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남자의 죽음과 삶에 관한 이야기
남자는 게스트하우스를 나와 발걸음을 옮겼다.
섬으로, 바다로. 탁 트인 곳을 찾았다. 우도였다.
배를 타고 들어가 스쿠터 한 대를 빌려 천천히 달렸다.
남자의 인생에서 누나와의 추억이 묻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물며 이 스쿠터에도.
누나가 대학생이 되어 예쁜 스쿠터를 사서 좋아하던 기억, 그걸 도둑 맡아 속상해했던 기억.
떠오르는 기억 가운데 건강했던 누나의 모습, 예뻤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썼다.
그렇지만 이내 실패했다.
떠올리면 늘 그 끝에 떠오르는 모습은 암 투명 말, 언어를 잊은 채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남자는 질려버렸다.
사랑하는 이가 고통받는 모습, 가장 힘들어하는 모습이 뇌리에 남아서
하루 종일, 매 순간마다 떠오르니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영혼이 지친다'라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반복되는 잔상에 남자는 완전히 탈진해 버렸다.
끝없이 펼쳐진 파란 바다도, 하늘도, 시원한 바람도 전부 무의미했다.
어제의 눈물로 후련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남자는 결국 긴 여정을 끝마쳐 버리겠다는 결론을 내려 버렸다.
여행을 떠나며 마주한 두 갈래 길에서 방향을 정한 것이다.
남자는 죽을 만큼 큰 고통을 주는 누나의 기억이 멈추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기억이 끊기지 않길 바랐다.
시간이 흘러 더는 떠오르지 않게 되는 것이 두려웠기에
자신의 고통으로나마 누나의 존재를 붙잡아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견딜 자신이 없었다.
계속 기억하면서 아파할 자신도, 이별을 받아들일 자신도.
방법이 고민이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을까'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아예 세상에 없었다면 좋았을 텐데. 존재의 종말, 소멸. 그게 가능할까'
이상했다. '조용히 사라지고 싶다.' 라는 열망, 그게 이상했다.
스스로를 탈진해 버린 영혼, 아무것도 개의치 않고 원하지도 않는 상태라 생각했다.
그런 자신도 막상 죽기로 결심하니 죽을 사람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들,
이를테면 자신의 죽음에 슬퍼할 가족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은 여전히 전혀 없었지만,
상처 받을 사람들이 떠올랐다.
처음엔 아주 작은 크기, 이를테면 쌀알 크기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번 떠오른 생각은 물감이 물에 퍼지듯 남자의 머릿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