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남자의 죽음과 삶에 관한 이야기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실감하게 만든다.
남자가 도착한 곳은 한적한 곳에 있는 조용한 게스트하우스.
바다가 보이는, 젊고 친절한 직원들과 2층에 바리스타가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평가 좋은 곳.
이 곳을 검색하며 지었던 쓴 웃음을 다시금 지으며, 남자는 가볍게 짐을 풀고 커피를 한잔 마시기로 했다.
안티구아, 블루마운틴, 예가체프... 케냐,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등... 원두 이름과 나라명이 뒤섞여 흡사 게임의 마법명과도 같을 정도로 어려운 이름들에 조금 난감했지만, 남자는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바리스타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중년의 바리스타는 싱긋 웃으며 메뉴에 적힌 설명보다 훨씬 더 상세하게 커피들을 소개했다.
그런 모습에서 자부심과 세심함을 느낀 덕에 6천 원이 넘는 가격이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묵직하고 쓴 액체를 한 모금 마시며 남자는 생각했다.
'왜 할머니는 슬프지 않고, 나는 슬플까?'
그에게는 여든 넘은 할머니가 있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잠시나마 채워준 사람.
늙은 몸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와 아직 어렸던 남매들을 돌봐주신 분.
장남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인지, 어려서 어미를 잃은 안타까움 때문인지
열 명이 넘는 여러 손주들 중에서도 남자와 누나들을 가장 예뻐하셨다.
직접 양육까지 해서 정이 잔뜩 든 세 남매 중 하나가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암 투병 후 사망했다는 사실은
여든을 훌쩍 넘긴 할머니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충격일 것이다.
그래서 온 식구들은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남자의 누나는 결혼과 함께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으로 말을 맞췄다.
할머니는 가끔씩 전화도 안 한다며 서운한 기색을 내보이셨지만,
미국에서 보냈다고 가끔씩 누나 이름으로 선물을 가져오는 등의 노력 덕에
할머니는 투병 중에도, 사후에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왜 할머니는 슬프지 않고, 나는 슬플까?'
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슬픈 걸까?
단순히 떨어져 있음이 고통으로 이어지는 걸까?
남자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다른 공간에 있는 것은 슬프지 않지만, 다른 시간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견딜 수 없구나.'
1. 인간은 가능성에 의지한다.
스스로 유한한 존재라는 자각을 하면서 동시에 무한에 가까운 상상을 하며,
그 가능성이 있음에 위로받고 힘을 얻는다.
사랑의 다른 이름, 아낌.
더는 그 사람을 아껴줄 수 없다는 것, 그 가능성의 상실이 주는 존재적 좌절.
아껴주지 못한 채 평생을 살아도,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괜찮다. 언젠가는 아껴주면 되니까.
하지만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주는 절망감은 '절대' 적이다.
나라는 존재가 가진 미래의 상실이며, 아껴주지 못한 과거에 대한 후회와 죄책을 가져온다.
그렇게 현재를 침식하고 무너뜨리게 된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실감하게 만든다.
2. 불완전함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매 순간 확인받고 싶어 한다.
끊임없는 소통과 기록, 관계 맺음은 어쩌면 존재적 불안을 해소하고 싶다는 몸부림일 것이다.
왜 태어났는지, 왜 사는지조차 모르는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기억되고 싶어 하고, 이해받고 싶어 한다.
그렇게 안정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그래서 자신을 오래도록, 깊이 아는 사람과의 사별은 존재 자체를 위협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깊은 이해를 가진 대상이 사라진다는 것은
존재적 불안과 외로움을 가져온다. 아니, 극심한 공포감까지 불러온다.
남자는 스스로 느끼는 고통에 대해 완벽한 이해는 아니었지만,
조금이나마 정리됨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남자는 다시 절망했다.
생각이 정리되고 이해의 폭이 커진다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에게는 후회와 죄의식이 가득한 과거와 꺾여버린 미래만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대안이 없었다!
결국 아무도 대신할 수 없음을, 존재의 상실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음을 더 강하게 느꼈다.
해결방법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그는 생각이 정리되지 못했을 때보다 더 큰 좌절감을 느꼈다.
가까운 이의 죽음은 그토록 무서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