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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는가

나이먹고 드는 생각들

by 곰선생


제가 원하는 독서라는 것을 시작하던 시절 저는 사관생도였습니다.

그시절 그냥 겉멋에 들었던 책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였습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딱 '겉멋'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습니다. 그냥 젊은시절엔 니체를 읽어야지 하는 그런 생각없음의 끝이였죠. 그리고 책을 읽으며 제 자신에 대해서 엄청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쉽게 읽히더라구요~ 별로 어렵지 않게... 그게 니체가 수필형식으로 글을 쉽게쓰면서도 본인의 철학을 잘 표현했다는것을 이해한 것은 꽤 시간이 흐른다음이이였습니다.


여튼 그 책은 저에게 말 그대로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를 넘어서, 세상의 모든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짧은 문장이었지만 무시무시한 선언 "신은 죽었다." 이 한마디가 제 마음 깊은 곳을 흔들었습니다. 마치 세상에 무언가 거대한 균열이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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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는 니체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란 더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권력의 산물이라는 관점이 제 생각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시절의 저는 그것이 얼마나 멋진 사상인가를 자랑하고 싶어했던 것 같습니다. '세상엔 진리도 정답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어진 듯한 착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렇게 스무 해를 훌쩍 뛰어넘은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흔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저는 부끄럽게도 그때의 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건 너무 짧은 생각이었다." 라고요.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는 선언은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인간이 수천 년간 의지해왔던 절대적 가치 체계가 무너졌다는 상징적 표현이었습니다. 당시의 유럽은 과학과 산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전통 종교가 권위를 잃어가던 시대였습니다. 니체는 이 거대한 변화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읽어냈고, 인간은 이제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에게 의지하던 자리에 자신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사상이었습니다.


이러한 니체의 생각은 이후로도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의 사상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며, 중심은 존재하지 않고, 다원성과 불확실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사상을 읽으며, 그럴듯한 논리와 자유로움에 마음이 열렸습니다. '이제 세상에 틀린 답은 없다'는 생각은 마치 철학적 방패처럼 저를 편안하게 했습니다.

<이는 예전 "68혁명", "비엔나서클"이라는 글에서도 언급했던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그 방패는 점점 무게를 잃어갔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인생의 굴곡진 장면들을 겪으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세상에는 분명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시대정신이나 권력이 바뀐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결국 본성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저는 몸으로 배웠습니다.

교만은 결국 화를 부르고,

거짓말은 언제나 무너지고,

탐욕은 자멸을 부릅니다.

어려서부터 듣기 지겹던 속담들이 사실은 사람이 살면서 반드시 깨닫게 되는 진리였다는 것을, 이제야 저는 마음으로 느낍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

“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

이 짧은 문장들이 수백 년을 넘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니, 바뀔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매해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면서, 교실 안에서 다시금 사람의 본성과 맞닥뜨립니다. 경쟁심, 질투, 열망, 두려움. 이 모든 감정은 AI도, 빅데이터도, 무신론도 무너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은 동양 사상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공자는 '예(禮)'와 '의(義)'로 사람의 본성을 다스리고자 했습니다.

노자는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무위자연을 설파했습니다.

장자는 고정된 가치관을 부정하면서도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자유로움에 도달하라고 말했습니다.

동양의 사상가들은 애써 '진리'라는 말을 쓰지 않았지만,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수천 년 전부터 나누어 왔습니다. 저는 이제야 그 깊이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진리는 두 겹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는 시대정신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 진리'와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근원적 진리'입니다.

니체는 신의 죽음을 선언하며 새로운 진리를 창조하라고 했지만, 그 새로운 진리조차 인간의 본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은 여전히 유효하고, 속담은 지금도 사람의 삶을 설명해줍니다.


저는 이것을 학생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진리를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상도, 어느 시대정신도 사람의 본성을 뛰어넘어 설명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곤 합니다.

"너희가 세상을 의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의심 속에서 진짜로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마라. 사람은 결국 변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성장하고 실수하며, 다시 배우며 살아간다."


저는 앞으로도 강사로서 이 아이들에게, 세상엔 정답이 없다고만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둘 다 볼 수 있는 눈을 길러주고, 그것을 삶으로 증명해가는 어른이 되고자 합니다. 그것이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은 저만의 작은 진리입니다.

'신은 죽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그 안에서 길어올린 고전의 지혜는 죽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도 교실에서 그 살아있는 진리를 학생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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