 아이들의 소망일 텐데 말이다.
결혼 전에 살던 친정 아파트(당연히 한국)는 상당히 높은 층에 있었는데, 가끔 평소보다 일찍 출근을 할 때면 몇 층에선가 엘리베이터가 서고 어떤 남자아이(십대 중반은 넘어 보이는)와 그 엄마가 탔던 때가 있었다. 그 남자아이는 몸을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고, 그 엄마는 늘 아무 말 없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는 그 남자아이를 엘리베이터 코너 쪽에 몰아(?) 넣고 자신의 몸으로 그 애를 감싸듯이 막고 서 있곤 했다. 어디 학교에 데려다 주는 모양이었는데, 늘 다른 아이들이 학교 가는 시간보다 상당히 이른 시간에 출발하곤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사회는 보기에 예쁘고 완벽하지 않은 건 안 보이게 감추고, 좋은 모습만 보이는 데 익숙해진 건 아닌가.
BBC에서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Gary라는 남자는, 상당히 큰 몸집에 양쪽 눈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고 한쪽 눈은 시력을 잃은 듯한, 그런 모습이었는데, 그의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뉴스에선 그렇게 외모가 그런 방식으로 눈에 띄는 사람은 볼 수 없었다는 생각이 새삼 떠올랐다. 오히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여자 아나운서가 뉴스 진행에서 안경을 꼈다는 이유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영국에 있을 때 BBC에서는, 갑자기 들어온 속보를 읽기 위해 안경을 꼈다가 다시 안경을 벗는, 그러니까 이른바 노안이 왔음을 숨기지 않는 여자 아나운서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뉴스에서 보기 어려운 시각장애인이나, 화상 등으로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사람의 인터뷰도 BBC뉴스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침 6시부터 하던 BBC Breakfast 7월 7일자 뉴스에서는 다운신드롬을 가진 여성이 자긴 춤추는 걸 좋아하고, 디즈니를 좋아하는, 삶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 인간이며 배우자와 함께 기다리던 아기를 고대하고 있는데, 1967년 abortion act에서 다른 경우와 달리, 다운신드롬을 포함한 장애를 가질 것으로 예견되는 아기에겐 출생에 임박한 시점(right up to birth)까지 abortion이 허용되는 건 discrimination이라고, London high court에서 다투고 있다는 기사가 다뤄지기도 했다.
장애인을 대하는 시선을 포함하여, 획일적이고 어떤 때는 폭력적일 수 있는 어떤 기준과 기대에서 좀 벗어나, 딱 맞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일상이 흘러가는 사회의 품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 영국생활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