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마치고, 한 시간 가량 타야 하는 택시를 떠올리니 멀미가 나는 기분이었다. 건강이 안 좋아진 이후로 택시 이동이 많이 힘들어 진 탓이다. 그래서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 오르자마자 눈에 띄는 모녀가 있었다. 딸은 적게 봐도 중학생 이상, 17~18세는 되어 보였다. 어머니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그들이 눈에 띈 이유는 딸이 앉아있는 곳이 좌석이 아닌 대형 유모차여서가 아니었다. 그녀의 얼굴 근육, 동작을 봤을 때 뇌성 마비를 짐작할 수 있어서도 아니었다.
너무도 해맑게, 행복이라는 단어를 상징할 수 있을 정도로 환히 웃는 두 사람의 표정 때문이었다. 정말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는 갓난 아이 부모에게서나 볼 법한 웃음을 짓는 중년의 어머니 얼굴. 그 웃음에 이끌린 것인지, 아니면 먼저 그 웃음을 이끌어 낸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 그늘 없이 행복하게 웃는 딸의 얼굴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로마에서 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거룩함과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것도 여러가지 특별한 부분이 있는 친구를 키워나가며 아내와 나는 감정의 파도를 수없이 마주한다. 대체로 걱정이 많다. 병을 잘 관리해서 건강하게 키워낼 수 있을까. 성격 적 특성 때문에 괜히 오해를 사거나 미움 받지는 않을까 등등.
지하철에서 만난 모녀의, 정확히는 중년의 어머니. 감히 그녀의 삶을 짐작할 수도 없지만, 그녀가 여태껏 마주했을 파도의 크기를 헤아릴 수도 없지만, 그 웃음이야말로 '사랑'의 본질,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
"걱정과 고민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삶은 너무도 짧다.
사랑할 시간, 함께 웃을 시간도 부족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뒤로 하고, 도착 역을 확인한 중년의 어머니는 의연한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능숙한 동작으로 자기 몸처럼 큰 유모차를 밀며, 따뜻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