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에 목마른 나를 위한 글

마음을 마주하고 돌아보는 두 번째 글. 4월 1일 밤 아홉 시

by 전종목

인정을 갈망하다 보면 반드시 그 함정에 빠진다. 원하면 원할수록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은 더욱 심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요구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서 관계나 일에 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인정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부터 현재, 미래까지 차근차근 돌아보기로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가 싫었다. 배우고 시험 치는 게 싫었던 게 아니었다. 장학퀴즈 우승에 옥스퍼드 박사까지 한 큰 누나가 있어서인지 지역에서 제일가는 수재였던 아버지 때문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공부는 내가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잘해 봤자 인정받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결국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시도 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부로 자신을 입증하는 일반적인 방법을 거부하기 시작했기에 나는 독특하고 새로운 방식을 더 추구하게 됐다. 사물을 비틀어 생각하거나 일반적이지 않은 답을 추구하는 것이 익숙해지면서 독창적인 관점들이 자리 잡게 됐다. 남다른 생각을 타인에게 설명하고 설득해야 했고, 그 덕분에 말하기와 심리파악 능력을 갖추게 됐다.

다만 정확한 정보를 시간을 들여 모으거나 기존의 의견과 개념들을 정리하는 행위를 기피하다 보니 내 생각이 때론 구체적이지 않거나 비약이 심하고,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스스로도 하게 됐다.


뿐만 아니라 가장 큰 문제는 되려 ‘인정에 대한 맹목적 추구’가 심해졌다는 것이다. 특별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많이 떠올리고, 그걸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기까지 하니 주목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후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막상 실행하면 기본정보와 정리 능력이 부족해 구체화시키기 어려웠고, 실제로 실행을 하더라도 꾸준함이 떨어졌다. 또 흥미가 떨어진 탓도 있었지만, 끝까지 노력했을 때 마치 ‘공부’가 그랬던 것처럼 충분히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서 끝맺지 못했다. 그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스스로를 점점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면서도 인정을 받고 싶어 할까?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 친척들을 봐도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인정받고 싶은 성향은 대대로 내려오는 기질이었다. 할머니는 동네 노인정에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그녀의 코믹한 레퍼토리들은 열정적인 표정-음성 연기와 함께 어우러져 아무리 자주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KBS 청춘합창단에 들어가기 전부터 노래를 할 수 있는 자리라면 꺼리지 않으셨다. 환갑을 훌쩍 넘겨 칠순을 바라보고 계신 지금도 합창단 활동과 개인 공연을 꾸준히 해 나가고 계신다. 아나운서 출신 고모와 싱어송라이터 삼촌만 봐도 대중들에게 나서서 인정받길 원하는 기질은 확실히 내 핏속에 섞여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옭아매는 ‘인정에 대한 지나친 추구’는 단순히 기질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더 많이 인정받는 사람이 있으면 속상해서 화도 나고 우울해 지기 일수였다. 대학교 때 공연을 열심히 했던 것도 누군가 공연을 하면 생겼던 시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SNS로 지인들의 소식을 들으며 맘 편히 박수를 쳐 주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 누군가 돋보이게 인정받는 상황이 오면 인정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내 옹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자존감이 아주 낮아져서 힘겨울 때에는 ‘내가 더 훌륭하고, 더 잘하고, 더 박수받을 자격이 있는데, 내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그걸 증명할 기회가 없어서야. 아니면 이미 증명했지만 나를 몰라주고 거부하는 당신들 탓이야’라고 속으로 외치기까지 했다. 내게 고마워했던 과거의 인연들이 새로운 사람의 능력을 인정하는 모습만으로도 배신감에 화가 날 정도였으니. 마음이 참 가난했다.


인정과 칭찬을 말로 자주 표현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탓,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지냈던 외로운 과거를 탓해 봤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으시는 아버지 얼굴엔 늘 흐뭇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어머니의 빈자릴 대신하며 나에게 충분한 관심을 기울여 준 작은 누나가 있었다. 결국 내겐 가까이 있었던 인정을 제대로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함 말고는 탓할 것이 없었다.


중요한 건 원인이 무엇이든 이제는 멈출 때가 됐다는 것이다. 서른보다 마흔이 가까운 지금, 오래된 결핍에 시간을 낭비하고 마음을 해치고 싶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생각한 해결방안은 1. 자신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인정하라. 2. 충분하고 올바른 목표에 도전하고 성공경험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인정하게 만들라. 이 두 가지다.


1. 자신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고 인정하라.

존재 자체가 소중하고 인정받을만하다는 것을 말로는 들었지만 이제껏 믿지 않았다. 쓸모가 없고 잘난 부분이 없는데 뭘 인정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아이를 낳아보니 알게 됐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서툴게 하나씩 배워가는 아들을 보니 모든 행동은 인정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 자신 역시 소중한 사람임을 잊지 않기 위해 나를 돌아보는 글을 꾸준히 써보려고 한다. 부족한 내용이라도 타인에게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올려 볼 것이다.


2. 충분하고 올바른 목표에 도전하고 성공경험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인정하게 만들라.

스웨덴은 초등학교 5학년까지 상대평가가 없다고 한다. 오직 비교 대상은 과거의 자신. 구구단을 3단까지 외운 아이는 선생님과 상의하여 6단까지 외우겠다는 목표를 세운다. 약속된 시간 이후 점검을 하여 달성했는지를 확인하고 부족했다면 어떤 부분을 개선하고 노력해야 할지를 대화한다. 비교와 경쟁이 아닌 스스로의 노력을 자신이 인정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나 또한 내적 기준을 가지고 목표를 정하고, 노력이 충분했는지, 잘못된 부분은 무엇인지를 평가하고 성취를 스스로가 인정해 주는 연습을 하려 한다. 글쓰기가 그 시작점이 될 것이다. 꾸준히 쓰는 글은 1. 꾸준함 2. 글쓰기 이 두 가지 콤플렉스를 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충분한 도전이 된다. 이 도전을 스스로가 만족스러울 만큼 노력해서 이뤄내는 그 때, 나는 나를 제대로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해 낸다면 굉장히 뿌듯할 것이다. 단 한 번도 꾸준한 글쓰기를 해 내지 못해서 스스로에 대해 실망했던 나다. 글의 수준과 상관없이 기념으로 개인 출판할 예정이다. 가지고 싶은 물건도 하나 생각해서 구매해야지. 지금 떠오르는 건 새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이 떠오른다. 뭐, 성공한 시점에서 다시 골라도 충분할 테니 오늘은 글을 이만 마무리하고 쉬어야겠다.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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