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식 때였어. 반에서 친구들과 함께 졸업식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뒤에는 부모님들 계시고. 그런데 갑자기 내가 울기 시작한 거야. ‘엉엉’ 울진 않았지만, 훌쩍거리며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이 주변 친구들과 다른 부모님에게 들켰어.
졸업식 후 옆에 있던 친구가 하는 말.
“야! 반에서 우는 사람 너밖에 없더라”
“그래 알아. 안다고. 그래도 슬픈데 어쩌라고?"
이렇게 라도 말했어야 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메말랐지만 난 감성이 넘쳐흐르는 남자였어. 조금만 울컥해도 눈물 한 방울 흘릴 줄 아는 그런 남자였지. 하지만 남자가 너무 자주 울면 거시기 떨어진다는 속담 아닌 속담에 속아 부끄러워하며 옷소매로 얼른 훔쳐야만 했어. 그리고 이런 나를 원망했어. ‘나 남자 맞아?’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벅차오르거나, 반대로 자신을 억누르는 감정의 변화들이 예고 없이 우리 곁을 찾아오는 경우가 있어.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크게 웃기도, 화를 내기도, 울기도 하며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하지만 우리는 기분이 좋든 나쁘든, 그 기분을 참고 견디며 표현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어. 아무리 기쁘고 슬프고 분노가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성숙하지 못한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정해놓고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받아온 거지.
그렇게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지, 의학적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병’이라는 병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는 사실 알고 있니? 안타깝게도 나의 어머니 또한 그런 병으로 고생하고 계셔. 병원에 가봐도 그저 약 먹고 마음 편히 먹으라는 처방밖에 할 수 없는 그런 병 말이야.
그런데 ‘남자는 일생에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이 말 누가 만들었는지 아니? 한 술 더 떠 태어났을 때,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나라가 망했을 때라고 헌법 어디에도 없는 법까지 만들어 놓았어. 입법까지 됐으면 어쩔 뻔했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무튼 그 경우에만 눈물 콸콸 쏟아내도록 허락하면서 남자들의 눈물 꼭지를 틀어막아 왔지.
만약 다른 이유로 감정에 북받쳐 눈물 한 방울이라도 ‘찔끔’ 흘리는 날엔, 그동안 쌓아온 상남자의 명성은 옷고름으로 눈물짓는 아낙네의 이미지로 뒤바뀔 각오(?)까지 해야 했으니까.
나 또한 나약하지 않은 최소한의 남자처럼 보이려 슬픈 영화를 봐도 억지로 눈물을 참아야 했던 순간도 있었어. 이처럼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울음은 몇 가지 예외사항을 정해 놓고, 해서는 안 될 금기행동처럼 여기게 된 거지.
그럼 우리는 왜 울게 되는 것이고, 울고 싶은 자신의 감정은 감춰야만 하는 것일까? 그리고 운다는 건 감정의 일시적인 분출일 뿐, 울지 않는 게 우리에게 더 이로운 것일까?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특정 호르몬이 분비하게 되는데 이것은 눈물을 통해서만 배출된다고 해. 그래서 전문가들은 울고 싶을 때 울면 마음이 안정되는 이유로 바로 이 호르몬이 배출되기 때문이며, 쌓이게 될 경우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고 하지.
다시 말해 울음은 자신의 몸에 생기는 해로운 물질을 몸 밖으로 내보내게 하는 자연스럽고 생리적인 현상으로 억제하면 할수록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어.
이렇게 인간의 심리적, 생리적 반응에 의해 일어나는 울음은 주로 슬플 때 표현되는 감정으로 알고 있지만, 너무 기쁘거나 화가 날 때, 감동을 받았을 때도 울음은 터질 수 있어.
하지만 자신이 웃거나 화낼 때 보다 나약하게 보일 거라 생각과, 타인의 기분이나 조직의 분위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때문에 잘 표현하지 않으려는 심리도 있지. 활기차고 열정이 넘쳐야 할 사회조직 안에서 한 사람의 울음으로 인해 분위기가 침울해지는 일은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닐 거야.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성인 남성의 경우 ‘남자는 절대 남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는 말을 금기어처럼 듣고 자라왔기 때문에 그런 사회적 제약이 남자의 눈물샘뿐만 아니라 결국 여자의 눈물샘까지 마르게 했지.
그러나 어느 연구에 따르면 울음이라는 감정 표현은 오히려 우리의 정신과 신체를 건강하게 회복시켜주는 기능을 한다고 해.
미국 미네소타 주 소재 알츠하이머치료연구센터의 빌 프레이 박사는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것은 잘 울기 때문”이며 미국 성인의 경우 여자는 한 달에 3.5번 우는 반면, 남자는 1.4번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 그만큼 울음은 평상시 우리 건강과 생명연장에 직결될 정도로 중요한 감정 표현인 거지.
어린아이에게도 우는 일은 매우 중요해. 아이는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면 바로 울게 되는데, 만약 울지 못하게 다그친다면 어떻게 될까?
당시 느꼈던 공포의 기억이 그대로 뇌에 저장되기 때문에, 듣기 싫어도 울 땐 마음껏 울게 놔둬야 한다고 해. 설사 그런 경우를 다시 겪게 된다 해도 아이는 공포로 느끼지 않게 되지.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는 주인공 ‘라일리’의 어릴 적 상상 속 친구인 ‘빙봉’이 등장해. 그는 즐거움에 익숙한 라일리를 대변하는데, 갑작스럽게 다가온 슬픔이라는 감정에 힘들어하게 되지.
그때 ‘슬픔이’라는 파란색 얼굴을 한 친구가 다가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익숙하지 않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게 되지.
이렇게 울음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억눌려서도 안되고 참아서도 안 되는 인간의 중요한 감정표현이야. 내면에서 울리는 자신의 감정을 충분히 인지하고 소중히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지고 겸손해지게 돼.
왠지 지금 앨리스가 처한 상황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여. 세상은 풍요롭고 자유로워졌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그다지 나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각자 자신에게 주워진 인생이라는 외줄 타기 위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이리저리 바쁘게 흔들리고 있을 뿐 내 주변과 타인의 삶에 대해선 신경 쓸 겨를조차 없지. 그럴수록 우리는 점점 고립되고 위태로워져 결국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지만, 그럴 틈조차 보이면 안 된다고 우리 스스로 말하고 있어.
하지만 이제 자신뿐만 아니라 서로를 향해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어야 해. 그래야만 고립된 자신의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고 서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아갈 수 있지. 그 시작은 자신의 눈에 흐르는 솔직한 눈물과 스스럼없이 타인의 슬픔을 닦아 줄 수 있는 손길, 그리고 공감 어린 눈물 한 방울이 필요할 거야.