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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목 May 16. 2021

외우지 마! 절대 길을 잃지 않는 말하기 방법

글자를 외우는 순간, 망한다. 맥락을 이해하고 숙지하라

“어~오늘 우리는, 어~더욱 더…아…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에휴…"


깊은 한숨과 함께 그는 말했다.


“저번 방송 보셨죠? 엄청 어색하고 힘들어 보였죠? 솔직히 말하셔도 됩니다. 그 내용 통째로 외우느라 진짜 노력 많이 했거든요? 거의 한 달 가까이, 보름 이상 달달 외웠는데…  


틀리진 않았지만, 그렇게 말을 못 해서야 무슨 소용 있겠어요. 제가 봐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자연스러움'이 전혀 없어요.

 
살면서 남들보다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말하기를 준비하다 보니 스스로에게 한숨이 나오더군요.


'나는 보름 넘게 외우려고 애써도 제대로 못했는데, 배우들은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외우는 거지? 내가 머리가 나쁜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하하, 왜 그런지 저는 너무 쉽게 알겠는데요?”

"왜죠?"
 
“잘못된 방향으로 출발하면 아무리 열심히 달려간다 해도 도착하기 어렵죠? 마찬가집니다. ‘글자’를 외우려고 해서 그렇지요.


이야기를 이해하고 익숙해져야 하는데 ‘글자’에 집착하니 오히려 큰 그림이 생각나지 않을 수밖에요.


외우다 보면 흔히 나오는 현상입니다. 강연 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이 ‘글자’를 외우면 보통 아주 폭망 하곤 해요.

자신의 암기 항목 중 한 글자만 틀려도 '실패'에 사로잡혀 뒷 내용도 잘 생각나지 않게 되는 거죠.


“안녕하세요.”라고 첫 시작을 준비했는데 “안녕하십니까?”라고 말 한 연사가 모든 내용을 까먹는 일, 상상이 되세요?

무섭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랍니다. 연사도, 저도, 관계자들도 모두 함께 멘붕 했죠."
 
일부러 양손을 펼치며 넋이 나간 표정으로 너스레를 떨어 봤지만, 남의 일이 아니라는 느낌 때문인지 그의 표정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나는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한다.라는 말 아시죠?
일부만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것은 원래부터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요령 없이 부분만 죽어라 암기했으니 당연히 잘할 수가 없죠.
 
반면 원래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본 사람이 한 부분을 만진다면, 그 부분이 어디에 있는지를 대번에 알 수 있겠죠?
 
말하기도 이와 같습니다.
 
부분에 대한 집착은 알던 길도 헤매게 만들어요.
어두운 미로를 촛불 하나로 발 밑만 보고 빠져나가려면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반면 큰 관점에서 메시지를 확실히 인식하고,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면 어려울 게 없습니다.
큰 그림을 보면서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내비게이션처럼 볼 수 있으면 헤매지 않죠.


여기서 도움이 되는 팁이 있습니다. 누군가 인터뷰를 한다고 생각하고 맥락을 질문화 해 보세요.

'이번에 들려주실 이야기는 뭔가요?', '이러이러한 일도 있었다고 했는데, 자세히 들려 주시겠어요?'

맞아요, 제가 강연 코칭할 때 틈틈이 드린 질문들이 바로 그 맥락 들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길을 잃지 않도록 이정표를 세운다고 생각하시고, 질문화 해서 자문자답 해 보세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뭔가를 적으려는 그에게 나는 곧장 말했다.
 
“일단, 다시 한번 해 보시겠어요?”
 
“어~오늘 우리는…”
 
“아 거기! 그 소리!"
 
“네?”
 
“어~하는 소리 말입니다. 그 소리, 원래 가지고 계셨던 습관인가요?”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당황했는지 다소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아뇨. 저번 방송 내용에서 중간, 중간 생각이 잘 안 날 때가 있더라고요. 그때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넣기 시작했는데… 안 좋요?”
 
“멈추면 훨씬 나을 겁니다. 아주 여러모로”
내 미소에 표정이 조금 풀어진 그에게 나는 말을 이었다.
 
