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은 생각만 해도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녀의 구겨진 미간만 봐도 느낄 수 있는 감정, 굳이 정의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왜 그래?"
일부러 더 무심히 툭 던지듯 물었다.
수영과 석훈. 수영이 나이는 더 어리지만 우리 회사에 들어온 건 훨씬 먼저다. 보여준 실적부터 형성하고 있는 인간관계 모두 석훈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리고 그녀는 다소 다혈질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구성원들과 원만한 성격인데, 이렇게까지 반응하는데 이유가 있겠지 싶었다.
“아니, 그냥 그 사람이 싫어요. 별로예요.”
애써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불만이 느껴졌다.
“음… 싫은 이유가 있어?”
“뭐만 하면 트집이나 잡을 줄 알지, 좋은 표정으로 임하는 경우가 없어요. 꼬치꼬치 따기지나 하고. 다들 고생하는 것도 모르는지 자기 대우만 받고 싶어서 이것저것 요구와 요청만 하고요. 에이… 그냥 나랑 잘 안 맞아요. “
“흠, 재밌네.”
“왜요? 뭐가요”
“아까는 ‘싫다’라는 표현에서 ‘잘 안 맞는다’는 표현으로 바꿔서 말하길래.”
“그거야 뭐…비슷한 말 아닌가요? 조금 돌려서 말한 거예요.”
“그래. 완곡한 표현이기도 하지.
근데 '싫다' 와 '안 맞는다'는 꽤 큰 차이가 있으니까. 우리가 잘 알듯 언어는 많은 걸 내포하고 있잖아? 그렇게 바꿔 말한 이유가 있을까? 그냥 돌려 말한 것 말고 말이야."
“에휴… 선배 또 시작이시네요… 내가 선밸 어떻게 이기겠어!” 계속된 추궁아닌 추궁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수영은 말을 이었다.
“그냥요… 석훈님을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뭐 일적으로 했던 행동들이 불편했던 거지 인간적, 도덕적으로 혐오할 건 아니니까요.”
"그래 맞아.
‘싫다’는 대상이 주는 불안과 불편에 대한 거부반응이 태도화 된 것을 의미하지. 그 불안과 불편의 주된 요인이 바로 대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아. 모르는 것은 불안하니까.
반면 ‘맞지 않는다’는 것은 대상의 행동과 태도에 대한 어느 정도 수준의 인지와 인정이 전제되어 있어. 한 마디로 상대를 좀 알고 있다는 것이지.
상대의 이유와 입장을 알지만, 내 행동-사고방식과 부딪히거나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는 걸 ‘맞지 않는다.’로 정의 내릴 수 있겠지.”
“그러니까 잘 모르면 일단 ‘싫다’라고 느껴질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좀 더 알고 나면 싫은 게 아니라 잘 안 맞는다로 바뀔 수 있는 거고.”
“맞아. 잘 모르면 도드라진 부분부터 보일 것 아냐. 상대의 강한 특성부터 보이는 거지. 근데 그게 나와 많이 다르면? 일단 거슬리겠지.”
“근데 싫은 게 잘 안 맞는다는 걸로 바뀌면 뭐가 달라져요?”
“싫다는 표현은 일종의 게으름이라고도 생각해.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기 싫을 때 가장 쉬운 핑계가 바로 '싫다'잖아. '안 할래.왜? 싫으니까!' 얼마나 편리한 이유니?
반면 잘 안 맞는다는 것은 그래도 구체적인 원인을 인식하려는 노력이 들어간 것이니, 이후 행동에도 영향을 주겠지.”
“뭐… 그럼 싫은 건 아니고 잘 안 맞는 거네요. 위에 말한 대로 따지고 요구하고 대접만 받으려고 하는 게 나랑 안 맞아요!"
“오, 그래? 석훈님을 싫음이 아닌 안 맞음으로 갈 만큼 충분히 알아?"
“아예 모르진 않아요! 예전에 석훈님과 같이 M사 갔을 때도 그랬고, T사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제가 안 맞는다고 판단한 근거죠. 게다가 다른 멤버들한테 들은 일들도 많이 있고요.”
“흠 두 세 번이라...제 3자인 내 입장에서 많다 적다 할 수는 없겠지만, 상대에 대한 인정과 이해의 수준으로 가기까지는 꽤나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대화도 아주 많이 해 봐야 하고.
특히 서로 다른 관점으로 부딪혔을 때, 그걸 피하지 않고 소통해 보는 것이 중요하지. 충분한 경험과 소통 없이 상대를 미리 판단하고 ‘안 맞아’라고 정의 내리는 행동이 옳지 않다는 건, 굳이 말 안해도 되겠지?”
겨울철을 대비하는 다람쥐 볼따구 마냥 잔뜩 뺨을 부풀린 채 불만 가득한 눈으로 흘겨보는 수영을 못 본 채 하며 말을 이었다. 잔소리가 내 역할이니까.
“그리고 직접 경험한 일이 아니면 상대에 대한 판단에 적용하지 않는게 좋아. 다른 사람의 말들이나 사건들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닐 수 있으니까. 전달하는 사람들의 시선, 입장, 감정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잖아. 너 정민님한테 들었지?"
“헉!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벌써 여러 번 엄청 따지고 화내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상전인지 동료인지 구분이 안 간다고…듣는 내가 얼마나 화가 나던지“
“나도 들었어. 객관적으로도 석훈님이 잘못한 일일 수 있지. 맞아.
그렇지만 너랑 정민님이랑 같은 사람이 아니잖아? 누가 봐도 성향부터 다르고, 나이, 역할도 다르잖아. 상황이 어땠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고. 그 일에 대해 석훈님 입장도 들어 봤어?
