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이를 떠나보내고 삶을 등지려 떠난 남자의 이야기.
'죽음이 편안한 휴식은 아니겠지만
그렇게라도 쉬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가?
라고 물었을 때 떠오르는 답이었던 사람들을 남자는 차례차례 떠나보냈다.
그래서 남자는 떠났다. 마지막을 위해.
누나의 장례.
젊은 사람의 장례는 어르신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참척이라고 한다. 참혹한 슬픔.
자녀를 떠나보낸 부모의 마음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2년 가까이 항암치료로 이끌었던 아비의 마음,
결국은 아내와 똑같은 병으로 딸을 잃어야만 했던 마음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남자는 상주로 장례를 치르며 아버지 걱정을 멈추기 어려웠다.
사실 누구보다 상실감이 컸던 건 그였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은 막내아들, 그의 사춘기부터 청년기까지.
누나라는 이름보다는 어머니, 어쩌면 소울메이트와 같은 역할을 해 준 존재를 잃었다.
암 말기의 지독한 투병을 함께 하면서, 남자는 수십 년을 억누른 눈물이 터져 나왔다.
고작 12살 때 어머니를 떠나보면서도 울지 않았던 그였다.
남자는 자신이 이렇게 울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을 크게 울었는데, 첫 번째는 앙상히 뼈만 남아 위액을 토해내는 누나의 언어 상실을 마주했을 때였다.
병실을 나와 화장실에서 입을 틀어막고 오열을 했다.
두 번째는 장례를 치르고 화장한 뒤 누나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 앞에서 보인 수십 년 만의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남자는 그 두 번을 제외하곤 울지 않았다.
장례 동안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도 전혀.
장례 동안 그는 찾아오는 수많은 문상객을 차분히 맞이하고,
새신랑이면서 동시에 상주가 되어버린 가엾은 매형을 곁에서 돌봤다.
동시에 아버지와 큰누나, 친척들을 챙기면서 상을 치러냈다.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한 것조차 아무도 모르게.
어쩌면 현실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서였을 지도 모른다.
그는 그렇게 지나치도록 의연하게 장례를 치렀다.
그 후 한 달을 살았다.
식음을 전폐하지도, 생활을 내려놓지도 않았다.
그는 조용히 생각했다.
주변의 인물들을 보면서, 슬픔에 대처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구분 지었다.
아버지는 처절하게 종교와 마음수련에 매달렸다. 고통에서 몸부림치지 않고 답을 찾으려는 모습이 아버지 다뤘다. 어머니 사후에도 비슷한 과정을 보내시는 걸 어린 나이의 남자는 기억하기에, 스스로 이겨내시리라 믿을 뿐이었다.
새어머니는 우울증을 호소했다. 그에게 있어 최악의 모습을 보인 사람이었다.
의붓딸이 말기암으로 고통받을 때부터 우울증을 호소했던 모습에 분노했지만 그걸 표현할 여유조차 없었다. 어쨌든 누나 사후에도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살았다. 솔직하게 징징대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다.
큰누나는 정신적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지 긴 유학길에서 돌아와 병원 치료를 받으며 지냈다. 다만 걱정하진 않았다. 누나 곁에는 오랜 시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매형이 있었기 때문에, 함께 이겨낼 테지 하며 지나칠 뿐이었다.
작은 매형은 너무도 딱했다. 그래서 일부러 거리를 뒀다. '나를 보면 누나 생각이 날 테지.' 그 고통을 잘 알기에 조금이라도 덜하게 해주고 싶었다.
남자는 세상 무엇을 보더라도 누나로 생각이 연결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기승전 누나였다.
거의 서른의 생을 살면서 물리적으로 잠시 떨어진 적은 있지만, 누나 없이 살아본 적이 없었던 그는 생각의 끈을 떼어내질 못했다. 하다못해 길거리의 포장마차를 봐도 누나 생각으로 귀결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처음으로 포장마차 닭꼬치를 사준 게 누나였으니. 지나가는 자전거를 봐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두 발 자전거를 알려준 것도 누나였다.
이렇듯 그에게 누나는 선생님이었으며, 애인이자 친구였다.
그에게 누나는 세상 그 자체였다!
그를 더욱 괴롭힌 것은 생각의 끝에 연결되어 떠오르는 그 소중한 누나의 모습이, 가장 쇠약해져서 고통을 호소하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떠올린 것만으로도 회한과 죄책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지옥을 경험해 본 적은 당연히 없었지만 그는 매 순간순간마다 지옥을 실감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제일 외롭고, 답이 없구나. 하루하루 살아봤자 어차피 모든 순간은 지금의 고통일 텐데. 그만하고 쉬고 싶다. 죽음이 편안한 휴식은 아니겠지만 그렇게라도 쉬고 싶다.'
그가 애초부터 세상을 등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나름의 몸부림을 쳤다.
유행하는 게임에 목숨을 걸고 빠져보기도 했고, 썸을 타던 대상들에게 연락도 해 보고. 봉사활동과 아나운서 진로를 위한 공부도 계속해 봤다.
하지만 결국 찾아오는 상실감과 죄책감, 자기 연민과 혐오, 누나의 고통스러운 모습에 대한 잔상이 그를 괴롭혔다. 특히 새벽녘 찾아오는 외로움, 한 존재가 사라진 미래에 대한 거부감이 그의 가슴을 갈갈이 찢어발겼다.
하루는 실제로 격통이 느껴지기도 했다. 손으로 몸을 할퀴는 게 차라리 덜 아파서 그렇게 하기도 했다. 침대에 눈을 감은 채 머리를 처박았지만 떠오르는 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고통 가운데에서도 술은 절대로 마시지 않았는데 그건 정말 무서워서였다. 이성을 놓으면 무조건 스스로를 파괴할 거라는 확신이 남자에겐 있었으니까.
결국 남자는 제주도행 티켓을 구매했다.
왜 제주도였는진 모른다. 막연히 다른 곳으로 가서 정리하고 싶었다.
머릿속에 완전한 자살만이 가득 찬 상황은 아니었다. 대충 7:3 정도?
가서 죽어야겠다 생각이 들면 그렇게 하리라. 정도의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다.
단단히 각오하고 어쩌고 할 에너지조차 남자에겐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지겹고 괴로운 그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