“ 보통, 침묵을 불편해하죠. 어~음~하는 식의 소리는 침묵 없이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려다 보니 나오는 거고요. 그런데 그런 소리는 대부분 청중에게 좋지 않은 습관을 가졌다는 인식을 주게 됩니다. 뭐든 이상하다고 한번 인식하면, 계속 거슬리죠?


소개팅 상대에게서 삐져나온 코털을 한 번 보면 계속 코털만 보이고, 결국 ‘코털’로 기억되는 비극…! 당신 이야기도 나중에 ‘어~음~’ 소리로만 기억할지도 몰라요.”
 
“사람들의 의식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침묵을 채우는 의미 없는 어~,음~소리는 방아쇠와도 같습니다. 암기한 내용을 찾아서 ‘읊게’ 만드는 방아쇠. 그 소리를 내는 순간 머릿속엔 글자가 떠오르고, 입은 그 글자를 읽을 뿐입니다.
그래서 뒤이어 나오는 표현들도 자연스러울 수가 없어요. 외운 걸 읊는데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갑갑한 듯 그가 말했다.
 
“입을 닫으면 됩니다. 조용히 정리하고 이야기하세요.”
 
“하지만 침묵이 생기면 답답해 보이거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호흡을 고르고 할 이야기를 정리하는 적당한 침묵은 자연스럽습니다. 머릿속으로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정리하고 이야기하세요. 침묵을 두려워하지 마시고요.

그 누구도 신중하고 차분히 말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담화문 발표, 들어보셨죠? 어떤 소리가 제일 많이 들리는지 아세요? 기자들 카메라 셔터 소리입니다. 왜 그 소리가 특별히 더 크게 들릴까요?

말하는 사이 간격이 많이 길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이야기일수록 충분히 호흡과 내용 정리가 이뤄진 후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물론 엄청나게 침묵이 길어지면 ‘무슨 문제가 있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당한 침묵은 청중을 집중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게다가 '신중하기 위해 노력하는구나'라는 인상을 주는 플러스 요소가 되기도 하죠. ”
 
나는 그의 노트에 슥슥 몇 자를 적어 주었다.


-이야기 구성 순서-
1. 상대의 니즈를 파악한다.
2. 그에 맞는 메시지를 확정한다.
3. 큰 구조를 설계한다.
4. 구조 별 맥락을 이해하고 숙지한다.
5. 단락 별 맥락에 적합한 표현을 설정한다.
 
“이것이 제가 예전에 알려드렸던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입니다. 기억하시죠?
숙지와 체화 또한 이 흐름대로 해야만 헤매지 않고 잘 전달할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적고 달달 외운다고 해서 좋은 말하기가 가능하다면, 그냥 적어서 Ai에게 읽어달라고 하면 그만이지, 당신이 직접 말할 이유가 없죠.

잘 외우기 대회가 아닌 이상, 글자를 암기하는 것은 이야기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맥락에 대한 숙지와 이해가 되면, 세부 단어나 표현이 다소 바뀔 지라도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하는 데에 무리가 없습니다.

상대도 더 자연스럽고 진솔하게 받아들이게 되고요.
 
대신 많은 연습을 통해 체화시켜야 합니다. 맥락이 이해가 된다고 해도 입에 붙어야 해요. 안 그러면 기껏 준비한 훌륭한 표현들을 놓치거나 핵심 용어들을 사용하지 못하기도 해요.
그러면 전체적인 전달력이 떨어질 수 있고, 긴장으로 인해 맥락을 잊는 경우도 생길 수도 있습니다. “
 
 
 
정리해 볼까요?
1. 부분에 집착하지 말고 큰 그림을 늘 떠올리고 이야기를 하세요. 숙지해야 할 건 글자가 아니라 맥락입니다. 자문자답하면서 맥락에 익숙해 지세요.
2. 침묵이 두려워서 뱉는 무의미한 소리는 전달력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방아쇠가 됩니다. 차라리 침묵 가운데서 정리하고 말하세요.
3. 읊지 말고 말하기 위해서 ‘글자’는 잊는 대신, 구성 순서를 기억하고 그대로 체화시키세요. 많이 연습해야 세부적인 내용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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