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쓴 글 중에 쇼펜하우어 철학에 대한 소회와 가벼이 철학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담은 글을 연속으로 썼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방학과 특강을 시작하기 전 PC정리도 하고, 제 사무실의 책장도 정리를 하면서 간만에 보는 반가운 책을 마주했고, 오늘은 그 책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대체로 비관적입니다. 그는 "삶은 고통이며, 인간 존재는 욕망의 노예"라고 보고 있죠. 하지만 그의 사유는 단순한 냉소주의에 그치지 않고, 삶을 깊이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이 비관주의 철학자를 다시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빠르고 가벼운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무게감과 깊이, 그리고 삶을 더 진지하게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어찌보면 지금의 쇼펜하우어에 재발견(?)과 일맥 상통한 한 권의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바로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입니다.
이 책은 "삶은 고통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마치 불교의 첫 가르침처럼 들리는 이 말은, 우리 삶의 본질을 피하지 않고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저자는 고통을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직면하는 것이 인간의 성숙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의지와 욕망을 자각하고 통제하는 삶"과도 상통합니다. 두 사람 모두 고통을 부정하거나 없애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통 속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자기 수련과 사랑의 정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심리학자로서 저자가 수십 년간의 상담과 임상을 통해 깨달은 성숙한 삶의 조건을 이야기합니다.
그 핵심은 다음 네 가지 자기 훈련에 있습니다.
즉각적인 만족을 미루는 능력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자세
진실을 직면하려는 용기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
이 내용은 단순한 심리학 지식을 넘어, 철학적 성찰을 동반합니다. 저자는 "사랑은 타인의 성장을 위해 나 자신을 확장하는 의지"라고 말하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감정 중심의 사랑이 아니라, 성숙한 관계와 헌신의 중요성을 짚어줍니다.
쇼펜하우어는 사랑조차도 인간의 욕망의 산물로 보았지만, 스캇 펙은 사랑을 의지적 행위이자 자기 초월의 통로로 이해합니다. 두 입장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인간의 본능적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책이 다시 읽혀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지금 시대는 자기계발과 심리학의 홍수 속에서 오히려 더 표피적인 조언에 지치기 쉽습니다.
"잘 될 거야", "자신을 사랑하라"는 위로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 말의 뿌리와 근거는 허약합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조언할 때, 위로를 해야할 때 절대로 하지 않은 얘기들입니다.
그에 비해 <아직도 가야 할 길>은, 화려하지 않지만 깊이 있고, 부드럽지만 단단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진짜 성장하고 있는가?"
"당신은 고통을 직면하고 있는가, 회피하고 있는가?"
이 책은 1978년에 출간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가장 필요한 책일지도 모릅니다. 비관적 현실 인식과 깊은 성찰을 통해, 쇼펜하우어를 찾는 이들이 많아진 지금, 그 흐름의 정신적 근원을 제공하는 책이 바로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삶은 결코 쉽지 않고, 그 어려움을 마주하는 자세야말로 인간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은 이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길 위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조용히 안내해줍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현대인에게 '사유의 자극제'라면, 스캇 펙의 이 책은 그 사유를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제적 가이드입니다.
이 책을 읽고나면, 우리는 더는 피하지 않고, 그 길을 조금씩 걸어갈 준비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