“아뇨…”
“어허! 올바른 피드백을 주고받으려면 “팩트” 기반으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러면 되나. 팩트, 사실이라는 게 뭐야? 한쪽 입장에서만 서술되면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잖아. 영화 라쇼몽 봤지? 사람은 다 자기 유리하게 말하거나, 감정을 이입해서 말하게 되어 있어. 진짜 팩트를 알기 위해서라도 여러 입장에서의 서술을 들어 볼 필요가 있는 거지.
“그럼 결국 제가 석훈님을 잘 몰라서 드는 감정이란 건가요? 안 맞는다는 것도요?”
맞아. 아까 싫다에 대해 내가 이렇게 정의했지? ‘싫다’는 대상이 주는 불안과 불편에 대한 거부반응이 태도화 된 것. 나는 그 전제가 상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댔지? 그래서 싫은 걸 안 맞는 수준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고."
"좀 더 알려고 애쓰고 소통하라고 했었죠. 싫다는 핑계 대지 말고. '안 맞아'단계로 만들라고."
"그렇지. '안 맞아' 단계 후에도 충분히 경험하고 소통했다면 어지간한 경우 상대가 나와 '다르다'고 생각하게 됐을 거야. '안 맞아'는 자신이 기준이고, 그 기준에 상대를 맞추려고 하는 거라면, '다르다'단계는 서로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거든. 리스펙트 단계지."
“아 선배는 만날 나한테만 잘못했대!”
“다 널 위해서야. 싫거나 안 맞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건 괴롭지만, 나와 다른 사람과 일 하는 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잖아. 서로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잖아? 그러면 달라서 불편하기보다는 유용한 경우가 훨씬 많아. 내가 못 보는 무언가를 다른 사람은 볼 수 있잖아.”
“그럼 선배. 만약 진~~ 짜 오래 경험하고, 충분히 알만큼 알고, 소통도 많이 시도해 봤는데도 소용없다면요? 답이 안 나오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렇지. 인간이 내 맘 같냐? 평생 내가 낳고 키운 내 자식도 내 맘처럼 안 되는데, 다 큰 성인이 고작 몇 년 함께 했다고 변하겠어? 큰 기대는 안 하는게 정신건강에 이로워.”
“뭐야, 그럼 어떻게 해요! 어쨌든 같이 일 해야 하는데.소통해 보라면서요.”
“상대를 충분히 알고도, 정말 이해 안 되고 심한 경우 인간적으로 싫거나 거슬릴 수도 있지. 하지만 잘 모를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를 거야. 행동이 예측이 되기도 할 테고. 정찬성씨가 그러더라. 알고 맞는 주먹이 확실히 훨씬 덜 아프다고.
그래도 제일 중요한 건 서로 맞춰 가야지. 관계를 잘 갖춰야 해 “
“으엑…그런 사람과 친하게 지내라는 말인가요?”
“노노. 관계를 잘 갖추라는 건 친해지라는 말이 아냐. 이걸 착각하면 피곤해 져. 친구, 소울 메이트는 밖에서 찾아야지. 동료가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내 입맛대로 골라 담을 수는 없잖아.
그러니 일에 지장이 안 가는 선까지 가려고 최대한 노력해 보자는 거야.
상대 행동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물어보고, 너의 의견을 말해 봐. 그게 왜 거슬리고 불편한지를 알려줘. 합의를 구하는 거지. 업무가 가능한 선까지만 가보자고 하는 시도를 하자는 거야.”
“엄청 힘들게 말을 꺼냈는데 거부 당하면요? 변명하거나 되려 화를 내면요?”
“그런 대화를 거절할 정도로 형편없는 상대라면 조정자를 찾아. 일에 큰 방해를 줄 정도라면 그냥 둘 일이 아니니까. 올바른 조정을 위한 대화마저 거부하는 문제아? 그런 사람을 좌시할 관리자는 없어. 일러버려!
자, 정리해 보자!
누군가 싫다? 상대를 잘 아는지, 충분한 경험이 있었는지 체크해 봐. 관계에서 '싫다'로 퉁 치지 말고.
꽤 많이 알게 됐는데도 거슬린다? 그건 안 맞는 단계인데, 그럼 충분히 소통해 봤는지 체크.
충분히 소통했는데도 계속 거슬린다? 일이 가능한 적정선을 설정하고 합의를 구해.
그런 합의를 거부한다? 조정자를 찾아. 부서장 또는 최고 책임자가 될 수도 있겠지. 일러!”
“아 선배랑도 진짜 안 맞아요. 매번 잔소리야 정말.”
흘겨보는 수영의 눈가에 어린 웃음기를 보며 괜한 오지랖은 아니었구나 생각했다. 적극적인 성격의 그녀는 어쨌든 석훈님에게 대화를 시도해 볼 것이다. 그 뒤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뭐.
싫거나 안 맞는 사람은 많다. 다만 그 이유가 잘 몰라서, 다른 사람의 경험이 내 경험처럼 받아들여서 일수도 있다. 도적적, 인격적 사유가 아니라면 - 싫음이 아닌 다름으로의 인식전환이 대부분 가능하다.
물론 더 많은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일이다. 번거롭고, 귀찮다. 어색함을 견디며 말을 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문제가 있는 건 저쪽인데, 내가 왜 이런 쌩고생을 해야 하지?'
그럴 때 스스로에게 해 줄 말은 이 말 밖에 없다.
'원래 영웅은 귀찮고 피곤한 법.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는게 아니라 바꿔내는 영웅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