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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목 Mar 06. 2022

Return1-2. 여행의 시작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고 삶을 등지려 떠난 남자의 이야기.

걸었다. 계속 걸었다. 유채꽃도, 푸른 하늘도 일부러 보지 않았다. 보이는 모든 것에서 느끼는 감정의 끝은 결국 후회와 그리움일 테니.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 올레길이었다.

풍경이 예쁘다든지, 유행이라든지 하는 이유는 중요치 않았다.

그냥 걷고 싶었다. 핑곗거리를 찾기 위해. 정리든 회복이든, 명분이 필요했다.

가슴팍의 뻥 뚫린 구멍이 빨아들이듯 타지의 공기를 갈망했다.


동선에 맞춰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들은 적어도 리뷰를 보면 저마다의 매력이 있는 곳들이었다.

남자는 그런 리뷰를 세세하게 보는 자신이 우스웠다.

툭하면 죽음이라는 곳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자신이

숙소가 어떤지, 풍경이 어떤지 하는 글들을 보고 있으니 우스울 수밖에.


쓴웃음 뒤, 그는 리뷰들을 보면서 아무런 기대도 설렘도 생기지 않는 자신의 마음에

약간의 안심과 좌절을 했다.


남자는 여행을 좋아했다. 동경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수도 있다.

여행을 자주 떠나본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여행'이라 부를 수 있는 경험은 대학 졸업 시절 홀로 다녀온 유럽 여행이 거의 다였다.

하지만 충분했다. 여행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Yes라고 답하게 만들 만한 기억이었다.


기대와 떨림이 함께하는 여행 준비.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두근거렸던 여권 갱신과 티켓팅.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올라탄 비행기, 중간에 일정까지 바꿔가며 나눴던 여행지의 인연들.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던 타지에서의 첫 식사, 감탄하게 한 풍경, 괜히 사색에 잠기게 만드는 시간들.

성인이 되어 제대로 경험했던 설렘. 그 달콤함.


그렇다. 분명 그는 여행을 좋아하고 동경하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이라 부를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다녀온다는 짧은 이야기에 남자의 부모님은 잘 생각했다 하셨다.

서로가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그런 분위기 속에서

뭐라도 적극적인 행동을 한다면 응원할 만한 일이니까.


어떻게 공항으로 갔는지, 비행기를 탔는지, 공항에 내렸는지도 제대로 모를 정도로

상념에 사로잡힌 여행 초입이었다. 설렘도 기대도 없는 아주 기이한 여정의 시작.


버스에서 내렸다. 숙소까진 꽤 먼 곳에서 일부러.

걷기에, 여행하기에 꽤나 좋은 계절이었다. 적당한 온도, 예쁜 유채꽃이 만연한 시기였다.


하지만 남자는 싫었다.

4월. 어머니를 잃은 달이자 누나를 보낸 지 겨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기.

'만약 계속 산다고 해도, 봄이 좋아질 리는 없겠군.'

쓴웃음을 지으며 배낭을 치켜올렸다.


걸었다. 계속 걸었다. 유채꽃도, 푸른 하늘도 일부러 보지 않았다.

보이는 모든 것에서 느끼는 감정의 끝은 결국 후회와 그리움일 테니.


누나와의 기억이 없는 제주도라는 것이 그나마 위로가 됐다.

하지만 그 생각이 화근이었다.

이내 함께 했던 다른 여행이 떠올라 버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좋았던 기억에서도 누나의 모습은 참담하고 가여웠기에

그는 숨 막힘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어지러움이 느껴져 잠시 길가에 주저앉아 숨을 골랐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스스로를 할퀴기엔 그가 주변 시선을 아직 신경 쓰는 사람이란 점이었다.

아쉬운 건 고개를 처박을 침대가 없다는 점이었고.


이내 정신을 차린 남자는 첫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 쉬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진 채, 여행의 첫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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