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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연 Jun 29. 2022

영국의 아날로그 감성

handwriting 상, 초인종 없는 현관문, 인터넷 안 되는 Tube

영국, 그 중에서도 런던은 국제적인 금융 중심지이다 보니 뭔가 빠르고 세련되고 그런 이미지일 것 같은데, 살다 보니 의외로 그렇지 않은 면도 많았다.


1. handwriting 상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는 주기적으로 handwriting상을 수여했다. 영국 초등학교에서는 영어 알파벳을, 블록체가 아니라 필기체(cursive letters)로 쓰게 하는데, 그 글씨를 잘 쓰는 학생을 선정하여 주기적으로 상을 주는 것이었다.

예전 198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경필대회라는 것이 있었지만 요즈음은 아마 그런 것을 하지 않는 듯한데, '손글씨를 잘 쓰는 것'에 대해서 여전히 가치부여를 하고 있는 영국의 문화...게다가 학급의 모든 친구들에게 그 상을 받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는지, 다른 상과 달리 그 상은 수상자로 결정이 되어도 상장을 가져오지 않고 학교에만 전시한다고 들었고, 상장에서 또 다음 주기에 상을 받은 친구 이름으로 그 부분만 교체가 되는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도 열심히 연습을 해서인지, 한번씩 handwriting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2. 초인종 없는 현관문

우리나라 사극에서 보면 가끔 사람이 왔을 때 대문의 동그란 고리(아마 무슨 명칭이 있을 듯한데, 정확한 이름을 모르겠다)를 탕 탕 쳐서 소리를 내어 알리는 걸 볼 수 있다.

우리가 살던 플랏에는 초인종이 있었지만, 아이가 피아노 교습을 받던 피아노 선생님의 집에는 초인종이 없었고, 우리나라 사극에서 보던 것처럼 크지는 않았지만 작은 동그란 고리가 걸려 있었다. 그래서 그 고리를 통 통 두드려서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리곤 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영드 'Motherland'에도, 줄리아가 친정엄마의 집에 갔을 때 그런 고리를 사용해서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그 장면은 인상 깊었던 것이, 친정엄마가 더 이상 줄리아의 아이들을 봐 주지 않겠다고 피하면서 그렇게 문을 두드리는데 숨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3. 인터넷 안 되는 Tube

런던의 지하철 - Underground라고 표시되어 있고 런던 사람들이 흔히 Tube라고 불렀던 - 에서는 폰에 '서비스 제한구역'이라는 알림이 뜨면서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폰으로 그냥 음악을 듣거나 혹은 고전적으로 신문이나 책을 보기도 했다. 어디서나 인터넷이 잘 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면 중 하나이기도 했다.


4. 자동차의 stick 기어

런던에 사는 동안 차를 구입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은 필요할 때 차를 렌트해서 사용했는데,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체크하지 않아서, 또 한번은 분명히 auto로 신청을 했는데도 stick 기어로 되어 있는 차를 받은 적이 있었다. 

면허를 stick으로 땄을 뿐 거의 stick 차를 몰아보지 않았던 남편이 그래도 침착하게 운전을 했기에 다행이지만(게다가 도로의 좌측통행 시스템, 운전석은 오른쪽에 있는 그 낯설음, 영국의 차도는 대부분 좁은 편이라 운전자끼리 오른쪽 어깨가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도 있었다), stick 차는 멈췄다가 다시 움직일 때도 바로바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다행히 영국의 운전문화가 gentle한 것인지, 한번도 뒤에서 압박을 하거나 경적을 울리거나 하는 적은 없었다. 그래도 아주 오래간만에 stick 기어 차를 타고 느꼈던 긴장감은 잊혀지지 않는다.


5. Royal mail 성애자들

런던에 사는 동안, 동네에서 거의 매일 빨간 Royal mail 차들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의사소통이 이메일로 대체되긴 했지만, 그래도 영국인들에게 Royal mail은 지금도 상당히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쓰인다. 관공서나 학교 등에서 중요한 통지를 'Royal mail'로 해 주는 경우를 지금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영국 집에는 멋진 우편함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우리도 집주인에게 받은 우리 집 우편함 열쇠로, 매일매일 우편물을 체크했었다.


6. 쩔렁쩔렁 집 열쇠

스마트키가 일반화된 우리나라에서 살다가 적응이 안 되었던 것이, 항상 쩔렁쩔렁 하는 키를 챙겨 다녀야 했다는 점이다.

한번은 비 내리는 어떤 날, 집 열쇠를 집에다 두고 나온 적이 있어서 외출해 있는 집 주인에게 연락해 문을 열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고, 한번은 택배를 받으러 공동현관까지 나갔다가 우리집 문이 닫혀 버리는 바람에(열쇠는 집 안에 있는데) 슬리퍼 바람으로 남편이 있는 곳까지 걸어서 이동하기도 했었다. 공동현관 키, 우리집 현관문 키, 우편함 키 세 개가 달려 있는 키 세 개를 늘 쩔렁쩔렁 들고 다녀야 했던, 참 아날로그적 광경이었다.


7. 100년이 넘는 집도 조금씩 고쳐서

우리가 살던 flat은 그나마 최근에 지어진 것이긴 했는데, 동네의 다른 집들 중엔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듯한 굴뚝이 있는 집 하며, 악명 높은 찬물과 뜨거운 물이 분리된 수도꼭지, 카펫(?)이 깔린 욕실 등 오래된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는 집들이 꽤 있었다.

생각해 보면 서울엔 일단 다 허물고 새로 시작하는 게 많았던 것 같은데, 런던에서는 그런 방식보다는 100년이 넘은 집들도 조금씩 조금씩 고쳐서 계속 사용하는 방식을 선호했던 듯 싶다. '굳이 왜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라는 의문보단, '굳이 그렇게 다 싹 갈아 엎어야 할까'라는 게 일반화된, 그들의 감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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